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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만 해도 회복 된다 (요21:12-17) 2011. 6. 19 주낮 은평
-어느 여자 분이 교회를 처음 나갔습니다. 그러니 친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가정에 좀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너무 답답해졌습니다. 우울증이 왔습니다. 나는 혼자다, 나는 친구도 없고, 내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고, 너무 외로웠습니다. 세상이 싫어지고 남편도 싫어지고 해야 할 일도 하기 싫고 다 집어 치우고 싶어졌습니다. 우울증 초기입니다.
-우울증이란 혼자 생각하고 혼자 상상하고 혼자 판단해 버리니까 위험하지요.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우울해진다? 그럼 혼자 계시면 안 됩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야지요. 의미도 없는 것 같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고 그러면 나가요. 갑천 나가 운동도 하고 백화점에도 가고 교회도 오셔야지요. 사람을 만나야지요. 움직이셔야 합니다.
-이 분이 한 번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볼까 생각했습니다.
-답답하니까 그냥 요즘 너무 답답합니다. 저를 잘 모르실텐데 기도해 주세요, 뭐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잘 모를 테니까요. 그렇게 글을 올리고,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까?
-그런데 이튿날 다시 들어가 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댓글이 수 십 개가 주루룩 달렸습니다. 다 모르는 분들입니다.
-힘내세요. 새벽에 기도할께요. 도와드릴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저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아자, 화이팅, 주님의 은총이,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댓글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울고 또 울고, 아니 이름도 모르는 나를 이렇게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구나.
-저는 그 간증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댓글 한 줄의 응원이 한 영혼을 살린다.”
-중요한 것은 한 두 사람의 댓글이라면 별 감동이 없어요. 수 십 개의 댓글이 응원한 겁니다.
-제가 그 글을 읽은 후부터 댓글 다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교회 카페에 글이 올라오면 무조건 댓글을 답니다. 사명으로 답니다. 사소한 응원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니까요. 댓글 한 줄이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요즘 새로운 응원 방법입니다.
-응원하면 사람을 회복시켜요. 이렇게 쉬운데, 이건 믿음으로 할 일입니다.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우리교회 카페에도 댓글이 수십 개 올라온다면, 선교사님 소식이 들어왔어요. 댓글이 수 십 개 선교사님 응원합니다.
-아이들 사진이 올라왔어요. 축복하다, 다윗 같은 인물이 될거다, 아자, 너를 보면 기분이 좋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 너무 이쁘게, 씩씩하게
-댓글로 응원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명입니다.
-응원하면 회복됩니다. 이게 예수님이 베드로를 회복시킨 방법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완전히 탈진한 상태입니다. 일어설 힘도 버틸 힘도 없습니다. 바닥입니다. 나는 죽일 놈입니다. 나는 말로만 큰 소리 쳤지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못된 놈이다, 죽일 놈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재판을 받으시는데, 그 코앞에서 나는 예수를 모른다, 전혀 모른다, 3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어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하시지만 않았어도 그럭저럭 숨긴 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처음엔 반갑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도망쳐 버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그 절망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합니다.
-베드로, 이제 나는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갑니다. 살 의미가 없습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회복시키심 -오늘 성경을 곰곰이 읽어보면 응원입니다. 기가막힌 응원입니다.
-응원의 방법으로 믿음을, 베드로의 인생을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의 응원으로 베드로가 살아납니다. 그의 사명이 살아나고 그의 인생이 살아납니다. 무의미했던 베드로의 인생이 살아납니다. 베드로의 그 열정이 살아납니다.
-성도 여러분, 응원만 해도 회복이 가능합니다. 응원만 잘해도 자녀들이 살아납니다. 남편이 살아나고 아내가 살아나고, 선교사님이 살아납니다. 응원만 잘해도
-우리 사명으로 생각하십시다. 큰 일은 못해도 응원만 해도
-정말 어려운 여건을 극복한 이들을 보면 누군가 응원한 사람이 옆에 있어요.
(예)에디슨은 학교 성적이 형편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어머니가 응원합니다. 너는 다른 사람처럼 되지 말고 너는 너처럼 되면 된다. 하나님은 너에게만 주신 능력이 있다. 너는 너처럼 되라. 어머니의 응원이 에디슨을 살렸습니다.
-자녀들을 응원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립니다. 회복됩니다.
(예)황수관 장로님은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수관이는 영어를 잘 할 것 같다, 이 말 한마디를 들었습니다. 물론 영어 선생님이 여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영어에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영어책을 다 외워버렸습니다.
(예)이상하지요? 나이 들수록 응원에 인색해요. 오히려 소리 지르고 핀잔을 주고 화를 잘 내고, 이상해요.
-지난 주에 전주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장로님입니다. 그런데 부인은 권사님이고, 서로 핀잔을 줘요. 제 앞에서요. 권사님이 대드니까, 오늘 목사님이 오니까 살판 났다고? 응원하면서 살아야 하는데요.
(예)우리가 다 알게 모르게 응원을 먹고 살아요.
