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말 이모가 돌아가셨다
이모는 김포 개화리 외가집 김씨네 세자매 중 막내였다
큰 이모는 서곳 구래골로 시집가서 살다 돌아가셨고
둘째는 우리 어머니로
인천 고물상을 하던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잘 살고 가셨다
세째 이모는 인천 석바위로 시집가 숱한 궁핍과 싸우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
이제 큰이모, 엄마, 막내 이모 순으로 순서대로 가신 셈이다
그중 막내 이모가 2남 3녀를 낳아 키우며 끼니가 어려워 제일 힘들게 살았다
이모부는 없는 살림에도 술 고래였다
막걸리에 밥 말아먹을 정도로 주태배기
한번도 깨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막내 이모는 살림이 지난했어도 그런 중에도 제일 밝으셨다
말할 때 보면 늘 웃으며 말을 하셨다
화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인자한 모습이 속세를 초월한 보살 같으셨다
세자매의 우애는 깊었다
서로 보살피고 서로 좋아했다
그 막내 이모가 영면에 들었다
세상을 관조하고 살았던 분이다
아무리 빈곤한 삶이 힘들게 할 지라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여인이다
그 환한 모습이 쉽사리 떠나질 않는다
우리집이 간석동 일 때
철마다 무, 배추며 각종 푸성귀를 우마차에 실고 집으로 날랐다
밭 작물은 거의 이모네서 공급해 먹었다
70년대 그당시 운송 수단은 우마차 였는데
시속이 한 10키로 정도 였을게다
소의 걸음은 엄청 느릿느릿 했다
오늘 장례 이틀째
인천 연수동 소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으로 간다
막내 이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셈이다
한편의 드라마같은 전설이 막을 내리는 길이다
부디 영면하시길 빌 셈이다
곧 세자매는 저승에서 반갑게 조우할 것이다
잘 살다 왔노라고 서로 반갑게 손을 마주잡고 반가워 할 것이다
치매도 그네가 가는 길은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