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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서신 3강 사귐의 특성 ~ 3장 가인 마귀 자녀 사랑 4장 사랑 실천 영 분별
26.07.29(수)
요한일서 3장 18절에서 20절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요한서신 세 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사귐의 특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포인트는 신앙생활의 본질인 하나님과 사귐이라는 관점으로 본문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가져오는 특성을 파악하고 우리 삶에 적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와 사귀면 그 사귐이 만들어내는 삶의 양식이 나오죠.
그 다음에 내용들이 있고 그것이 모아져서 특성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귈 때에도 이런 특성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특성은 우리 개인이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갖춰야 될 특성이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램이고 인간상입니다.
또 우리가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는 어떠한 곳이어야 되는가 어떤 특성이 있어야 되는가에 대한 그런 본질적인 그런 요구들이 있는데 바로 이 특성이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의 특성이 되어야 되는 그러한 것들이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오늘 3장 4장은 나의 삶에 있어서 어떤 특성이 나오는가 또 교회는 어떤 특성을 갖춰야 되는가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같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자 첫 번째로 하나님과 사귀면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특성은 뭐냐면 깨끗한 삶입니다. 이 우리가 깨끗한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며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강조하는 게 뭐냐 하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다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함께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함이라
그렇게 택하심과 자녀 삼음에 대한 목적을 썼죠 그러니깐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라는 겁니다.
교회나 우리 개인이 다른 것들을 더 잘 할 수 있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그런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이죠.
그런데 깨끗한 삶을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나온다 그러니까 하나님하고 사귀고 하나님이 있으면 우리가 죄를 마음대로 지을까요? 더러운데 막 뒹굴까요? 그렇지 않잖아요.
죄 짓는 곳에는 뭐가 없어요.하나님이 부재하세요. 그래서 죄를 마음 놓고 짓는 겁니다. 근데 하나님하고 사김이 이어질 때 우리의 삶에는 어느덧 깨끗한 삶이 자리 잡는다.
그의 깨끗하신 것 같이 우리도 깨끗하게 된다.
하나님을 닮는다 구약에서 뭐라고 말했어요. 이 말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가장 큰 바람은 바로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거룩하고 한 개인이 거룩할 때 그때 빛이 드러나고 그 말이 권세가 있고 영향력이 있게 되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며는 이 범죄들을 멀리하게 되는데 이 구절은 조금은 어려운 구절이에요. 3단 6절 보세요.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하나니 하나님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했고 그를 알지도 못했느니라
굉장히 놀라운 진술이죠. 이걸 들으면서 깜짝 놀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범죄하고 있는데, 그럼 내가 하나님 밖에 있는 건가 이렇게 근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뭐냐 하면 범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할 때 그 범죄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말타노라는 단어인데 현재형입니다.
현재형은 헬라어에서 지속적으로 계속 가는 걸 말해요. 현재 진행형으로 옛날에 있는데 지금도 계속 뜨고 앞으로도 계속되는 걸 말해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죄안에 머무르는 것이 바로 죄를 짓는다 라는 현장을 썼기 때문에 어쩌다가 한번 점을 찍으면서 연약함 때문에 죄를 짓는 것 이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지속적으로 계속 짓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뜨문뜨문 짓는 것은 있지만 이러한 죄가 머물러 가지고 자리 잡고 그의 어떤 삶의 특성이 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성경을 말씀하고 있죠.
자 두 번째 특성은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특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에게 왔었던 굉장히 큰 은혜 중의 하나는 뭐냐하면 칭의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그 모든 죄가 예수님께 넘어가고 전가되고 예수님에게 있던 의로움이 우리에게 넘어오죠 법적으로 우리는 완벽하게 의인입니다. 신분적으로도 의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실제적으로 보며는 우리가 죄를 짓죠 불의를 행하죠. 이런 부분에 있어서 오늘 삶의 특징으로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우리가 신분상으로는 의인이지만 불의를 계속해서 행하는 그런 자들로 살아갔었죠. 그런데 하나님하고 사귀면서 의인이 의인답게 된다.
