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가 쓴 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0여년간 묻혀있던 나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그 때 그시절을 다시한번 회상해본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건강한 몸으로 같은 아파트에서
경비원 생활을 하고있다. 지금까지 오비맥주(주) 32년 + 각화금호타운 14년 = 합하여 46년간의 직장
생활을 중단없이 이어가고 있으며 언제까지 이어질 지 나자신도 모른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체력은
조금 떨어질런지는 몰라도 그 부족함을 노력과 열정을 더하여 최선을 다 하고 있으며 언제든 미련없이
후회없이 직장생활을 마감하련다.
나의 일기장 / 미친 겨울
2007년 1월 31일 (수요일)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내 일터인 아파트를 향해 오늘도 힘차게 악세레타를 밟는다. 어둠속 텅 빈 외곽도로를 벗어나 동광주 IC에 접어드니 어슴프레 각화 금호타운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고 바쁜 걸음으로 새벽을 여는 각화동 농산물 시장을 향하는 콧김 서린 시장 아줌마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직장 정년퇴임 후 제2인생으로 아파트 경비원을 선택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눈물과 웃음을 함께했던 만 2년간의 아파트여행, 흠뻑 정들었던 1동을 떠나 새로운 행선지인 5동으로 자리를 옮긴지 한 달이 되었건만 아직도 먼발치에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낯선 주민들의 시선이 왠지 부담을 갖게 한다. 큰 평수에서 대체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모습만을 보아오다 작은 평수인 5동으로 옮겨와 서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박한 모습을 대하다보니 나 자신을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한결 편하다.
올해부터 정부시책으로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최저 임금제가 시행됐으나 '감원바람'에 되레 실직위기에 내몰려 우리 아파트에서도 지난 연말에 8명의 경비원이 퇴출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사자들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대다수 아파트가 관리비 부담을 줄이려고 경비시스템을 바꿔 경비원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데 어찌하랴! 어디 사용자만을 탓 할 수 있겠는가?
최저 임금의 80퍼센트를 적용해야 할 내년에는 감원바람이 더 거세질 것이 분명한데 임금보다 일터 자체를 더 중요시 여기는 고령자들의 가슴은 더욱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며칠 전 KBC '아파트 경비원 최저임금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방송대담 프로에서 우리가 근무하는 아파트에서 퇴출된 경비원 2명이 출연하여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정부에서 시행한 아파트 경비원의 최저 임금제가 오히려 실직자를 양산했다하며 새 법안을 맹렬히 비난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에서만 볼게 아니라 긴 안목으로 넓게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고思考가 아쉽기만 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들이 분분하지만 이번에 우리 근무처에서 퇴출당한 8명은 경비원 총 33명중 고령자순에 의거 위로는 73세, 아래론 69세가 해당 됐는데 무엇이 그리도 억울한지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어서일까? 서운해 하시는 그 분들의 모습에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오늘도 겨울답지 않게 봄날같이 따사롭기만 하다. 점심 식사를 하고 식곤증이 몰려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밖에서
"경비아저씨?" 하며 날 부르는 소리가 어렴 풋 들려온다.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니 이게 웬일인가? 1동에 사시는 할머니 두 분이 무엇을 잔뜩 사들고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뛰쳐나가
"할머니? 여기까지 웬 일이세요?"
"경비반장님 보고지퍼 왔지라우. 관리소장에게 다시 1동으로 돌려 달라고 해야겠어!" 라고 하시는 말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거듭 인사를 올렸다.
당시 1동에서 근무할 때 나에게 너무도 잘 해 주신 분들이다. 자식이 대학교수이고 손자가 서울대생인데도 조금도 내색 않고 그렇게 소박하고 겸손하실 수가 없다.
옮겨온 자리가 불과 몇 백 미터에 불과한 거리지만 팔순의 나이에 몸도 불편하신데 그 곳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나를 생각하는 그분들 성의가 눈물겹도록 고맙기만 하다.
"할머니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요즘 겨울날씨 정말 웬일인가? 계절은 한겨울인데 창밖은 완연한 봄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엘리뇨' 현상이라 하는데 겨울의 대명사인 소한小寒 대한大寒 추위도 알게 모르게 지나갔고 계속되는 불경기에 올 겨울 대목을 노렸던 '겨울상품' 상인들의 땅이 꺼질듯 한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지난해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렸고 몹시 춥기도 해서 올 겨울에는 특별히 아파트 월동장비도 잔뜩 구입하여 눈과 추위에 적극적으로 대비했는데 여직까지 빗자루 들고 눈 한번 쓸어 보지도 못했으니 계절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다.
앞으로 지구의 이상난동으로 자연환경이 서서히 파괴 된다고 하는데 서서히 그 징조가 여기저기에서 실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조심스레 걱정이 된다.
밤이 깊어간다. 아파트 경내 가로등도 모두 꺼지고 칠흙같이 어두운 밤, 하루를 소등하고 잠자리에 누우니 왠지 잠은 안 오고 온갖 망상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간다.
하루를 반성하며 "내일에 더욱 충실하자."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억지 잠을 청해본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다운 겨울을 그리며....
- 나의 일기장에서 이상현
첫댓글 이상현님
아파트 경비를 하다보면 갑질하는 주민을 가끔 만납니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경비를 몇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현님은 다르군요.
봄날처럼 따뜻해서 미친 겨울에 정말 마응 따뜻한 할머니를 만 났으니 참 행운입니다.
그 후로도 10년을 한결같이 근무하고 있으니 행운 중에 행운입니다.
행운의 사나이 이상현님 화이팅!!!!!!!
일에는 미쳐야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다보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어있지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국장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