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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精舍), 인지당(仁智堂), 은구재(隱求齋), 지숙료(止宿寮), 석문오(石門塢), 관선재(觀善齋),
한서관(寒棲館), 만대정(晩對亭), 철적정(鐵笛亭), 조기(釣磯), 다조(茶竈), 어정(漁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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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집(響山集) 이만도(李晩燾)생년1842년(헌종 8)몰년1910년(순종 4)자관필(觀必)호향산(響山), 직재(直齋), 모암(某巖)본관진성(眞城)특기사항권승하(權承夏), 권연하(權璉夏)의 문인. 김흥락(金興洛), 유필영(柳必永), 유기호(柳基鎬), 곽종석(郭鍾錫) 등과 교유
響山文集卷之一 / 詩 / 某巖次武夷雜詠韻 幷序
余寓某巖久矣。病中不能作詩。雖或出之呻囈。自不敢擬古。惟是金侍郞 煕周 公嘗居葛川。擬武夷作九曲詩。吾之某巖包在其中。今依侍郞公之意。亦於某巖追次武夷雜詠。不其僭矣乎。第其名義之彷彿本目者因襲之。如精舍,晩對,鐵笛,釣磯,茶竈,漁艇是也。其於本目依倣不得者。則取本詩中要語二字而爲題。如蒼厓,晨牕,故人,薜蘿,負笈,抱甕是也。然晩對無亭而亦存本目者何哉。見今所居西岸田中多瓦礫。必是古人藏修之處。就其處觀之則晩對之趣亦在而恨亭未就也。與其攬竊仁智隱求齋堂之分。所不宜如此替低一等。依樣葫蘆。庶幾爲免罪故也。
精舍
乾坤一逆旅。何物非爲客。山裏來託身。我心獨非石。
武夷精舍杂咏.精舍 / 宋-朱熹 琴书四十年,几作山中客。一日茅栋成,居然我泉石。 |
蒼厓
四面阻蒼厓。何自來一水。休憂坐井中。天亦九萬里。
武夷精舍杂咏.仁智堂 / 宋-朱熹 我惭仁知心,偶自爱山水。苍崖无古今,碧涧日千里。 |
晨牕
晨牕上雨風。喔喔隣鷄響。重誦牛山章。善心安得長。
武夷精舍杂咏.隐求斋 / 宋-朱熹 晨窗林影开,夜枕山泉响。隐去复何求,无言道心长。 |
故人
故人冒險程。種種尋衡宇。文字輕重間。吾何當一黍。
武夷精舍杂咏.止宿寮 / 宋-朱熹 故人肯相寻,共寄一茅宇。山水为留行,无劳具鸡黍。 |
薜蘿
薜蘿施松上。故掩晝門深。閒坐索胡繩。悠悠太古心。
武夷精舍雜詠 石門塢 / 宋-朱熹 朝開雲氣擁 暮掩薜蘿深 自笑晨門者 那知孔氏心 |
負笈
二妙負笈言。不煖吾師席。從間願從之。媿無資益力。
二妙金昌碩,金完壽。
武夷精舍雜詠 觀善齋 / 宋-朱熹 負笈何方來 今朝此同席 日用無餘功 相看俱努力 |
抱甕
抱甕主人翁。忘機自食力。入夜每戒孫。此山皆石壁。
武夷精舍雜詠 寒栖館 / 宋-朱熹 竹間彼何人,抱甕靡遺力。遥夜更不眠,焚香坐看壁。 |
晩對
出門何所之。三疊南山對。麋鹿走兟兟。薈兮還更翠。
武夷精舍杂咏 晚对亭 / 宋-朱熹 倚筇南山巅,却立有晚对。苍峭矗寒空,落日明影翠。 |
鐵笛
山童吹鐵笛。石裂雲穿開。鄒律何須借。春風畢竟來。
武夷精舍杂咏 铁笛亭 / 宋·朱熹 何人轰铁笛,喷薄两崖开。千载留馀响,犹疑笙鹤来。 |
釣磯
石石雪開氈。淵淵藍凜碧。一絲七里風。誰復羊裘識。
武夷精舍雜詠 釣磯 / 宋-朱熹 削成蒼石稜 倒影寒潭碧 永日靜垂竿 兹心竟誰識 |
茶竈
仙人茶竈處。龜石拆中央。烟歇潦來滿。難尋坐席香。
武夷精舍雜詠 茶竈 / 宋-朱熹 仙翁遺石竈 宛在水中央 飲罷方舟去 茶烟裊細香 |
漁艇
載人任太重。販物利還輕。豈若小川上。閒聽潑剌聲。
武夷精舍雜詠 漁艇 / 宋-朱熹 出載長烟重 歸裝片月輕 千巖猿鶴友 愁絶棹歌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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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천집(葛川集) 김희주(金熙周)생년1760년(영조 36)몰년1830년(순조 30)자공목(公穆), 성사(聖思)호갈천(葛川)본관의성(義城)특기사항권사민(權思敏), 이상정(李象靖)의 문인. 이병운(李秉運), 권사협(權思浹), 유심춘(柳尋春) 등과 교유
葛川先生文集卷之二 / 詩 / 次武夷雜詠
日月山中水。晝夜流出谷。默觀道體玅。其要在謹獨。洞口
層崖俯幽深。長松蔭積翠。每當佳節至。景物何太麗。松塢
俯仰迷西東。遊人不能入。有時風雨至。樵童下山急。長峴
谷虛疑生白。淵深自成碧。佇看夏月至。山色濃如滴。花川
境僻無人到。空壑生幽響。攜壺發淸咏。音韻何蕭爽。玉洞
緬思古人居。山楹在雲谷。不必加題品。簇簇千䯻綠。山楹
雲深石爲門。此間有玄圃。吾不學仙侶。何勞靈藥煑。石門
古有神仙子。沐浴留靈液。瞻望不可期。夜夜祥雲出。仙潭
入山見平川。結屋依淸樾。家住水東西。自多閒歲月。葛村
