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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정교한 언어의 미학―(김상옥론)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의 첫시조시집 『초적(草笛)』이 발간된 것은 1947년이다.
*『초적』은 비교적 작은 분량이라고 할 수 있는 40수의 작품이 실려 있지만,
* 단일 시조집으로 갖는 무게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백자부」와「청자부」「십일면관음」「봉선화」「집오리」「옥저」 등 뛰어난 작품성으로 평가받는 시조들이 집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정이 시조시단에서 갖는 위치를 따져보자면,
*가람과 노산이 현대시조의 뿌리를 전통의 토양 속에 든든히 내렸다면
*초정은 그 위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 결실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초정의 시조는 앞뒤 세대의 작품과 견주어볼 때 하나의 정점을 그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문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정이 맨처음 피워 낸 『초적』의 꽃봉오리 아래 수많은 시조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지훈(芝薰) 선생이 1948년 “작년에 나온 모든 책들 중에서 내게 두 권을 고르라면
나는 망서리지 않고 양주동의 『고가연구(古歌硏究)』와
김상옥의 『초적』을 꼽겠다.”고 일간지에 공표한 사실과,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초적』을 읽고 난 후 “
『초적』의 작자 김상옥씨야말로 노산, 가람 이래 우리 시조시단의 최고봉을 섭렵(涉獵)?쳄括繭窄?
한번 『초적』을 읽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이의가 없을 것”이라고
『민중일보』에 평을 쓴 사실로 미루어, 『초적』이 시조사에서 갖는 비중은 실로 막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초적』은 3부로 나뉘어져 각각 ‘잃은 풀피리’ ‘집오리 노래’ ‘노을빛 구름’ 등 3개의 소제목이 붙어 있다.
3부는 작품의 내용을 그 특성에 따라 묶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잃은 풀피리’는 「사향(思鄕)」 등 10수의 작품이 실렸으며 자연물들을 소재로 하여
아름다운 서경과 서정적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시제(詩題)를 살펴보면「사향」을 비롯 「춘소(春宵)」「애정(愛情)」「비오는 분묘(墳墓)」
「봉선화(鳳仙花)」「물소리」 「강(江)있는 마을」 「만추(晩秋)」 「입동(立冬)」 「눈[雪]」 등이다.
‘집오리 노래’는 「길에 서서」 등 17수의 작품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정한, 병상과 감옥 생활 등 주로 세속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이다.
「어무님」 「가정(家庭)」 「병상(病床)」 「안해」 「누님의 죽음」 「강시R屍」 「회의(懷疑)」
「낙엽(落葉)」 「영어(囹圄)」 「집오리」 「흰돛 하나」 「노방(路傍)」 「번뇌(煩惱)」 「회로(廻路)」
「자계명(自戒銘)」 「변씨촌(邊氏村)」 등이다.
‘노을빛 구름’은 「청자부(靑磁賦)」 「백자부(白磁賦)」 등 13수의 작품으로 엮어졌으며,
우리 전통의 유물과 유적들을 소재로 하여 시적 형상화를 꾀하고 있다.
나머지 시제를 살펴보면 「추천(?韆)」「옥저(玉笛)」「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대불(大佛)」「다보탑(多寶塔)」
「촉석루(矗石樓)」「선죽교(善竹橋)」「무열왕릉(武烈王陵)」「포석정(鮑石亭)」 「
재매정(財買井)」「여황산성(艅?山城)」 등이다.
『초적』에 엮어진 40편의 작품들은 가람이 시조집 서문에서
“이제 그 말못하게 곡절(曲折)많던 지낸날
우리들의 서러운 정서(情緖)를 도맡아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읊어낸 이것이
낱낱이 구슬처럼 고와라” 라고 감탄했듯이,
그 편편마다 섬세하고 정교한 시어들이 소재를 휘감아 때로는 애잔하고 따스하게,
때로는 고고하고 겸허하게 시적 울림을 전해준다.
먼저 초정이 1938년 『문장(文章)』지에 추천 받았던 작품인 「봉선화」를 살펴보자.
봉선화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 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ㅅ줄만이 서노나
「봉선화」는 가람이 해방 이후 군정청(軍政廳)의 교과서 편수관이 되자 국어교과서에 실어,
「백자부」 「옥저」와 함께 세간에 널리 알려진 시조 중의 하나가 되었다.
「봉선화」는 혈육에 대한 애틋하고 그리운 정이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소박한 제재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시조의 외형적 틀이 마치 내용 속으로 스며들어 버린 듯하다.
