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산에서 동남산으로 넘어가보자
서남산에 산재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는데만도 하루를 꼬박 보낼 정도로 남산의 불교 문화재는 엄청난 수를 자랑한다. 포석골, 삼릉골과 같은 계곡에만도 수십 여개의 불상과 탑, 왕릉이 산재해 있을 정도로 남산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엄청나다. 남산은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포석골과 삼릉골은 금오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계곡이 된 것이다. 금오산의 두 계곡만큼 문화재가 많지는 않지만 고위산의 용장골과 틈수골에도 신라인들의 예술성이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다. 서남산과 동남산으로 구분하는 것도 힘든데, 서남산도 금오산의 계곡과 고위산의 계곡으로 구분할 정도니 남산이 품고있는 불교유산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남산에서 가장 유명한 포석골과 삼릉골을 탐방할 때는 신라인들이 남긴 유산이 너무나 많아 둘러보는 데만도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였다. 용장골은 신라의 왕궁이었던 반월성과 약간 멀리 떨어진 탓인지 위 두 계곡만큼 문화유산이 많지는 않다. 포석골과 삼릉골을 둘러볼 시간이면 용장골에서 남산을 올라 동남산의 또 다른 유명한 계곡인 탑곡과 불곡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거리는 훨씬 더 멀고 힘은 더 들겠지만 신라가 남긴 찬란한 유산을 더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설레였다.
국립공원 이야기 38 - 경주 남산
경주 남산은 토함산과 함께 경주 국립공원에서 쌍벽을 이루는 산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의 유명세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남산은 문화재의 양으로만 따지면 토함산보다 우위에 있다. 남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 5개 지구 중 하나로 인정받을 정도로 수많은 불상과 석탑, 절터가 남산 곳곳에 숨겨져 있다.
금오봉 (468m)과 고위봉 (494m)의 두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40여개의 계곡 어딜 가도 불상이나 절터를 볼 수 있을 정도라 남산은 '노천 불교 박물관'으로 말해도 손색이 없다. 절터만 해도 100여 곳, 석불 80여좌, 석탑 60여기가 산 전체에 널렸고, 등산로 하나만 타도 보물급 유적을 계속 볼 수 있는 곳도 많다. 대한민국의 다른 유명한 산에서도 불교 유적이 한 두 개쯤 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많은 불교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산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남산의 높이는 500m도 채 안 되지만 곳곳에 산재한 불교 문화재를 보며 올라가면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문화재들이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샛길을 따라 가는 경우도 많으며, 그 많은 양의 불상과 탑을 전부 돌아보려면 며칠을 둘러봐도 모자랄 정도다. 어느 등산로를 택해도 신라인들의 불심을 느낄 수 있지만 삼릉계곡을 따라가는 코스가 가장 인기가 많다. 문화재의 수도 많을뿐더러 등산의 난이도도 쉬운 편이고 경치 또한 뛰어나기 때문이다.
굳이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만날 수 있는 문화재들이 남산 기슭에 많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설화가 있는 나정, 신라 귀족들이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겼던 포석정, 신라 마지막 왕인 경애왕릉과 전국 최고의 소나무 숲을 가지고 있는 삼릉 등 많은 문화재가 남산을 배경으로 세워졌다. 특히 새벽녘에 찾는 삼릉숲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뿜어내 많은 사진가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서남산 용장사지에서 동남산 불곡과 탑곡까지 가는 길
시내버스를 타고 경주시내를 벗어나 내남면까지 가면 용장리가 나온다. 남산의 계곡에 있는 마을 중 규모가 가장 큰 용장리지만 여느 농촌 마을이 다 그렇듯 한산한 모습이다. 남산의 유명세를 타고 용장리에도 펜션과 식당이 있어 관광객들은 어느정도 편리를 누리고 있다.
용장골은 금오봉과 고위봉 중간에 위치한 계곡이다. 북쪽으로 가면 경주시내와 가까운 금오봉으로 오를 수 있으며, 아래쪽으로 가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고위봉으로 갈 수 있다. 어느쪽으로 가든 처음 보는 불교 유산으로 가득한 절터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지만, 동남산의 탑곡과 불곡으로 가려면 처음 답사 때 갔었던 금오봉으로 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고위봉은 다음 기회에 오르기로 하고 용장골에서 금오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남산은 온통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높이가 낮아 산행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산 중턱에만 올라도 경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들인 노력에 비하면 얻는 성과가 상당히 크다. 게다가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조각도 볼 수 있으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는 산이다.
