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현대가 FA컵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는 것으로 한국 프로축구의 2005년 일정은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다. 이에 맞춰, 축구계는 올 한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을 대상으로 MVP와 신인상, 베스트11 등을 꼽는 각종 시상식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리그나 컵대회의 종료가 각 팀들의 연간 성과를 가늠하는 시발점이라면 선수들에게는 이러한 시상식이 1년 농사의 수확을 평가하는 종착점이다. 하지만 우리네 시상식 풍경을 보면서 드는 심정은 솔직히 뿌듯함보다는 아쉬움 쪽에 더 가깝다. MVP라는 이름으로 수여되는 상은 여럿이지만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지 못한 채 나름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진행과정의 붐업마저 없어 결산 분위기 조성에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 게다가 수상자의 내역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아 특정 선수들에게 몰아주는 꼴이 되고 만다. 이래서야 똑같은 상을 중복해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할만하다.
오늘 여기서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동어반복에 불과한 시상식의 정돈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은 '신인왕' 종목에 대한 의문 제기다.
먼저 시상식의 정돈이 필요하다가 주장하는 이유를 적어보자면 앞서 언급한것과 같이 크고 작은 시상식이 난립하다보니 주는 입장에서나 받는 입장에서나 한해 결산하는 의미에서 주어지는 '시상'의 의미가 줄어든다는 측면이 가장 크다. 각 시상식이 나름의 변별력이나 개성을 갖지 못하는데다 그나마 '독보적인' 권위를 가진 상도 없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추적하는 팬이 아닌 바에야 '올해 MVP는 누구'라는 인식을 갖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각 스포츠 언론사별로 하나씩 시상식을 주최하고 있어 그 수에 혼란스럽고 그 천편일률에 흥미가 떨어진다.
이를테면 야구에서 한 시즌을 마감하며 주는 MVP와 신인상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로 인식된다. 그만큼 상의 권위도 유지되고 받는 선수들의 위상도 격상된다. 하지만 축구는 MVP상도 많고 개중에 두엇 이상의 선수가 나눠 갖는 경우도 있어 권위를 실어주기가 힘들다. 오는 28일 수요일에 K리그 공식 시상식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미 수많은 시상식이 치러진 뒤라 김이 다 빠져있고 축구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공식인지 조차도 구분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야구쪽의 '골든글러브'와 축구의 '베스트11' 상만 비교해봐도 그렇다. 축구계에 '상'의 권위를 인정해줄만한 독보적인 시상식이 없다는 것은 주는 축구계 쪽에서도 받는 선수 쪽에서나,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축구팬들에게나 모두 안타까운 일이다.
이같은 상황은 아무래도 대회를 주관하는 프로축구연맹이나 '거국적인 차원'의 권위있는 상을 제정하지 않은 축구협회 쪽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사에서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시상식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은 잘 알지만 그래도 매년 한해를 결산하는, 혹은 한 시즌을 결산하는 자리에 이정표를 세워주고 선수들과 팬 모두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작업에 소홀했다는 책임을 덜어내긴 어렵다.
이를테면 AFC의 '올해의 선수상'의 경우를 보자. 올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중동 선수에게 상을 주면서 권위와 급격히 떨어지기는 했지만 매년 '아시아 대륙을 대표하는' 선수를 뽑아 상을 안겨주는 시상식의 의미는 (수상자의 정통성 여부를 떠나) 해를 거듭할수록 일종의 '대표성'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세계 각국을 돌아봐도 매년 '올해의 선수'를 선정해 트로피를 안겨주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의 존재는 한해 잘 뛴 선수에 대한 보상의 측면도 있지만 꾸준한 진행을 통해 얻어진 권위를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에게 하나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시상을 전후해 일어난 수많은 이슈들은 비시즌에도 축구에 관한 관심사를 유지시키는 방법이 된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처럼 광범위한 호응이나 권위를 품은 상이 없는 형편이다. 해외파가 늘어났음에도 국내/해외파를 통틀어 한해를 정리해주는 시상식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K리그에 한정해 말하자면 K리그가 주관하는 시상식 행사의 권위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 스폰서를 붙잡아 상금의 액수를 키우는 것이나 TV중계를 하는 것 이외에도 운영이나 이슈 메이킹의 측면에서 보다 활성화된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선거인단의 구성이나 투표 과정에 개성을 불어넣는 것은 어떨까. 세계 제일의 선수를 뽑는 3개의 상을 예로 들면 'FIFA올해의 선수상'은 각국 대표팀 감독/주장의 투표로, '유럽 골든볼'은 유럽 각국 기자단의 투표로, '월드사커紙 선정 올해의 선수상'은 팬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모든 유명 시상식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누가' '어떻게' 뽑았느냐이다. 영화제처럼 매년 심사위원장을 뽑고 소수의 심사위원단을 반드시 구성할 필요는 없지만 '누가'와 '어떻게'에 좀 더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구성을 당분간 유지해 그 상의 개성으로 자리잡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적극적으로 공개해 상에 대한 관심이 배가되도록 이끄는 방식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신인왕에 대한 시상이다. 사실 현재 한국의 K리그는 '신인'이라는 기준 자체가 애매한 감이 없지 않다. 타국 리그에서 뛰다가 복귀한 선수가 문제가 되어 '어떤 나라든 프로축구에 처음 데뷔한 선수'로 기준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프로'라는 말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기준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중고등학교때부터 '직업선수'로 성장하는 게 우리네 축구선수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범위를 좁힌다해도 우리네 '대학축구'와 유럽의 '하위리그'는 객관적 의미에서 볼 때 같은 역할을 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외국 하위리그 출신은 '경력자'로 우리 '대학졸업자'를 '신인'으로 보기에도 어폐가 있다.) 더욱이 K리그 초창기처럼 대부분이 '대졸자'였던 시대와 비교할 때 '고졸자' 내지는 '대학 중퇴자'가 K리그에 뛰어드는 일이 많은 현 시점에서 '18세' 선수와 '23세' 선수가 똑같이 '신인상' 경쟁을 하는 것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외국인 선수의 역할이나 그 수가 상상당히 증대된 현 시점에서 '신인상'이 꼭 국내 선수에게만 해당하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 얼마 전에는 'K리그로 유턴한 외국 리그 경험 한국 노장선수'를 배제하기 위해 신인상 규정을 손봤다지만 이렇게 애매한 '신인상'을 꼭 유지하기 위해 규정을 손대기보다는 차라리 '신인상'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를테면 외국의 경우처럼 (신인상 대신) '어린 선수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는 상을 신설하는 것이다. 만 21세, 혹은 일정 나이 이하에 해당하는 선수들 중에서 좋은 성적 거둔 선수들을 대상으로 상을 주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의 신인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재미있는 경쟁 분야가 될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K리그' 혹은 '프로클럽' 입단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보다는 성장세를 감안해 비교적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는 '나이'로 기준을 바꿔 시상을 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더 의미있는 상이 될 수도 있다. 걸출한 선수가 없어도 '올해 입단한 선수 중에 가장 잘한 선수'로 수상자를 결정해야 하는 장면도 줄일 수가 있을터이니 말이다.
이상 잡다한 생각들을 적어보았는데... 가장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KFA에 속한 선수 중 올해의 선수'에게 갈채를 보낼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매년 초 축구인의 밤 행사때 나름의 수상자를 결정해 트로피를 안긴다고는 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또 그 권위를 키우기 위한 대외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상의 의미는 사실 폄하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받고자 하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상의 존재는 단순히 트로피를 주고 받는 행위에서 벗어나 그 판의 규모와 위상을 격상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