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화상 / 살전 5:16-24
오늘도 귀한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유대교 회당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메시야가 오시는지 망을 보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왜 그 일에 지원하게 되었는지를 묻자 그들은 다소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두 가지의 매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별로 할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은퇴할 때까지 직장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지요? 우리나라에 왔던 평화운동가 유대인 랍비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라”는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제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결산을 요구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우주적 종말로서의 재림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개인적 종말이 있습니다. 개인적 종말로서의 죽음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내일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분명히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위협이 아니고 오늘을 보람 있게 살라는 요청인 줄 압니다. 그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종말을 잘 준비하며 사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오늘날 성도들과 달리 재림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재림할 때 살아있는 자들은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겠지만 이미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주님께서 재림하실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도적같이 아무도 모르게 오신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는 주님을 잘 맞이하여 주님의 영광 속에 참여할 수 있을까?’ 여러분, 재림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모습입니까? 은퇴할 때까지 내 직장은 안전할 것 같다고 했던 사람들과 비교할 때 재림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관심에 비해 재림을 준비하는 모습이 부족했습니다. 재림을 너무 기다리는 나머지 현실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일을 하지 않고 재림만 기다렸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니까 먹을 것이 없었고 다른 사람한테 신세를 지고 폐를 끼쳐야 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좋게 비칠 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결코 재림을 준비하는 올바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재림을 잘 준비하는 깨어있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5장은 그러한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귀한 말씀으로 재림에 합당한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올바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재림을 잘 준비하는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보면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재림을 가장 잘 준비하는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삶은 현실 속에서 매일과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 삶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에서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하는 말은 어떤 특정한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매일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있을 때도 기뻐해야 하지만 집에 있거나 직장에 있거나 일터에 있을 때도 기뻐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새벽기도회나 식사시간에 기도해야 하지만 직장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당연히 감사해야 하지만 우리 인생이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어렵고 힘들고 안타까운 일을 만났을 때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세 가지 주님의 뜻은 우리의 삶을 현장에서 매일 매일과 같이 이루어져야 할 말씀입니다. 여러분, 재림을 준비하는 깨어있는 삶은 어느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기뻐하며 매일과 같이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며 사는 삶이 재림을 준비하는 깨어있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으로 여러분은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 시는 윤동주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시인은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미워져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가꿔온 내 모습인데 하는 마음에 가여워져서 다시 돌아가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다시 봐도 미워집니다. 너무나 기대에 어긋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아서면 그리워집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너무나 아름다운데 자신의 모습은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윤동주의 자화상을 보면서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러분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특별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비춰본 여러분의 모습은 괜찮습니까? 마음에 듭니까? 아니면 미워져 보고 싶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오늘 세상 속에 비치는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은 이기적이고 말이 많고 양보하지 않고 불평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리든 다른 사람이 그리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모습이요 우리가 가져야 할 최고의 자화상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 뿐 아니라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모습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래서 구원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날 때 우리 안에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그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우리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갈5:16)오늘은 대림절 4번째 주일입니다. 2천 여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승천 하신 주님을 믿어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하늘로 승천 한 것 같이 너희를 예비하러 다시 오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이어 가다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예수 맏는 믿음인 등과 성령 충만으로 준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샘물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화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여러분의 자화상을 그리셔서 주의 재림을 준비하며 깨어 기도 하는 사랑하는 샘물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