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전투 비행단장(들)과 사단장 / 이원우
못나도 감히 자부하는 게 있다. 군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다. 아니 그게 너무 거창하다면 ‘관심’이라고 하자. 제대하고 나서 근 20년 만에 부산 강서구에 있는 5전투 비행단과 인연을 맺고 나서부터였다. 지금은 대외적으로 3872부대지만, 당시엔 5672부대였다.
나는 일찍부터 비행단에서 주최하는 호국 문예 심사 위원장을 맡기 시작했다. 몇 년째 그러노라니 자연히 부대장(전투비행단장)들과 교유(交遊)하게 되고, 마침내 돈독한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그 중에서도 김진삼 ․ 김부곤 ․ 주창성 ․ 김영곤 준장들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그들이 퇴역한 지 오래라 주소조차 모르지만…….
나는 육군 예비역 하사 출신이고, 아들은 공군 병장이었다. 나는 반세기가 지나서 내가 옛날 근무하던 26사단에 갖가지 이유로 드나들지만, 아들은 지금 멀리 가 있으니 어찌 제가 몸담았던 사천 비행장에 발걸음을 하랴. 그게 아비로서는 가슴이 아프다. 이 모순이 내가 군을 잊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심심하면 ‘공군가’나 ‘26사단가’를 부르는 심경, 누가 있어 헤아려 줄까?
네 비행단장들과 선을 그어가며 지휘관으로서의 그들의 업적을 들먹이는 것은 오히려 결례다. 해서 뭉뚱그려 그들과의 추억을 되새겨 봄으로써 군을 예찬하련다. 대민 지원이야말로 군 전투력의 근간이라는 내 주장에, 귀를 기울여 준 네 비행단장과 우리 공군, 아자!
비행단장은 노인 학생 87명을 인솔하여 4박 5일 동안 대북 여행을 떠나려 할 때, 공항까지 부대 버스를 실어 주었다.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자말자 공항에 다시 버스를 보내 안전하게 귀교시켜 주었다.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노인 학교 졸업식을 하는데, 다시 버스를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군악대로 신나는 음악을 연주해 주었고. 내빈들이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군악대는 자생적인 소규모였지만, 수시로 노인들을 찾아와 위문하였으니 그게 바로 군 문화의 새 지평이었다.
공군 참모총장에게 편지를 내가 썼다. 비행단장이 정말 열심히 부대 지휘를 한다고. 참모총장이 주요 지휘관 회의 입구에서 비행단장을 만나 악수하고, 마침내 전 지휘관들에게 소개했다고 해서 우리도 얼마나 기뻤던가? 비행단장은 시골 조그마한 초등학교 교실(노인학교에서 빌려 썼음)까지 찾아와 대현 선풍기 두 대를 사 주고 갔다.
전국 최초의 노인 문학상을 제정해서 북구청 대회의실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비행단장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축사! 국회의원, 유네스코 임원들을 비롯한 교육 동지, 문우 들(*이 경우 ‘들’은 ‘등’)은 또 얼마나 박수를 보냈던가?
북의 남침 전쟁인 6 ․ 25 5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부대 연병장에서 나는 비행단장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대령들은 내 우편에, 구의회 의장은 저만치 떨어져 좌정했고. 장병 수백 명과, 내무반에서 하룻밤을 보낸 어린이들이 나란히 줄서서 있는 가운데서다. 마치고 8킬로미터 행군도 함께 했다.
부대 버스를 또 이용했다. 어린이들을 싣고 부대까지 가서 군견 훈련을 관람하게 한 것이다. 장병들이 수시로 운동 기구 도색도 했고, 거무튀튀하고 흉물스런 옹벽을 쇠 솔로 긁어내는 작업도 마다 않았다. 우린 거기에 벽화를 그렸고.
비행단장실도 수시로 방문했다. 신축 기념으로 부산 최고의 화백에게 부탁하여, 대형 무궁화 그림(동양화)도 내 이름으로 기증했고.
그러니 퇴임할 때, 내가 큰소리칠 건 거의 없지만, 비행단(단장)과의 교류는 밝히지 않을 수 없었고말고. 참 그 일련의 과정에 현 양하윤 주임원사가 기여한 바 크다. 오랫동안 노인 학교에 나와 봉사를 도맡아 했으니…….그는 3년 전, ‘공군을 빛낸 인물’로도 뽑혔다.
그러나 이제 물리적으로 5전투 비행단을 방문하기는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지. 다만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잊지는 못한다. 대신 내게는 26사단이 있다. 거기서 노병으로서 해야 할 일을 나는 찾고 있다. 26사단이 지척에 있다. 거기서 총 50시간 안보 강연을 하는 게 목표다. 힘들겠지. 그러나 가능함을 확신한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지금은 암 수술 후 두 달밖에 안 되었으니…….1년에 열 시간씩 잡으면 다섯 해를 살아야 한다. 깊은 상념에 침잠해 보자. 군, 이 노병의 영혼이 묻힐 곳인가? 자문하면서 나는 긍정의 자답까지 내놓는다.
후기/ 기쁘다. 3년 동안 총 스무 시간의 안보 강연을 마쳤다. 앞으로 서른 시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사단장이 바뀌었으니 상견례부터 가져야지. 다행히 부사단장 윤성필 대령이 적극 도와 주기로 했다. 다음주 면담이다. 만세 그리고 공격(26사단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