30년대 당시의 시조들이 내용보다는 형식의 두드러짐으로 인해
작품의 내면적 성취도가 뒤떨어진 예가 많았으므로,
「봉선화」는 시단의 놀라운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의 화자는 반쯤 벙근 봉선화를 보면서 꽃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실로 찬찬이 감아주던 누님의 하얀 손가락을 상기한다.
그리고 “세세한 사연을” 적은 편지를 보내드리고
그 편지를 읽으면서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워할 누님을 생각한다.
더 나아가 안부편지를 받아 기쁘기도 하지만,
고향집으로 갈 수 없기에 ‘울고 웃으실’ 누님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화자의 발화 속에 감추어진 애틋한 정감의 그리움은
오히려 읽는이의 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밀려들어온다.
남성 화자를 빌려 여성적 정한의 세계를 이토록 섬세하게 표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언어를 다루는 초정의 남다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향(思鄕)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白楊)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山을 둘러 퍼질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로운 꽃찌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
「사향」은 『초적』에 실린 첫번째 작품이다.
시집을 열었을 때 맨처음 접하는 작품은 시인의 첫인상과 같은 것이기에,
목차를 짤 때 어느 작품을 첫번째로 내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인쇄소 문선공으로 일하기도 했던 초정은,
『초적』의 편집, 문선, 조판, 장정, 인쇄, 제본까지 전 과정을 혼자 해 내었다.
그런 만큼 「사향」은 초정이 스스로 앞세울 만한 작품으로 평가한 것이 된다.
「사향」은 뜻 그대로 ‘고향 생각’이다.
봄을 맞이한 고향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싸여 있지만,
오히려 고향의 가난은 두드러져 생각키기에 마음이 애틋할 뿐이다.
제1수와 제2수는 눈을 감고 그리는 이상향으로서의 고향의 정경이다.
“돌돌돌” 흘러가는 작은 개울물 소리와 우거진 백양나무숲,
나지막한 초가집들, 온 산을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꽃과 어머니가 솜씨 있게 부쳐주시던
진달래화전의 향기로운 냄새….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은 어머니와 함께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3수에서는 감았던 눈을 뜨고 현실로서의 고향을 직시하고 있다.
춘궁을 맞아 산나물을 캐어 죽을 쑤거나 나무뿌리를 캐어 끼니를 때우는, 집집마다
“봄을 씹고 사는” 모질게 가난한 것이 고향의 본모습인 것이다.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어질고 고운” 그들이기에 서럽도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후기에서 쓴 바와 같이 “헐벗으면 떨리고 굶주리면 허덕이듯
詩도 또한 이처럼 견디지 못해 써”온 시인의 심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고,
자연에 그저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소박한 심성의 표상이기도 할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제2부 ‘집오리의 노래’는 시인의 가정사, 세간에서 보고 느낀 것들,
영어의 몸으로 갇혀 있을 때의 체험을 술회하는 등 사적인 감회나 경험들을 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 소제(小題)로 쓰인 「집오리」는 2부의 이러한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집오리
때묻은 쭉지 밑에 푸른 꿈을 안아두고
나날이 욕된 삶을 개천에서 보내건만
때때로 고개 비틀고 눈을 감고 느끼도다
몸이야 더럽혀도 마음만은 아껴 가져
슬픔도 외로움도 달게 받아 겪었거니
목메인 그 우름소리 어느날에 그치려나
인용시조의 집오리는 시인의 자화상에 다름아니다.
일제 식민지하라는 “나날이 욕된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고개를 비틀고 눈을 감고 느끼는”
나라를 빼앗긴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토(몸)는 이미 점령 당했지만, 민족의 얼(마음)만은 꼿꼿이 지켜가기 위해
온갖 설움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식민지시대 지식인의 갈등이기도 했다.
누구를 공격하거나 멀리 떠나지도 못한 채 집안을 맴돌며 꺼억꺼억 서글픈 울음만 울어대는
“때묻은 쭉지”의 초라한 집오리가 바로 시인의 자화상이자,
지식인의 자화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초정은 집오리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한글로 시작(詩作)을 하는 등 반일사상 혐의로 네 차례의 옥고를 치룬 바 있다.
초정은 시집 후기에서 “진실로 지낸날의 그 사랑이 입에 붙은 사랑이 아니면
내 너무 미지근하고 행동(行動)함이 없었음을 나는 이제사 뉘우치고
스스로 오장(五臟)을 찢고싶은 그러한 불같은 미움을 금(禁)ㅎ지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있으나,
행동으로 항일정신을 옮긴 실천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경에 쫓겨 함께 등단한 시조시인 이호우의 집에 피신하기도 하고 도장가게에서 도장을 파기도 하는 등,
해방이 될 때까지 그의 항일은 몸으로 실천한 것이었다.
