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웃어야 한다 / 정희연
함평 엘리체 컨크리클럽 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협력업체 사장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아내에게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자녀가 셋 있었는데 아직 대학을 채 졸업하지 않았는데 일이 난것이다. 현장 소장으로 있었던 터라 남의 일 같지 않아 2박을 같이했다. 가족이 아니라 안에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 쉽게 볼 수 있는 중앙 홀에있었다.
2일째 되던 늦은 시간 이었다. 상주가 나에게 오더니 커다란 봉투 하나를 건네며 잠깐 가지고 있어 달라고 한다. 병원 봉투로 주소와 상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지금 까지 비보 이유가 잘 맞춰지지 않았는데 그 사유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것은 진단서였다. 사망의 원인을 알 수 있는 서류였다. 얼른 서류를 봉투에 넣고 곧바로 상주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에게 증명할 명분이 필요해서였다.
그의 아내를 본적이 없다. 영정 사진으로 처음 봤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으니 나이는 50이 안될 것이다. 그녀는 슬픈 표정이 역력했다. 밝고 예쁜 것도 많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너무나 갑작스럽고 마음 아픈 일이라 정신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을 하면서도 사진을 보니 더 애잔했다. 앞으로 자녀가 계속 간직하며 볼 것인데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감내할지까지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어머니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 이쁘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농촌에서 가사와 농사를 거두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남편에게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듣지 못했고, 아내를 아끼고 챙기는 것도 서투렀다. 그런 가운데 노모를 모시느라 긴장 속에 살아선지 여유가 없었고 웃음이 적다. 행사가 있어 단체로 촬영을 할 때면 몰라도, 혼자일 때 카메라를 들이대면 손사래를 친다. 영정 사진은 20여 년 전 것이 마지막이다.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고 촌스럽기까지 하다. 어머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에게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뒤로 뺏다. 다른데 쓸 일도 많은데 뭐 하러 허투루 쓰냐는 것이다. 하루는 카메라를 들었다. 하얀 담장을 뒤로 하고, 머리에 물을 묻혀 빗질도 하고, 해 지난 한복을 입고 셔터를 눌렀다. 결과는 뻔했다.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하두 바라서 그랬던 거였다. “어머니 나는 말이요 장례식에 가서 온화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데요. 그 사람과 만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어도 사진 한 장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어요?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아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죽는 날까지 함께할 텐데 이쁜게 하나 남겨주면 안 돼요? 아들을 위해서!”
촬영 날짜를 미리 말해 주었다. 이제는 확실하게 약속을 해야 할 때가 되어 두 달 후에 날자가 잡혔다고 거짓말을 했다. 머리도 자르고 기름도 바르고 예쁘게 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한복을 대여해 주는 곳이라 몸만 가면 되니 그리 아세요.” 시간은 금방 흘렀다. 바빠졌다. 아내와 딸이 인터넷을 뒤져 사진관을 찾았다. 아내가 한복을 골랐다. 화려한 청색 저고리에 하얀 치마를 들고 왔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도 고치고 옷고름도 곱게 매듭을 지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역시나 달랐다. 취향에 맞게 고를수 있고 배경도 맘대로 바꿀 수 있었다. 곱다. 어머니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바퀴가 달린 대형 카메라를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소리가 경쾌하다. 100장에 가까운 사진이 나왔다. 한 장을 골라야 한다. 작은 올림픽이다. 온화한 표정에 미소가 담겨 있어야 하고, 특별히 눈이 웃어야 한다. 006. 015, 023, 037, 056, 069 마지막은 아내와 같이해 056번이 결정되었다.
목포 평화의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인지 배가 고팠다. 어머니는 홀가분한 지 이동하는 차에서 고맙다고 며느리 손을 잡는다. 웃음이 가득하다. 아내가 추천한 집으로 들어섰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한정식이다. 음식이 나오는 데로 모두 그릇이 비워진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맛도 좋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가 소주잔을 부딪친다. 아내는 연달아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 하며 음식을 두 사람 앞 접시에 채워 놓는다. 며칠 후 메일이 전송되어 왔다. 주름을 없애고 얼굴색도 환하게 고친 것이었다. “그래 이거다.”
사회생활을 하면 문상을 가는 일이 많다. 아는 사람의 가족이 죽으면 그 슬픔을 나누려고 위문을 한다. 생전에 죽은 사람을 만난 적이 드물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거울을 본다. 그리고 분향소로 이동한다. 사진을 본다. 얼굴이 곱다 다행이다. “이분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구나!” 마음이 편해 상주에게 쉽게 말을 건넬 수 있다. “○○○ 얼굴이 참 고우셨네?” 나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보며 눈인사를 한다. “수고 많으셨어요 좋은 데로 가세요.”
(현장 명, 소속, 직위 등은 사실과 다름)
첫댓글 우와!! 벌써 쓰셨어요.
하나라도 잘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정희연 네.
와! 이런 속도로 글 쓰시면 하루 한 편도 가능하겠어요. 오늘 기차에서 강원국 작가 봤는데, 그 기운 나눠 드립니다.
아이고! 황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 읽으면서 제 글 소재도 찾았네요. 어머니의 영정 사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맘이 아프네요.
선생님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희연 선생님, 빛의 속도로 글을 쓰네요. 그것도 능력입니다. 외람되지만 글도 많이 좋아졌어요. 쓰다 보면 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수필, 동화책도 내시고 선생님의 속도는 따를 수 없지요. 선생님을 따르려 버선 발로 뛰고 있는데 워낙 기초 실력이 없어 더딥니다. 맨날 ~하다.에서 머물러 있어요.
대단하세요.
늘 선두를 다투시네요.
마지막 인삿말에 공감합니다.
부디 이생의 무거운 짐 내려 놓고 좋은 데로 가세요.
저도 그리 인사한답니다.
그동안 밀어오다 올봄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한 줄 넣었고 여름에 달성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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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이런 의미가 있네요. 저도 부모님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가장 크게 효도 하셨군요. 신생님 멋지세요.
나머지 버컷리스트도 다 이루시기를 응원합니다.
잘 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습니다.
영정사진이라고 하면 좀 그러니까 장수사진이라 하데요. 나도 찍어야 될 것 같은데?
아!, 그런가요 장수 사진, 하나 알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남자시네요. 아내와 엄마 모두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