브루스 윌리스 (Bruce Willis,1955년생)
'브루스 윌리스' 는 1955년 독일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제대 후
가족은 미국 뉴저지 州 에 정착했고, 어린 날의 그는 그곳 고등학교에서 무대 연기의
기쁨을 깨달았다.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다가 뉴욕 음악세계에 발을 들여 하모니카를 연주하게 된
그는 클럽에서 활동하는 R&B 밴드인 '루스구스'에 합류하기도 했지만 유명해지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다시 연기(演技)로 돌아왔는데, 대학을 졸업하지는 못했고 결국
뉴욕에 가서 '바텐더'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 탐정 시리즈 「블루문 특급(1985~1988)」의 '데이비드 에디슨' 역을
연기하면서 상대 배우 '시빌 쉐퍼드'와 촬영장에서 수없이 다투기도 했지만,그는 이때
자신의 음악 실력을 발휘하여 1987년 '리턴 오브 브루노'라는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음악 전문가들의 평가는 안 좋았으나, 음반은 잘 팔렸고, 타이틀곡도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다. 그는 결국 <블루문 특급>으로 2개의 에미상과 1개의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했다.
이 때의 인기에 힘입어 '킴 베이싱어'와 공연한 <데이트 소동>으로 첫 영화 주연에 데뷔
하게 된다.
1987년 <잠복근무> 시상식에서 여배우 '데미 무어' 를 만나게 되어 둘 사이는 뜨겁게
발전, 두 사람은 초호화판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100만 달러의 비용으로 '로큰롤의
전설' 인 '리틀 리처드'의 주례로 라스베가스에서 식을 올렸다.
'브루스 윌리스' 는 1988년 크게 히트를 기록한 형사 액션물 <다이하드 Die Hard>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받게 된다. 조금은 삶에 지친 듯한 표정과 거침없는 유머가
그의 매력이었다.
최악의 흥행 실패작 <허영의 불꽃>에 출연했지만, 1988년 딸 '루머 글렌' 을 얻었다.
<마이키 이야기>에서는 목소리 출연을 했으며, <다이 하드 2>로 흥행 성공을 이었다.
<다이 하드 3>에서는 1600만 달러의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로 거절했다.
<허영의 불꽃>에 이어 <빌리 베스케이트>, <허드슨 호크>, <마지막 보이스카웃>에
이르기까지 계속 실패를 거듭,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는 개런티가
아닌 영화흥행수익 배당금을 받기로 하고 출연했으나 역시 저조했다.
1991년10월 레스토랑 체인점 사업인 '플래넛 헐리웃' 이 뉴욕에 오픈하였고, 둘째 딸
루루가 태어났다. '브루스 윌리스'는 '플래넛 헐리웃' 의 홍보차 1994년 5월 9일 방한하기도
했다. 1994년에 '브루스 윌리스' 는 평범한 할리우드 영화를 거부하고 「펄프 픽션」 에 등장
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인기 있는 세 역할 중 두 번째 역할을 맡게 된다.
1998년 6월, 부인 '데미 무어' 와 이혼 발표가 있었지만, 그는 영화에만 매달렸고,
<제5원소>와 <비상계엄>에 이어, 어린이를 상담하는 심리학자 역할을 맡은 대히트작
<식스 센스>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평소 받던 2천만 달러 개런티 대신 흥행
수익 일부를 배당받기로 하는 등 훌륭한 선택을 했다. <식스 센스>는 무려 6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모험은 마술적인 효과를 나타내 「12 몽키즈(1995)」와 「비상계엄(1998)」과 「아마겟돈
(1998)」 등의 영화로 이어지며 다시 치솟는 인기를 몰고 왔다.
이혼 후 독신(獨身)에 적응한 그는 다시 연극 무대(「트루 웨스트(2002)」)에 섰고 T.V
(「프렌즈」) 연기로 에미상도 받았으며, 성우 연기(「헤지(2006)」)도 하면서 주류 영화들
사이 사이 독특한 작품(「씬 시티(2005)」)도 섞어 가며 중년에 들어 다시 정상의 자리를
탈환한 것 같다.
2000년, 13년간 결혼생활을 했던 '데미 무어'와 이혼했다. 2009년 3월, 22세 연하의
모델 '엠마 헤밍(32)'과 카리브해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