隱居以求道。昔人有至敎。何能議到此。寸膠亦有效。亭宇
閒雲無四時。朝夕入我戶。如何塵俗人。竟日不肯顧。小齋
靑山亦有素。對我如相迎。寂寞無一語。但聞水流聲。對山
混混常不息。活水在源頭。自有冰雪操。何爲共下流。冷泉
渟泓忽成潭。境深水亦深。堪作文房友。時時伴孤吟。硯潭
幾年茅棟成。自在雲樹裡。主翁看書臥。晴窓與棐几。書巢
已從澗底遊。復從澗底飮。澗木以爲薪。澗石以爲枕。北澗
介然用爲路。山逕多谿澗。須臾茅塞之。嗚呼不敢慢。加幕洞
萬事無不足。何往非吾道。惟是閒思慮。春風又生草。足閒齋
儼然開一壑。幽深最奇絶。野老莫爭席。天公爲我設。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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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집 제1권 / 시(詩) / 모암에서 〈무이잡영〉 시를 차운하다 병서 〔某巖次武夷雜詠韻 幷序〕
내가 모암(某巖)에 붙어산 지 오래되었는데, 병중에는 시를 지을 수가 없었으며, 비록 신음 소리나 잠꼬대 같은 시를 지은 경우가 있기는 하였지만, 내 스스로는 감히 옛 시에다가 비기지 못하였다. 시랑(侍郞)을 지낸 김희주(金煕周) 공(公)이 일찍이 갈천(葛川)에 살면서 〈무이구곡시(武夷九曲詩)〉에 비기어서 〈구곡시〉를 지었는데, 내가 사는 모암 역시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시랑공의 뜻에 의거하여 역시 모암에서 뒤늦게 〈무이잡영(武夷雜詠)〉 시에 차운하였는바, 참람한 것이 되지는 아니할 것이다. 다만 이름과 뜻이 본제목과 비슷한 것은 그대로 따랐는바, 정사(精舍), 만대(晩對), 철적(鐵笛), 조기(釣磯), 다조(茶竈), 어정(漁艇)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본제목에서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본시(本詩) 가운데 나오는 중요한 글자 두 자를 취하여 제목으로 삼았는바, 창애(蒼厓), 신창(晨牕), 고인(故人), 벽라(薜蘿), 부급(負笈), 포옹(抱甕)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만대(晩對)라는 정자가 없는데도 본제목을 그대로 쓴 것은 어째서인가? 지금 내가 사는 곳의 서쪽 언덕을 보니, 밭 가운데에 기왓장이 많은바, 이곳은 필시 옛사람이 학문을 익히던 곳이다. 그곳에 나아가서 살펴보면 만대정(晩對亭)의 정취가 역시 있으며, 정자를 짓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게 된다. 인지당(仁智堂)과 은구재(隱求齋)의 재(齋)와 당(堂)을 나누어 훔쳐서 차지한 것과 더불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지금 이와 같이 한 등급을 낮추어 호로(葫蘆)를 그리듯이 한 것은, 그러면 거의 죄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사(精舍)
건곤 바로 일개 여관 불과하거니 / 乾坤一逆旅
그 무언들 나그네의 몸이 아니랴 / 何物非爲客
산속에다 이내 몸을 의탁했거니 / 山裏來託身
나의 맘만 홀로 돌이 아니로구나 / 我心獨非石
창애(蒼厓)
사방 모두 창애로다 막혀 있는데 / 四面阻蒼厓
어디에서 한 줄기 물 흘러오는가 / 何自來一水
걱정 않고 우물 안에 앉아 있거니 / 休憂坐井中
하늘 역시 아득 멀어 구만리라네 / 天亦九萬里
신창(晨牕)
새벽 창에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 晨牕上雨風
이웃집 닭 긴소리로 꼬끼오 하네 / 喔喔隣鷄響
우산장의 글을 거듭 외우거니와 / 重誦牛山章
착한 맘이 어찌하면 자라나려나 / 善心安得長
고인(故人)
옛 친구가 험한 길을 무릅쓰고서 / 故人險程
이따금씩 내 오두막 찾아서 오네 / 種種尋衡宇
문자 경중 따져 보는 그 사이에서 / 文字輕重間
내가 어찌 일서나마 보탬이 되랴 / 吾何當一黍
벽라(薜蘿)
벽라 덩굴 소나무 위 기어올랐고 / 薜蘿施松上
한낮에도 닫은 대문 깊고도 깊네 / 故掩晝門深
한가로이 앉아 호승 꼬고 있자니 / 閒坐索胡繩
태고의 맘 유유하게 생기어 나네 / 悠悠太古心
부급(負笈)
두 젊은이 책 싸 들고 와서 말하길 / 二妙負笈言
선생 자리 따뜻하지 않다고 하네 / 不煖吾師席
틈을 내어 종유하길 원하지마는 / 從間願從之
도와줄 힘 내 없기에 맘 부끄럽네 / 媿無資益力
