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의 태동>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언제부터 볼것인가가 논쟁이 많다. 어떤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헌법제정과 육이오 극복, 어떤이는 직선제로 뽑은 김영삼대통령이라 한다. 본인은 전자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자유라는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로 새롭게 되어야한다.”(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라고 말했다. 여러 민주화를 거치면서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은 것은 분명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6.25 전쟁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린 적이 없다. 우리 국군은 전쟁 중 13만 7899명이 전사했고 한국 경찰은 3131명이 사망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피를 흘려 지켰다. 우리 동포 뿐만 아니라 세계 젊은이들이 함께 피를 흘렸다. 그중에 미국은 아무런 상관도 없으나 미군은 총 5만4천260명이 6.25때 사망하였었는데, 이 중 전사자는 3만3천643명, 질병, 사고에 의한 사망자 등은 2만267명이었다.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자유민주주의는 무엇과 싸웠는가? 독재와의 싸움이다. 그것도 말이 된다. 하지만 공산주의와의 싸움이다. 근본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상과 이데올로기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는 믿음의 싸움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자.
한편, 이보다 먼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집회가 1,542회 있었고 2,023,089명이 참가했으며 7,500명이 사망했고 부상자가 15,961명, 검거된 자는 52,770명이었다. 교회 47개가 불탔고, 학교 2개, 민가 715채가 피해를 입었다. 이 또한 수많은 피를 흘린 사건이다. 따라서 3.1만세운동이 봉건주의를 끝내고 공화정을 시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근원이라 말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고 중국의 반제국주의 반 봉건주의 5.4운동,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이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