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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 우보만리 한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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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이야기 스크랩 귀면
우보만리 추천 0 조회 154 12.04.27 14: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귀 면

                          

 지붕 내림마루의 귀면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원두방형圓頭方形 기와이다. 귀신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조각한 귀면와는 건물의 경관과 치장, 그리고 위용을 돋보이기 위한 것으로, 와당과 서까래기와, 그리고 마루기와 등으로 구분되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이 귀면와는 마루기와에 속하며, 내림마루 끝의 기왓등에 얹히는 기와이다. 부리부리한 두 눈, 콧구멍이 큼직한 코입 꼬리를 치켜올려 송곳니를 드러낸 모습이 통일신라시대 귀면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귀면은 궁궐이나 사찰, 능묘, 민가 등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궁궐 내에서는 석교를 비롯하여 향로 등 예기禮器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사찰에서는 법당 정문의 궁창이나 문 위쪽, 불단 등에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능묘의 경우는 혼유석을 떠받치고 있는 고석鼓石(북처럼 생긴 것으로 혼유석의 다리 구실을 함)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민가에서는 기와지붕의 용마루나 추녀마루끝에 귀면와를 올려놓기도 한다. 이처럼 도처에 귀면을 배치한 데는 현주現住공간, 또는 유택幽宅을잡귀로부터 수호하려는 벽사 의도가 깔려 있다.

귀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정면관正面觀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옆이나 뒤에서본 모양은 표현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면관으로 표현하는 것은 벽사의 능력과 축귀逐鬼의 기개를 나타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기에 송곳니를 드러낸 모습을 추가하여 위협성과 공격성을 고조시킨다. 귀면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왕방울처럼 눈이 크다는 점이다. 잡귀를 색출하여 응징하기 위해서는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아야 하고, 어둠 속에서도 잡귀를 색출해내야 하기 때문에 눈이 크고 시력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축귀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눈의수를 늘이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방상씨方相氏(귀신을 쫓는 가면)가 눈을 네 개 가지게 된 연유도 같은 맥락이다. 옛 사람들은 방상씨가 네 개의 눈으로 모든 귀신을 빠짐없이 찾아낸다고 믿어 임금의 행차, 사신 영접, 장례식 등 중요한 행사 때에 방상씨를 앞세웠다.

귀면과 혼동하는 것으로 도깨비라는 것이 있다. 도깨비의 도상적 특징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람 또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비상한 힘과 괴상한 재주를 가진 잡귀의 일종 정도로 관념되어 있다. 도깨비와 관련하여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도깨비는 귀면처럼 인간의 편에 서서 벽사의 기능을 대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벽사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벽사용 귀면와를 도깨비기와라고 부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귀면은 축귀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공격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야 하고, 잡귀가 무서워 달아날 만큼 위협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나 일본의 귀면 대부분이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사람이 보아도 무섭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귀면을 보면 공포와 전율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큰 눈망울 속에 관대함이 스며 있고, 긴장 속에서도 온화한 인간미가 감지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귀면도 우리나라 사람의 손을 거치면 이처럼 인간미 넘치는 귀면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의 온후한 천성이 잡귀를 상대하는 귀면 제작에 있어서도 은연중에 드러난결과일 것이다.  

 

건릉 혼유석의 귀면 태조의 건릉 혼유석에 새겨져 있는 귀면이다. 혼유석은 말 그대로 혼령이 머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잡귀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여 청정한 공간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네 개의 고석鼓石에 하나씩, 모두네 개의 귀면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고석 안쪽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언뜻 봐서는 귀면이 있는지 없는지 바로 알 수가 없다. 이것은 귀면을 새긴 뜻이 사람이 아니라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복궁 십장생굴뚝의 귀면
우리나라 귀면의 특징 중 하나는입꼬리가 위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웃는 모습을 묘사할 때 쓰는 것이지, 결코 화내거나 위협적인인상을 나타낼 때 쓰는 방법이 아니다. 화를 내거나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낼 때면 당연히 입꼬리가 아래쪽으로 처진다. 중국이나 일본의 귀면은 모두 입꼬리가 아래쪽으로 처져 있다. 그래서 첫 인상이 무섭고 위협적이어서 공포감을 준다. 그러나 우리의 귀면에는 한국인의 낙천적인 정서와 따뜻한 인간미가 배어 있다.

  




 




