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찾은날 : 2017. 04. 15(토)
0 누구랑 : 광주샛별산악회
0 산행코스 : 문경새재제1주차장-주흘관(문)-조령제1관문-여궁폭포-혜국사-주흘산 주봉-주흘산영봉(1,106)-조곡골-
조령제2관문(조곡관)-제1관문-1주차장(14.7km 6시간20분)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또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발
원높이가 약 2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가 압도한다. 산 기슭에는 혜국사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이 세워져 있다.
문경새재과거길의 제1관문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鳥嶺),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草岾),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새)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후 세 개의 관문(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혜국사
혜국사의 유래는 통일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증선사가 주흘산 기슭에 법흥사라는 사찰을 창건하였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해 왔다고 전해 내려오면서 나라가 은혜를 입은 절이라고 해
서 혜국사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여궁폭포(女宮瀑布)
높이 약20m의 폭포로 수정같이 맑고 웅장하며, 기암절벽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수는 경관이 수려
하고, 옛 설에 의하면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바라보면 마치 형
상이 여인의 하반신과 같이 생겼다 하여 여궁폭포로 불려지고 있다.
소백산맥은 태백산맥에 비해 작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으나, 험준하기는 태백산맥 못지 않으며 사실 높이는
오히려 소백산맥이 더 높다. 태백의 최고봉은 설악산 대청봉으로 해발 1,708m이지만 소백의 최고봉은 지리산
천왕봉보다 207m 높은 해발 1,915m 이다. 지리산 천왕봉은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내륙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主屹山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소재한 소백산맥 중에 있는 산
문경의 주흘산은 '우두머리에 있는 의연한 산'이라고 하며, 영남지방이라 할때 영남이란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조령(鳥嶺)을 기준으로 영(嶺)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영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현호색(봄의 전령사)
현호색은 봄의 숲 속에서 자주 대하는 반가운 꽃이다. 꽃은 3~4월경 줄기 끝 여러 개의 보라색 또는 분홍색
등으로 꽃이 피는데 기다란 나팔처럼 꽃대가 꿀주머니로 되어 있다.(종류 10여종) 현호색은 특이하게도 더위
를 싫어하는 꽃이다. 봄에 모든 걸 다 끝장내고 조금 덥다 싶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꽃이다. 열매를 맺고서
'나는 이제 다 살았어'라고 1년의 긴 여행을 떠나는 꽃이다. 그래서 겨우 3개월 정도 지상에서 자식보기 위해
꽃도 피고 살다 사라진다는 꽃이다. 현호색 꽃은 현은 검다(알뿌리가 검다고 해서), 호는 오랑캐(이 꽃이 중국
북쪽지방에서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색은 꼬인다는 뜻(새싹이 움틀 때매듭이 생긴다고 해서)이라고 한다.
노랑제비꽃 (정호승)
가난한 사람들이 꽃으로 피는구나
폭설에 나뭇가지는 툭툭 부러지는데
거리마다 침묵의 눈발이 흩날리고
나는 인생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차가운 벽 속에 어머니를 새기며
새벽하늘 이우는 별빛을 바라보며
나는 사랑하는 인생이 되기로 했다.
희망 속에는 언제나 눈물이 있고
겨울이 길면 봄은 더욱 따뜻하리
감옥의 풀잎 위에 앉아 우는 햇살이여
인생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창 밖에는 벼랑에 핀 노랑제비꽃
주흘산 기슭에서 만난 노랑제비꽃
꽃잎은 5장이며, 아래쪽에 있는 꽃잎에는
몇개의 황갈색 줄무늬가 있는데 꽃(꿀)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을 맞기 위해 길을 아주 예쁘게 만들어 놨다.
꿀을 찾아오는 벌이나 곤충들의 통로인 것이다.
자식을 얻기 위해선 뭣한들 어찌 못하겠소...
(노랑제비꽃 꽃말은 수줍은 사랑)
영남 제2관문(조곡관)
이 관문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해 내려오나, 조선 선조(1592)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충주사람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숙종 34년(1708)에는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옛성을 고쳐 쌓고 조동문이
라 하였고, 현재의 시설은 그 후 폐허가 된 것을 복원하였다.
오전에 들어왔던 영남제1관문을 나가 주차장에 도착하여 뒷풀이 하고서 광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