이것이 주님과의 사귐에서 오는 굉장히 큰 특성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자녀들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으로우신 것 같이 의롭고 그러니까 사귐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거예요. 사귀는 대상인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그 신앙 그분의 인격과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삶에 드러나는 그의 신분과 소속 그것은 그가 의롭냐 불의하냐? 그걸로다가 알 수 있다라고 3장 10절에서 말하죠.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마괴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그에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의를 행하지 않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다 이렇게 인제 본 거 어디에 소속돼 있나 하나님께 소속돼 있나 마귀에게 소속돼 있나 그거에 대한 어떤 기준이 된다. 그렇게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세 번째 사김의 특성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깨달음과 신령한 지식만 있으면 구원받는다.
그렇게 주장했던 자들인데 그런 자들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많이 있죠. 삶은 안 따라오고 사랑도 증진도 안 되는데 뭔가 알면은 뭔가 신앙이 된 것처럼 그것이 그런 아류들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사귀면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게 뭐냐하면 사랑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하는 사람이 된다. 그 얘기를 지금 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엄청난 큰 사랑을 우리가 알았어요. 받았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있기 때문에 사랑을 경험한 것만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죠. 100점짜리를 요구하는 거예요. 이거는 그래서 점진적으로 그분을 알아가면서 사귀면서 그분의 사랑을 닮아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랑을 잘하는 사람들하고 옆에 있으면 사랑을 배우는 데 굉장히 쉽고 빨리 터득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고. 자라하는 것이거든요. 자녀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말로다가 사랑하는 것도 잘해야 돼요. 말로도 사랑해야 돼요. 그러나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렇게 하자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네 번째 특성은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된다.
우리는 원래 내 멋대로 사는 죄성을 가진 사람이거든요. 죄의 본질이 뭐예요? 하나님을 떠나서 내 멋대로 살고자 하는 성향이 그게 바로 죄거든요. 죄의 본질이에요.
그래서 하나님하고 동떨어지고 하나님하고 독립해가지고 내 멋대로 해버린 게 죄악이죠. 그런데 이제 하나님하고 사귀면서 우리에게 어떤 특성이 나타났냐면은 계명을 지키는 말씀을 지키는 그런 특성이 생긴다라는 거예요.
말씀이 좋고 말씀대로 사는 게 옛날엔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고 손해 보는 것 같고 왜 나만 이렇게 살아 부자연스러울까 이렇게 했는데 하나님하고 사귀면서 말씀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알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게 최선의 삶이며 가장 나의 삶을 영광스럽게 하고 존귀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이정도 철이 나면 이제 말씀을 누가 지키지 말래도 말씀을 알아서 지키고 말씀을 또 사모하고 말씀대로 어떻게든지 행하려고 하는 몸부림들이 우리에게 있게 되죠.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는 것을 행함이라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오는 유익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유익을 두 가지로 말하는데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내 쪽으로 외적으로 담대해져요
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속했구나 어떤 당당함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하나님께 나가는 담대함이 생겨요
왜냐하면 믿음을 갖고 나가고 약속을 붙들고 나가고 말씀에 근거해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가는 일에 담대해지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굉장히 중요한 은혜인데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게 된다. 이렇게 약속한 거예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기도응답을 약속한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도 내 말이 네 안에 거하면 네가 무엇인지 구하라 그럼 내가 이루어주겠다. 이런 약속을 하셨잖아요.
그냥 말씀 순종과 기도응답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구할 때 고민하는 게 뭘까요? 뭐 구하는 대로 주면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쓸까 봐 위험하게 쓸까 봐 걱정하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좋은 거 구해도 못 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말씀을 지켜 말씀대로 행할라고 그래 그러면 허용하는 게 더 많아지겠죠. 그것이 기도 응답을 받는 굉장히 중요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그 안에 거하게 된다. 그것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세요. 계명을 지키도록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계속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행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살려는 거룩한 성령의 소욕을 누리에게 주시죠. 성령의 소욕이 바로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하고의 사귈 때 말씀을 지키는 쪽으로다가 계속해서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자극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 오는 유익 아까 우리 정리하면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게 되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게 되고 우리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
주는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가장 친밀한 어떤 사귐을 표현하는 거죠. 공간적인 개념은 아니에요. 관계적인 개념을 얘기한 것입니다.
그러면 계명은 무언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신구약 말씀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조금 더 좁혀놨어요. 계명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예요.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것 그분의 주권을 믿는 것 그분이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계명을 지키는 거예요.