용장골의 대표적인 절터는 용장사지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용장사지에 무려 세 개나 될 정도로 이 절의 가치는 뛰어나다. 용장사지는 경주를 굽어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절을 세우기에 이만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용장사는 명당인 곳에 세워진 것이다. 그 옛날,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기 위해 용장사에 머물던 이유가 짐작이 된다.
용장사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용장사곡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인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한 것이다. 탑 안의 사리장치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자취를 알 수 없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각 층이 이루는 비례미도 아름답지만 남산의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용장사는 석탑 뿐 아니라 불상도 두 개나 있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이 그 중 하나인데, 머리가 없어진 불상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가 시선을 이끈다.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 불상은 대좌에 비해 크기가 작아 <삼국유사>에서 언급된 대현 스님을 소재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실제 스님이 입고 있는 옷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세워진 3층탑이라 해도 될 정도로 특이한 원형으로, 맨 윗단에는 대좌인 것을 증명하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석조여래좌상 뒤편 바위벽에는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있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놓여있다. 마애여래좌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있는 형태로,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용장사지의 뛰어난 불교유산을 보고 난 뒤 금오봉으로 향했다. 삼릉골이나 포석골을 통해 오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남산 등산은 언제나 보물찾기를 하며 새로운 걸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금오봉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동남산의 계곡이 나온다. 가장 단시간에 내려갈 수 있는 계곡은 통일전과 서출지가 있는 철회골이지만 발품을 팔아 북쪽의 탑곡과 불곡으로 가기로 했다.
동남산의 등산로는 사람이 적어 으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숲으로 우거진 남산이 천 년 전 신라인들의 활동 무대였다고 생각하니 신비함이 공포를 떨치게 만든다. 금오봉에서 탑곡으로 부지런히 내려가면 넉넉잡아 2시간이면 충분하다.
탑곡 입구에는 통일신라시대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다. 목조 건물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9m 높이나 되는 큰 바위에 여러 불상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남쪽 바위에는 삼존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면에는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을 묘사해놓았다. 불상과 보살상은 모두 대좌와 광배를 갖추고 있다. 비천상은 하늘을 날고 승려는 불상과 보살에 공양하는 자세이지만 모두 마멸이 심해 자세한 조각 수법은 알 수 없다. 서쪽 바위면에는 석가가 도를 깨쳤다는 보리수나무 2그루와 여래상이 있다. 바위 하나에 탑, 불상, 보살, 승려 등 다양한 모습을 통해 불교세계를 표현하려고 했던 장인의 정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탑곡 마애불상군은 국내 어디서도 찾기 힘든 특이한 형태다.
탑곡 북쪽에는 불곡이, 남쪽에는 미륵곡이 있는데, 두 계곡 모두 남산을 대표하는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보리사가 있는 미륵곡에 간 뒤, 경주시내와 가까운 불곡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미륵곡은 신라시대의 보리사터가 남아있는 계곡으로,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이다. 현재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시대 석불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상투 모양의 육계를 쓴 부처님의 둥근 얼굴에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한해진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왼손은 배에 올려져있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불상 뒤편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덩쿨무늬가 새겨진 광배가 있다.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다스린다는 약사여래불이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밀양 무봉사와 경북대 광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다.
불곡에는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에 모셔진 불곡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유홍준 씨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그 아름다움이 묘사되어 있는 불상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여성적으로 표현된 불상을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새색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듯 하고,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 옷은 아래로 길게 흘려내려 대좌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이 흐르듯이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남산 최고의 불상 칠불암을 찾아서
웬만한 국립공원도 같은 계절에 두 번 이상 방문하지는 않는다. 계절마다 서로 다른 옷을 입은 듯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국립공원이기에 굳이 소중한 시간을 들여 같은 계절에 방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경주 국립공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경주인데다 높이도 낮고 소나무가 대부분인 남산은 사계절 내내 모습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남산을 숱하게 방문한 이유는 단순히 볼 거리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남산이 품고있는 수십개의 계곡 곳곳에 숨겨진 불교유산을 마주할 때마다 남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굳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이 없더라도 남산은 아름답다. 신라인들의 정성이 집약된 남산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적어도 네 번은 가야하지 않을까. 남산 마지막 탐방은 남산에서 제일가는 조각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