-지난 금요일, 문자가 저에게 왔어요. 향기나는 편지 잘 받았습니다. 한 번 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화를 드렸어요. 관저동에 있는 교회 다니는 분인데, 감사하다고 꼭 연락드리고 싶었다고, 향기나는편지를 응원한다고,
-그날 장미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이 누구도 없어요.
-오늘 예수님이 베드로를 응원하십니다. 회복시키십니다.
-응원하는 방법을 찾아 봅니다. 쉬워요.
1-조반을 와서 먹으라입니다. 밥상을 차려 놓으십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아침 밥상을 차려 놓으십니다.
-밥상, 이게 응원입니다. 주부들만이 아닙니다. 요즘 젊은 남자들 중에 음식 배우는 분들이 늘어납니다. 감동입니다.
-부인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 줬대요.
-어느 집에서는 가족 모두가 엄마 생신 날, 아침 밥상을 몰래 차려 놨어요. 엄마는 밖으로 나오게 하고
-밥상이 응원입니다. 밥 먹는 시간은 응원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밥 먹을 때 이상한 소리 하지 맙시다. 밥맛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맙시다.
“시험 언제부터 보니? 정치하는 놈들?” 밝은 얘기 좋은 얘기
-나는 너 밥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 그래야 하는데요?
-너 밥 먹는 것처럼 공부 좀 해라?
-주님은 베드로를 회복시키는데 밥상으로 응원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어머님께서
“밥 먹어라.” 이 말씀이 얼마나 좋던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으면 이렇게 말합시다.
“밥 먹어라, 우리 밥 먹읍시다. 우리 함께 식사하십시다.”-그래서 식구입니다.
2-베드로를 시몬이라 부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원래 이름이 시몬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물으니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어요. 예수님이 감동하셔서 네 이름을 고쳐라, 이제부터 베드로라 하리라. 반석입니다.
-시몬은 옛날 이름입니다. 그런데 절망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시몬아 라고 불러 주십니다. 너는 시몬이지, 원래 시몬이야, 그런데 왜 낙심하니?
-정말 중요한 응원하는 비결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중요한 시선을 발견합니다.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시선입니다.
“네 모습, 네가 지금 절망하고 좌절한 네 모습, 이 초라한 죄책감에 빠져 있는 이 모습은 결론이 아니다. 오늘 절망이 너의 결론이 아니야, 시몬아, 이건 과정일 뿐이야, 이 과정을 거쳐서 너는 베드로가 될 거야. 나를 위해서 수고하는 베드로가 될 거야, 지금은 비겁했지만 이제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위대한 사도가 될 것이다. 현재는 결론이 아니다.” 포기하시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포기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세요.
-주님은 베드로의 형편없는 모습을 결론으로 보시지 않았습니다. 이건 과정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 보십니다. 나를 바라보시고, 성도님들을 바라 보십니다. 현재는 결론이 아니가, 과정이다, 힘내라, 힘
-누가 어려움을 당했어요? 그건 주 안에서 보면 결론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뿐입니다. 응원하면 일어서요. 실패요? 시험을 잘못 봤어요? 시험에 떨어졌어요? 애인한테 바람 맞았어요? 결론 아닙니다.
-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까? 보통 사람들보다 잘 난 사람들이 왜 스스로 그런 짓을 저지릅니까?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잘못 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 겁니다. 부정을 저질렀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판단을 잘못해서, 욕심이 생겨서, 그럼
-인생은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 인생은 결론이 아닙니다. 과정.
-심지어 죽음도 결론이 아닙니다. 죽음도 과정입니다. 죽으면 끝나지? 이게 마귀의 작전입니다. 죽음은 결론이 아닙니다. 과정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구원과 심판이 있어요.
-다윗이 도망 다닙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억울하게 사울왕이 죽으려 합니다. 그는 견딥니다. 언제 끝날런지 모르는 방랑의 시간이 계속됩니다. 끝까지 견딥니다. 시편으로 노래합니다. 이건 결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 과정입니다. 내가 견뎌야할 과정입니다.
-다윗이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죄인?
-회개합니다. 죄를 저질렀어도 결론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돼
-탕자가 돌아옵니다. 아버지의 집에 돌아옵니다. 유산 다 탕진하고 품꾼으로 돌아옵니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잘하고 돌아온 게 아닙니다. 잘못했는데 돌아옵니다. 결론이 아니니까요.
(예)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은 게 잘못이지?
-너를 보면 답답해진다? 아닙니다. 그건 결론으로 보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녀를 결론으로 대하시면 안됩니다. 과정입니다.
(예)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남자가 많아서 어떤 남자가 남편인지도 헷갈리는 사람입니다. 물을 길러 오려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와야 하는데 사람 만나는 게 싫어요. 죄가 많으니까요. 사람들은 공격하지 응원할 줄을 몰라요. 사람들은 죽일 줄은 알지만 살릴 줄은 몰라요.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는 혼자 대 낮에 물 길러 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물 한 모금 달라하십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나를 인정해 주십니다.
-나는 내 인생을 결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볼 것 없는 인생인데?