그분은 왕이고 나의 주인일 때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말씀으로 다가올 테니까요? 그 다음에 그분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며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잖아요.
그러니까는 우리가 적용을 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보면은 그것이 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고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나머지는 각론들이고 세부적인 적용들이거든요.
그래서 계명을 지킨다라는 것은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최고의 계명인 사랑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순종한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야 될 많은 지침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것으로 그렇게 모아질 수가 있죠.
예 여기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현장으로 그렇게 쓰여서 계속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어떤 목적도 있지만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하고의 사귐이 더 증진되고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계명을 준 거예요.
그렇게 계명을 대할 때 계명이 무겁지 않아요.
하나님이 바램이거든요.
이것만 해주면 나랑 더 친해질 수 있는데, 나는 이미 다 살아가고 있는데, 같이 뭔가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네가 나한테 맞춰야 될 게 있어 네가 부정하고 지킬 게 있어 그걸 지킬 때 막 엄청나게 관계가 좋아지죠 그러는 것처럼 우리가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의 관계가 엄청나게 좋아집니다.
3~2강
다섯 번째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알게 돼요.
그러니까 내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소속했는가 소속감에 대한 확신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하고 사귀며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 드는 생각은 아 내가 혼자가 아니다. 내가 고아가 아니다.
나는 어둠에 속한 것도 아니다. 무소속도 아니다. 아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구나 이런 소속감이 분명해진다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가져다 주겠죠.
성경은 두 부류로 인류를 나눠요 어떻게 나누죠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 두 부류로 나누는 거예요.
그것은 오늘의 삶도 그렇고 미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께 속함을 계속 알려주세요. 어떤 영에 속해 있는가 그래서 영을 분별하라고 말해요. 영 분별의 기준은 조금 이따가 좀 언급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속한 자가 어떤 자들에 대한 특징도 나중에 나오는데요. 영 분별의 기준은 첫째는 이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이 있는가
당시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가르침들이 있었다고 했죠. 그분은 육체로 온 것을 부인하는 그런 기독론의 잘못된 가르침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분명하게 사도가 가르쳐주는 것은 예수 그래서 육체로 오신 것이고. 그를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거 간단한 것 같지만 엄청난 일이 거기에 우리에게 작업이 있었던 거예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신데 우리에게 오셨고 육체로 오셨고 그분이 바로 구세주로서 십자가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이 모든 일들을 다 하셨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다.
이렇게 신앙 고백을 하는 자는 기적을 통과한 겁니다. 아무나 못해요. 이건 인간의 지성으로도 안 되고 노력으로도 안 되는 거예요.
그냥 그분이 나의 구세주라는 것이 어느 순간에 믿음으로 다가왔고 믿어진 거예요. 이거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 13절에 유명한 말이 나오죠. 너희가 나를 영접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너에게 준다. 그러나 이것은 육으로는 육적으로는 혈통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시인하고 신앙 고백하는 것은 엄청난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임했고 그래서 우리 마음과 우리 지각을 변화시키셔서 이런 고백이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이 고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고린도 전서에서 보면 뭐라고 말해요.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들은 누구를 통해서 한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술을 주로 시인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두 번째 시금석은 성경 말씀에 대한 반응이에요.
어느 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말씀에 대한 반응이 엄청나게 다릅니다.
뭐 재미있는 이야기나 윤리적인 얘기나 이런 공감할 수가 있지만 정말 생명 대신 예수 그래서도 복음 진리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영이 있는 사람들 성령이 있는 진리의 영이 있는 사람들은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수용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말씀에 신큰둥하거나 무감각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것으로 가지고서 누구에게 속했는지 영을 분별할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그래서 사랑을 다시 한번 여기서 강조하면서 사랑을 통해서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또 이야기하고 있네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받아서 사랑하는 것들이 나와요.
그것은 우리에게서 온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온것이고 하나님께 속한 사랑이 나를 통해서 이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말씀을 잘 반응하는가와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사랑이 실천되고 있는가 그런 성향성이 강해지고 있는가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는가? 이런 것으로다가 영을 분별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있습니다.
