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 이임순
그이와 나 사이에 부르는 호칭이 몇 있다. 선배, 형님, 회원, 동문 등이 그것이다. 한 고장에서 시차를 두고 태어나 선·후배며, 같은 가문의 형제항렬과 결혼해 동서가 되었고 중등을 같은 학교를 졸업하여 동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봉사단체에서도 함께 활동한다. 이런저런 인연 중에 로타리클럽에서 격식이나 주위 시선 의식하지 않고 만나서 함께 나누는 것이 좋다. 한 달에 세 번은 기본이고 대여섯 번은 얼굴을 마주한다.
내가 로타리클럽 활동을 하게 된 것은 형님의 권유가 있어서다. 동문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차 한잔하자고 했다. 그 당시 세 아이 수발에 웃음치료와 상담, 특수언어치료를 배우느라 늘 시간에 쫓기며 지냈는데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하자고 했다. 몇 년 뒤에 하겠다니 아이들이 커도 바쁘기는 매일반이라고 했다. 혼자 사는 할머니한테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며 자원봉사를 하던 때라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같은 봉사려니 생각했다. 허나 배우는 일과 겹치면 강의실로 먼저 행했고 늦공부의 재미에 빠져 내가 회원이라는 사실을 잊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요즈음 많이 바쁘냐고, 얼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고 챙기면 자석처럼 끌리는 힘이 있었다. 다음 모임 때는 얼굴 보이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다 보니 회원의 의무인 참석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회원들과 부대끼며 몸소 실천하면서 깨닫고 느끼는 과정에서 도리라는 것을 익히고 행동으로 옮겼다.
책으로 얻은 지식은 머릿속에 쌓이는데 실천으로 더해지는 경험은 모닥불을 지피듯 따스함이 있었으며 새끼도 쳤다. 하나를 얻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온기로 다가갔다.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누는 즐거움이 가슴을 데웠다. 그이가 챙기지 않아도 스스로 참석하며 로타리라는 굴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겼다. 몇 해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미술치료를 공부할 기회가 온 것이다. 너무 욕심났던 과정이라 등록하고 공부를 하는데 대상자를 정해 그 아이를 관찰하면서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주로 강의를 들으러 다녀야 했다.
로타리 활동이 뒷전으로 밀렸다. 관찰 대상자의 행동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잠자는 시간을 갉아먹었다. 피곤하기는커녕 재미가 솔솔 더해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미술치료로 쓴 학위논문에 빠져있는데 개가 짖었다. 그래도 올 사람이 없다고 책만 읽고 있는데 현관문을 세게 두드렸다. 그이였다. 아무리 인기척을 내도 반응은 없고 개가 사납게 짖어대니 겁이 났다고 한다.
대뜸 로타리클럽의 회장을 하라고 한다. 당치도 않은 소리라며 뚝 잘라 거절했다. 남편이 형님이 왜 왔느냐고 물었다. 그이의 말을 그대로 했더니 그렇지않아도 맨날 허둥대면서 왜 일거리를 만들려고 하냐며 강한 어투로 정신 차리라고 했다.
이튿날 동서끼리 밥 한 끼 먹자고 전화가 왔다. 식탁에 마주 앉아 또 내게 설득을 한다. 차기회장 내정자가 갑자기 탈회하여 클럽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이 사태를 수습할 적임자가 나라고 주위에서 추천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전날 남편이 하도 완강하게 말해 “형님이 허락받아주면 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랴. 그이가 말을 하니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승낙을 해버린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더니 오랜만에 하는 형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더 물러설 명분이 없다. 그이로부터 적극 협조하겠다는 당부를 받고 동백로타리클럽의 선장이 되리라 각오를 했다.
불이 떨어졌다. 당장 6개월 후에 취임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로타리의 기본지식이 부족했다. 열성 회원이 모아둔 모든 자료를 가져다 읽었다. 복잡하고 무슨 일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낯선 단어도 수두룩하다. 그동안 허울 좋은 회원 노릇만 한 것 같아 긴장된다. 또 읽었다.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세 번째부터는 월별 행사와 내가 해야 할 일, 중요 용어를 꼼꼼하게 메모하며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왕 마음먹었으니 최선을 다해 1년간의 봉사를 다짐하고 실천에 나섰다. 찾아다니며 이주여성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자매클럽이 하는 집수리에 회원들과 함께 도배를 했다. 열 분의 어르신들 백내장과 녹내장 수술을 해드렸으며 신새벽에 새해 첫날 해돋이 구경 가는 사람들에게 차 봉사도 했다. 진한 울림이 있는 것은 이주여성의 친정어머니 초청이다. 중국 산동성에서 어떻게 사는지 늘 궁금했는데 딸이 사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체류하는 동안 지인의 식당에서 일자리를 주선하여 2개월 동안 일하게 해 가게에 보탬도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클럽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회원들이 단합하여 앞장서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민 것을 잊을 수 없다.
회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지구 임원에 발목이 묶였다. 흔히들 봉사는 남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하면서 자기발전이 있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슴을 따뜻하게 데우는데 그만한 것도 없지 싶다.
한때는 원망도 했는데 내 생을 푸지게 살 수 있도록 해 준 그이가 고맙다. 항상 지근거리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면 두 팔 걷고 조력자며 지지자의 역할을 묵묵히 해 주니 회원들이 동서지간이 자매 같다고 한다. 함께 봉사활동을 한 지도 어언 20년이다. 숱한 보람과 감격의 순간이 있었고 가슴 아린 아픔도 함께했다.
선배님, 형님, 동문, 동백로타리클럽 회원 우oo. 그대로 인해 많이 배우고 살아가는 맛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미 갖춰졌으니 추천을 하셨겠지요. 봉사하는 선생님이 멋지십니다.
감사합니다. 매사에 부족하니 봉사하면서 배웁니다.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소중한 관계네요.
감사합니다. 농담으로라도 내 흉을 보면 우리 형님이 그런답니다. 그 사람 흉 볼 것이 뭐가 있느냐고. 우리 동서 흉 보는 사람 미워죽겠다고. 형님 덕에 저를 건드리는 사람 없고, 저 때문에 형님 흉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동서지간이 자매같다고들 합니다. 그래도 형님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답니다.
빼빼한 몸으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본받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그저 매사에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인복은 인덕이 있으신 분들에게 있더라구요. 좋은 분 옆에 더 좋은 분이 있는 거겠죠.
감사합니다. 긍정의 힘이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