-내 인생이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여인은 동네에 들어가서 외칩니다. 와 보라, 와 보라, 그 여자는 내 인생은 결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니까 과정입니다. 다시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예)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입니다만 무덤이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죽음도 우리에게는 과정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실 하나 때문입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습니다. 이건 결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 당합니다. 그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하늘나라, 거기가 우리의 결론입니다. 스데반은 넉넉히 이겨요.
-우리는 거기 때문에 여기서 사는 겁니다.
-우리는 그날 때문에 오늘을 사는 겁니다. 결론은 하나님 앞에
-어떤 사건, 어떤 절망,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잊지 말 것입니다. 이건 결론이 아니고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3-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후로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고 너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나는 이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못난 사람이고,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나에게 절망하는 것처럼 무서운 일도 없습니다. 내가 나에게 절망하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응원하십니다.
“너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다. 이제부터는 네가 필요한 일을 하지 말고 너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너는 필요해, 너는 소중한 존재다. 너는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예)보츠와나가 어딘지 몰랐습니다. 아프리카 남부 쪽입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김해영 선교사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15년 전에 거기에 편물 기술을 갖고 갔습니다. 김해영 선교사님은 장애를 가졌습니다. 갓난 아기일 때 할아버지가 던져버렸습니다. 딸이라고, 저 딸이 태어나서 집안에 우환이 낀다고, 어려운 일만 생기만 다 뒤집어 쒸웠습니다. 갓난 아기를 던져서 다리를 못쓰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생활 능력이 없고 어머니는 지능이 모자랐습니다. 동생 셋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전국 기능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몸이 너무 아픕니다. 꼼짝을 못합니다. 누워서 어떤 책을 읽는데 거창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경남 고창고등학교는 전영창 선생님이 오직 믿음으로, 기독교 정신으로 세운 학교입니다. 경남 시골이지만 전국적으로 이름난 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10계명이 있는데, 김해영 선교사님이 이 글을 읽게 됐습니다. 파격적입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보다는 황무지를 택하라. 가장 좋은 자리로 가지 말고 가장 조건이 좋지 않은 자리로 가라. 그 중에서 김해영 선교사님의 눈을 확 잡아 끄는 대목이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지 말고 너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딜까? 보츠와나에서 수고할 선교사님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편집 기술이 있어서 그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 마치 자신을 기다리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의 기술학교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바라보십니다.
“너는 나에게 필요한 존재다. 이제 너는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거기에서 힘을 얻어요.
-자녀들에게 너는 엄마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아빠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예)올해는 제 생일과 아내 생일이 같은 날입니다. 저는 양력을 쓰고 아내는 음력을 씁니다. 그런데 그 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어디를 간답니다. 빠질 수 없어서 그냥 가야 한답니다.
-지난번 딸들이 왔을 때 물러요. 아빠 생신 날 올까? 엄마는 없는데? 그런데 엊그제 연락이 왔습니다. 온다고, 이유는 생일날 아빠가 외로울까봐, 토요일이란 저는 외로울 것도 없습니다. 주일 준비하느라고 틈이 없으니까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아내에게 그랬습니다.
“마느라 보다 딸들이 낳네.”
-그랬더니 양복한 벌 사 줍니다. 90% 세일 하는 곳에서,
-그래서 딸들보다 아내가 좋다 그랬는데,
4-또 하나 예수님이 베드로를 응원하는 결정적인 비결은 사랑을 물으시는 겁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됐다.”
-이 말씀은 뒤집으면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 네 모습은 결론이 아니니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침 밥상을 차려 주지요. 도망친 베드로를 쫓아오시지요.
-정말 응원하는 비결은 사랑을 묻는 일입니다.
-내가 나에게 묻고 저 사람에게 묻고, 주님께 물어요.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할 제목입니다.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게 하소서.
(예)지난주에 중고등부학생들을 잘 인도하는 이찬수 목사님 간증을 듣고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고 3학년입니다. 아주 멀리 있는 학교에 다니는데 그 학교에서 그 학생 한 명 나옵니다.
“목사님, 우리 학교는 못 오시지요? 너무 멀고, 저 혼자라서?”
-그때 이 목사님이 그랬답니다.
“너 죽을 래?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내일 당장 간다.” -한참을 가서 아이스크림 사 서 함께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줬어요. 응원한 거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그 어머니가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우리 아이를 어떻게 하셨길래. 저렇게 변했어요. 하라 마라 하지 않아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그래서 그 목사님이 학생들이 전화해서 힘들어 하면? 여기 오실 수 없지요? 바쁘셔서, 그러면 반드시 “너 죽을 래?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농담으로 한마디 합니다.
“너 지금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처럼 우리 집 사람 같은 여자 만난다.”
-예수님은 오늘도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시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밥상을 차려 주십니다. 너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응원으로 시몬은 베드로의 자리를 회복합니다. 그는 베드로가 됩니다. 예수님의 응원으로, 응원만 잘해도 회복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이 우리를 응원하시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도 또한 다른 사람을 응원해서 용기를 살리고 믿음을 살리고 사명을 살리는 한 주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