여섯 번째 특성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사귀는 것이 간헐적으로 사귀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가 데이트하고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라고했지요 계속해서 사귐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함께 살아버리는 거예요. 결혼해 가지고 그거를 우리가 거한다. 그렇게 말이에요.
이 거한다라는 말이 저는 참 좋은데 성경이 참 많이 즐겨 쓰는 건데 살다 거 자잖아요. 자리를 정해놓고, 살아버리는 거예요. 어쩌다가 오는 게 아니에요. 여인숙처럼 역관처럼 들렸다 가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 주소를 정해놓고, 살아가는 거다 하나님하고의 사김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 그러한 거함이 이루어진다 얼마나 이게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을 아는 것은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돼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이 사랑이시니까
그 다음에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예요. 언제나 예수님을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관계를 맺게 되고 사귀게 되고 거하는 자리까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게 되는 것이죠.
누구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신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엄청난 고백인 겁니다.
이 고백에 의해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고 영원한 운명도 결정되고 어디에 속해 있고 어디에 거하게 되는가 나중에는 영원히 온전하게 하나님에게 거하는 곳이 어디겠어요. 천국이겠죠.
지금도 그러나 천국의 일부를 하나님의 임재와 거함 속에서 경험하도록 허용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뭐죠 영생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는 사랑 안에 거하게 돼요.
우리가 새로운 사랑 안에 거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하는 그런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 사랑에 거함으로 우리는 그래서 담대하게 되죠. 여기서 이제 사랑과 담대함을 연결시키는데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재림할 때를 염두에 둔 것이거든요.
하나님하고 사귐으로써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어 그러면 그 연장선생님 어느 날 갑자기 오실 거 아니에요. 근데 그때 오실 때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거든요. 나는 어떻게 될까 근데 그래 두려워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튼튼하게 있다면 그때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여전히 맞아줄 거다 그때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그날도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라는 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거함으로 담대한 것이 심판날의 담대함을 가지게 하렴이라 이렇게 성경에서 지금 진술하고 있죠.
그 다음에 하나님 사랑의 거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데까지 옮겨진다 그러니까 하나님 사랑이 이웃사랑으로 연결된다.
이 말 많이 들었죠. 근데 여기서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이에요. 너희도 서로 사랑해야 된다. 형제를 사랑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보이는 형제 사랑하지 못하고서 하나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거든요.
그러니깐 하나님 사랑하라는 이 굉장히 큰 계명은 단순하게 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고 많은 신학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예수가들께서 보내주신 그런 사랑의 행위들과 사랑의 나타내심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심 또 사랑을 완성하심 거기에 근거를 두고서 그러므로 너희들이 내 자녀니까 너희들도 나처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라 이렇게 사실은 엄청난 근거를 갖고 말씀하신다 라는 것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한다. 이렇게 이제 4장 마지막 구절에 이야기를 하면서 대미를 장식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것은 신학적인 엄청난 근거를 갖고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랑의 근거가 있어야 되거든요. 기분 내키려는데 아니거든요.
동시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늘 형제를 사랑하라고 이렇게 우리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삶의 적용점들을 한번 살펴봅시다
첫째는 우리 신앙에는 이런 일곱 가지 특성이 나타나고 있는가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성이어야 되고 교회의 특성이어야 되죠.
이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점검하시면서 이 특성이 더욱더 사귐을 통해서 뚜렷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신앙에서 하나님과 사귐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실은 없어요.
하나님께 사귐을 먼저로 해놓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전도이고 그것이 동사이고 그것이 어떤 사회 참여든 종교적인 활동이든 그런 것들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귐을 근간으로 해라 거기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 것은 종교적인 것일 수밖에 없어요.
진짜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우리의 다른 부분들까지도 종교 활동까지도 튼튼해지고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계명이다. 이것은 다시 한번 우리가 여기서 발견했지만, 이전하고 다르게 단순하게 이웃 사랑해라 최고의 계명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러이러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최고의 계명이고 사랑하는 삶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삶이 없다.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태도나 행위의 또 다른 우리에게 큰 자극과 도전을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 이렇게 강의를 오늘 마치고요.
다음 시간에는 요한 1서 5장을 하겠습니다.
5장은 사귐의 결과는 무엇인가를 얘기하게 되겠고
그 이후부터는 요한 2서 3서 유다서 까지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
그때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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