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를 부르는 탐욕"(롬 13:6-7)
세익스피어(Shakespearea)는 인물 창조에 뛰어났다고
인정받는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입니다.
{세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인물 가운데, "오델로"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질투의 화신}이라고 불려도 좋을 인물입니다.
영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성과 인기를 모으고 있던
한 연극 배우가 오델로 역을 맡아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을 맡고 나서, 처음에는 오델로가 느꼈을 불타는 질투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답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무릎을 탁 내리치면서 소리쳤답니다.
"그렇다.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햄릿 역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내가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내 인생에서 그때만큼 강렬하게 질투를 느꼈던 적은 없었지."
질투란 보통, 다른 사람의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죄악된 욕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질투를 다른 말로 하면,
곧 {탐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질투의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나타난 심각한 질투의 장면을 기억해 보십시오.
창세기 30장 1절입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이러한 종류의 질투심은 바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끝에 가서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낳게 됩니다. 라헬의 질투심은 결국,
아기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격적이고 옳지 않은 해결책을 제안하게 됩니다.
창세기 30장 3절입니다.
"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라헬의 질투심은 후에 그녀가 낳은 아들, 요셉이 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떤 것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그릇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는 것과,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인 그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램은, 얼마든지 품어도 좋을
건강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가족을 괴롭히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질투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넘어뜨림으로써 자신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 함께 서있을 때,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훨씬 더 견고하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향해 질투의 마음을 품음으로써, 함께 넘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좋은 것들에
감사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