두 젊은이는 김창석(金昌碩)과 김완수(金完壽)이다.
포옹(抱甕)
물동이를 안고 물을 주는 주인옹 / 抱甕主人翁
기계 아니 쓰고 직접 농사를 짓네 / 忘機自食力
밤이 되면 매번 손자 주의시키며 / 入夜每戒孫
산 주위 다 절벽이라 말하여 주네 / 此山皆石壁
만대(晩對)
문밖 나서 그 어디를 향해 가려나 / 出門何所之
첩첩 겹친 남쪽 산을 마주 대하네 / 三疊南山對
노루 사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 麋鹿走兟兟
울창한 숲 다시금 또 짙푸르구나 / 薈兮還更翠
철적(鐵笛)
산골 아이 쇠 젓대를 불어 젖히자 / 山童吹鐵笛
돌과 구름 쪼개지고 갈라지누나 / 石裂雲穿開
추율 빌려 올 필요가 뭐가 있으랴 / 鄒律何須借
봄바람이 언젠가는 불어올 거리 / 春風畢竟來
조기(釣磯)
돌마다 다 눈이 쌓여 방석 깔렸고 / 石石雪開氈
못마다 다 쪽빛이라 아주 푸르네 / 淵淵藍凜碧
한 낚싯대 칠리탄에 바람 불거니 / 一絲七里風
누가 다시 양피 갖옷 알아보리오 / 誰復羊裘識
다조(茶竈)
신선께서 차 단지를 끓이던 데라 / 仙人茶竈處
거북돌이 한가운데 쪼개어졌네 / 龜石拆中央
장맛물에 연기가 다 사라졌으매 / 烟歇潦來滿
좌석에는 향기 찾아보기 어렵네 / 難尋坐席香
어정(漁艇)
사람들을 싣자니 짐 너무 무겁고 / 載人任太重
장사해도 이익 얼마 얻지 못하네 / 販物利還輕
그렇거늘 어찌 작은 시내 위에서 / 豈若小川上
고기 뛰는 소리 듣는 것만 하리오 / 閒聽潑剌聲
[주-D001] 모암에서 …… 차운하다 : 모암은 어느 곳인지 분명하지 않다. 〈무이잡영〉은 원제(原題)가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으로, 주희(朱熹)가 지은 시인데, 장문의 시서(詩序) 다음에 정사(精舍), 인지당(仁智堂), 은구재(隱求齋), 지숙료(止宿寮), 석문오(石門塢), 관선재(觀善齋), 한서관(寒棲館), 만대정(晩對亭), 철적정(鐵笛亭), 조기(釣磯), 다조(茶竈), 어정(漁艇)을 두고 지은 12수의 시이다. 《朱子大全 卷9》[주-D002] 김희주(金煕周) : 1760~1830.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목(公穆), 호는 갈천(葛川)이다. 김시동(金始東)의 아들이며, 권사민(權思敏)과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95년(정조19)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대사간과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년)에는 교리에 실록 편수관을 겸하여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말년에는 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 갈천정(葛川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머물러 있었다. 저서로는 《갈천집(葛川集)》이 있다.[주-D003] 호로(葫蘆)를 …… 것 : 모방해 본떠서 비슷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송(宋)나라의 한림학사 도곡(陶穀)이 오랜 기간 한림원에서 발휘한 자신의 재질을 자부하면서, 지위가 낮은 것에 불만을 품고 은근히 승진을 바라고 있던 중에, 태조(太祖)로부터 “도곡이 지은 글을 보면 옛날 사람들이 지어 놓은 것을 살짝 말만 바꾼 것일 뿐이다. 이는 세상에서 말하는 ‘매달린 조롱박을 보고 그럴듯하게 본떠서 그려 내는 것〔依樣畫葫蘆〕’일 따름이다.”라고 핀잔을 받았다. 그러자 도곡은 스스로 옥당(玉堂)의 벽에 이 말에 대해 원망하는 시를 지어 붙여 놓았는데, 태조가 이 시를 보고는 중용하지 않으려는 뜻을 더욱 굳혔다고 한다. 《東軒筆錄 卷1》[주-D004] 건곤(乾坤) …… 아니랴 :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광음은 백대의 과객이다.〔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 하였다.[주-D005] 나의 …… 아니로구나 : 은거해서 살고자 하는 뜻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시경》 〈백주(柏舟)〉에 “내 마음 돌이 아니라서 굴려 볼 수도 없고, 내 마음 돗자리가 아니라서 돌돌 말 수도 없네.