방상씨탈
1970년 창덕궁 창고에서 장례용구와 함께 발견된 이 탈은 높이 72㎝의 대형 탈로서 송판松板에 얼굴모양을 파고 4개의 눈과 코, 입, 눈썹 등을 새겼다. 웃는 얼굴에 깊게 팬 주름, 커다란 두 귀가 인상적이다. 궁중에서는 임금의 행차나 사신의 영접, 기타 다른 행사 때 쓰였는데, 붉은 옷에 가면을 쓴 방상씨 4명과 각종 가면을 쓴 사람들이 악귀를 쫓는다. 장례 때에는 행렬의 맨 앞에서 수레를 타고 가면서 또는 묘지에서 시신이 들어갈 자리의 악귀를 쫓는다. 조선시대 방상씨탈 중 현존하는 유일한 것이며 민간의 풍속이나 연극역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창경궁 옥천교의 귀면
모든 궁궐 초입에는 조하공간朝賀空間으로 진입하는 석교가 있다. 경복궁 영제교, 창경궁 금천교, 창경궁 옥천교가 모두 그런 성격의 다리이다. 조하공간은 국가적인 행사가 벌어지는 공간이므로 항상 청결하고 상서롭게 보존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리는 사람만이 건너다니는 것이 아니라 잡귀신들도 건너다닌다. 그래서 입구에서부터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리 양쪽에 귀면을 새긴 것이다. 귀면을 돌에 새겨 홍예 사이에 끼워 넣은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인상은 무섭게 보이지 않으나 벽사의 기능은 충분히 수행한다고 옛 사람들은 생각했다.



 




미황사 벽하당 부도의 귀면
귀면을 매우 소략하고 개념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왕방울 같은 두 개의 눈, 개념적인 주먹코와 입 그리고 갈기만으로 귀면을 나타냈다. 얼굴에서 위협적인 요소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해학을 느끼게 한다. 유치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떠돌이 조각장이 새긴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고승대덕의 부도는 아무나 만들어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정서로 볼 때 이런 인상을 가진 귀면이 축귀의기능을 다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귀면이라고 그렸으면 그것으로 족했고, 귀면이기 때문에 당연히 벽사의 임무를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등사 대웅전 귀면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귀면은 평면에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무를 깎아 만든 흥미로운 귀면도 여러 군데서 만나볼 수 있다. 강화 전등사 대웅전, 정수사 대웅전, 부안 개암사 대웅전 처마 밑에 있는 귀면이 그 예이다. 전등사 귀면은 둥근 통나무의 마구리 부분에 새겨졌는데, 눈, 코, 입 부분에만 조각도를 댔을 뿐 눈썹이나 입가의 수염, 갈기 등 나머지는 부분은 모두 붓으로 그렸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에서 공격성보다 포용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귀면이다.






전등사 대웅전 수미단의 귀면
강화 전등사 대웅전 불단 서쪽 측면에도 이채로운 귀면상들이 많이 장식되어 있다. 모두 날카로운 송곳니와 뿔을 가지고 있는데, 입에 초엽을 물고 있는 것도 있고, 연꽃 봉오리 또는 연꽃이 달린 줄기를 물고 있는 것도 있으며, 얼굴이 박쥐를 닮은 것도 있다. 이런 형식의 귀면은 인도 불교 사원의 ‘키르티무카’라고 하는 벽사상과 조상이 같다. 인도 불교 사원의 키르티무카, 즉 인도 귀면이 입에 구슬다발을 물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귀면은 연꽃이나 초엽 등을 물고 있지만, 입에 어떤 물건을 물고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비각 철문의 귀면 고종임금 즉위 40년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이 현재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쪽 인도 모퉁이에 남아 있다. 기념비를 돌아가며 화강석 기둥의 울타리가 처져 있고, 남쪽에 홍예석虹霓石(무지개 모양의 돌)이 아름다운 만세문이 세워져 있다. 지금의 만세문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반출해 간 것을 해방 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만세문에 달린 문의 철창살 꼭대기마다 작은 귀면이 올려져 있는데, 하나의 거푸집으로 대량 복제해 낸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 고깔을 쓰고 있거나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한국 전통의 귀면과는 다른 모습이다. 잡귀를 막아 비각 일대를 상서로운 공간으로 유지하는 임무를 이들 귀면이 맡고 있다.



개암사 대웅전 귀면
개암사 대웅전 정면 처마밑좌우에 귀면이 있다. 이들 귀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두 귀면의 눈동자 방향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오른쪽 귀면은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들리고 있고, 왼쪽 귀면은 왼쪽으로 돌리고 있다.이것은 분명 잡귀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추적하는 눈초리이다. 귀면의 시선을각기 다르게 한 것은 벽사의 범위를 넓히고 그효과를 높이려는 묘책임이 분명하다.

 

    



금산사 대장전 정문 궁창의 귀면
사팔뜨기 눈이 인상적인 이 귀면은 대장전 정문 궁창에 그려져 있다. 연꽃 두 송이를 입에 물고 있으며,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나 있고, 입가에는 흰 수염이 풍성하다. 사팔뜨기 눈은 이미 눈 앞까지 다가온 잡귀를 경계하려는 벽사 의지의 표현이다. 귀면에서 시선은 이처럼 표정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나주 불회사 입구의 장승 장승에는 마을지킴이 기능이 강한 것과 이정표의 기능이 강한 것이 있다. 사찰 입구나 큰 도시 입구에 있는 것은 이정표 기능을 하는 장승일 경우가 많다. 장승의 얼굴을 귀면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벽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귀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장승은 보통 입을 크게 벌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이 정도가 한국 장승이 잡귀를 향해 짓는 가장 위협적인 표정임에라.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였고 우리문화연구원장, 문화재 감정위원, 정신문화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저서로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전통문양』 등 다수가 있다.

 

출처 : http://www.gg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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