〔我心匪石 不可轉也 我心匪席 不可卷也〕”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주-D006] 우산장(牛山章) : 《맹자》 〈고자 상(告子上)〉의 장명이다. 이 우산장에는 사람의 양심(良心)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말하였는데, 양심을 기르자면 우산(牛山)에서 자라고 있는 초목의 야기(夜氣)를 잘 보전시켜 주는 것과 같이해야 한다고 하였다.[주-D007] 문자(文字) …… 되랴 : 자신의 학문이 부족하여 조금도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일서(一黍)는 아주 조그만 분량을 말한다.[주-D008] 호승(胡繩) : 향기로운 풀의 이름이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계수나무를 들어 난초 꿰어 달고, 호승으로 노끈을 길게 꼬리라.〔矯菌桂以紉蘭兮 索胡繩之纚纚〕” 하였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깨끗하고 향기롭게 가꾼다는 뜻이다.[주-D009] 선생 …… 하네 : 두 사람의 스승으로 있는 자신이 분주히 다니느라 거의 집에 있을 겨를이 없다는 뜻이다. 공석불난(孔席不暖), 묵돌불검(墨突不黔)이란 성어(成語)가 있다. 즉 공자는 천하를 다니느라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었고, 묵자(墨子) 또한 천하를 다니느라 여기저기서 밥을 지어 먹어 굴뚝이 검어질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文選 卷45 答賓戲》[주-D010] 물동이를 …… 짓네 :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산다는 뜻이다. 《장자》〈천지(天地)〉에 “자공(子貢)이 한음을 지나다 보니, 한 노인〔丈人〕이 논에 물을 대는데, 단지를 안고 우물로 들어가 길어다가 대니 힘만 들고 효과가 없었다. 자공이 ‘힘 안 들고 효과 많은 기계가 있는데 왜 안 쓰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기계를 쓰면 요령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요령을 부리면 순수한 마음을 보전하여 도를 완전하게 할 수 없다. 기계가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스럽게 여겨 쓰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주-D011] 추율(鄒律) : 추연(鄒衍)의 율(律)이란 뜻이다. 추연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음률에 정통하였다. 일찍이 연(燕)나라 소왕(昭王)의 초빙으로 연나라에 가 있을 때, 중국의 북방 지역이 땅은 비옥하나 날씨가 너무 추워 오곡이 자라지 않았는데, 추연이 율을 불자 따스한 기후가 되어 기장을 심을 수 있게 되었다 한다. 《列子 湯問》[주-D012] 한 …… 알아보리오 : 은거하고 있는 사람을 알아볼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칠리탄(七里灘)은 중국의 부춘산(富春山)에 있는 시내 이름이다. 동한(東漢) 때의 사람인 엄광(嚴光)이 젊어서 광무제(光武帝)와 친구 사이였다. 광무제가 즉위한 뒤에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부춘산으로 돌아가 양피 갖옷을 입은 채 밭을 갈고 낚시질을 하면서 살았는데, 그 당시에 낚시질을 하던 대(臺)가 엄광대(嚴光臺)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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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함길도 관찰사 각주는 오류이므로 4곳 삭제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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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19 1819 기묘 嘉慶 24 60 대사간이 되다. ○ 4월, 병조 참판이 되다. ○ 6월, 永興 府使가 되다. ○ 8월, 금강산을 유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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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집 제1권 / 시(詩) / 모암에서 〈무이잡영〉 시를 차운하다 병서 〔某巖次武夷雜詠韻 幷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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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공목(金公穆) 김희주(金煕周, 1760~1830)로,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갈천(葛川)이며, 공목(公穆)은 그의 자이다. 매헌(梅軒) 권사민(權士敏, 1557~1634)과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95년(정조19)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대사간과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년)에는 교리에 실록 편수관을 겸하여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말년에는 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 갈천정(葛川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머물러 있었다. 저서로는 《갈천집(葛川集)》이 있다. 입재집(立齋集)
2 김공목(金公穆) 김희주(金熙周, 1760~1830)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목ㆍ성사(聖思), 호는 갈천(葛川)이다. 봉화 해저 출신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1789년(정조13) 사마시에, 1795년(정조19) 문과에 각각 급제하여 벼슬이 우승지(右承旨), 사간원 대사간과 함길도 관찰사에 이르렀다. 만년에 봉화 재산(才山)의 갈산리(葛山里)에 갈천정(葛川亭)을 짓고, 덕봉(德峰) 아래에는 덕봉정사(德峰精舍)를 지어서 자제들의 교육에 힘썼다. 저서로 《갈천집》이 있다. 입재집(立齋集)
3 김희주(金煕周) 1760~1830.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목(公穆), 호는 갈천(葛川)이다. 김시동(金始東)의 아들이며, 권사민(權思敏)과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95년(정조19)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대사간과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년)에는 교리에 실록 편수관을 겸하여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말년에는 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 갈천정(葛川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머물러 있었다. 저서로는 《갈천집(葛川集)》이 있다. 향산집(響山集)
4 희주(煕周) 김희주(金煕周, 1760~1830)로, 자는 공목(公穆), 호는 갈천(葛川)이다. 매헌(梅軒) 권사민(權士敏, 1557~1634)과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95년(정조19)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대사간과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갈천집》이 있다. 《갈천집》 권7에 〈개암정상량문(開巖亭上樑文)〉이 있다. 《입재집》 권44에 김희주의 행장인 〈증조봉대부사헌부지평김공행장(贈朝奉大夫司憲府持平金公行狀)〉이 있다. 입재집(立齋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