소설가 김동리는 『민중일보』에 『초적』 발간을 소개하면서 초정이 “(…) 거진 생리적(生理的)으로 타고난 듯한
치열(熾烈)한 민족주의자(民族主義者)였다.
그는 그의 고향인 통영에서 도망하여(亡命) 함흥으로 원산으로 다시 삼천포로 전전(轉轉) 유랑하며 있었고
그의 뒤에는 잔인한 경찰(警察)의 손길이 뻣쳐져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정은 조국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입에 발린 것이 아니었는지, 왜 좀더 적극적으로 조국의 해방을 위해 행동하지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질책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집오리」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시인의 올곧은 성품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변씨촌
내 한때 두만강(豆滿江)ㅅ가 변씨촌(邊氏村)에 살았는데
고향을 묻길래 통제사(統制使) 영문(營門)이던 통영
진사립 자개장롱 나는 곳이래도 모르데요
아메야 어미네야 웃음이 마구 터지는데
가수내 이 문둥이 말끝마다 흉을 봐도
비빔밥 꽃찌짐 얘기는 숨도 없이 듣던데요
되땅은 하로 아침길 경상도(慶尙道)는 꿈의 나라
동삼 내 눈이 싸여도 한우리의 고장인데
아득한 먼 옛말같은 겨레들이 삽네다요
초정은 1937년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 시집간 넷째누님을 찾아
함경북도 서수라, 웅기, 아오지, 청진 등지를 유랑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당시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반도의 남쪽 끝과 북쪽 끝이라는 지리적 괴리감을 넘어서서
겨레붙이로서의 동질감을 정겹게 표현하고 있다.
두만강가의 변씨 집성촌은 아침 한나절이면 중국땅에 닿을 수 있지만
경상도는 저 아득한 꿈의 고장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같은 겨레의 땅보다 이국의 영토가 훨씬 더 가까운,
그래서 삼군 통제사가 있던 곳이며 특산물로서 자개가 유명한 통영을 그곳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가수내(가시내)야’ ‘이 문둥이’ 하고 경상도식으로 타박을 주어도
시인이 말하는 모든 것이 낯설고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시인의 한마디 한마디에 “아메야 어미네야” 라며 감탄사를 터뜨리며,
‘비빔밤’과 ‘화전’ 등 남쪽 지방의 색다른 음식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북쪽 변방인들의 소박한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겨울 석달 동안 내내 눈이 쌓여 따듯한 남쪽 바닷가 지방과는 완연히 다른 기후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한우리에 사는 우리 민족인 것이다.
마치 옛말같이 구수하면서도 끈끈한 정이 흐르는 한 겨레붙이인 것이다.
제3부 ‘노을빛 구름’은 초정이 전문가의 경지에서 평생의 업으로
삼은 도자기를 비롯하여 옛 유물과 문화재를 시적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정이 우리의 옛것에 심취하여 서울 견지동에 표구사를 겸한
골동품가게 ‘아자방(亞字房)’을 내어 경영했던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옛것에 대한 초정의 사랑은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고 헌신적인 것이었기에,
제3부의 작품들은 특히 뛰어난 것들이 많다.
신앙과도 같은 백자와 청자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미를 초정은 언어로 다시 빚어내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백자부
찬서리 눈보래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끝에 풍경(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달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아래 비진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불로초(不老草)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내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속에 구어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ㅅ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소박(純朴) 하도다
총 4수의 연시조로 이루어진 「백자부」는 초정의 시조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첫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1수와 제3수는 백자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으며,
제2수와 4수는 백자의 내면에 숨겨진 미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백자는 음각이나 양각으로 무늬를 새겨 넣기도 하는데 사군자가 주로 그려지며,
그림을 바탕에 깔고 글자를 쓰기도 했다.
제1수의 백자는 조선소나무와 학이 어우러진 단촐한 문양을, 제3수의 백자는 구름과 바위, 불로초,
사슴까지 동물과 산수가 어우러진 한폭의 동양화와 같은 그림을 떠올릴 수 있겠다.
이러한 백자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내면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2수와 4수의 이어짐이다.
드높은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 계신 고귀한 님이 오신다는 청아한 기별이 울릴 때,
그토록 기다리던 님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해 빚어둔 꽃향기 그윽한 술을 담아 내는 그릇이 백자이다.
또한 뜨거운 불길이 지나가도 순백의 고결함을 잃지 않으며,
티 하나 내려와도 흠이 지는 소박하면서도 순결한 성정을 지닌 것이 백자이다.
이렇듯 백자는 오랜 기다림을 견뎌낸 고결하고 고귀한 영혼의 표상이며,
견딜 수 없는 시련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과 한 점 티끌도 없는 순결한 영혼의 표상이다.
초정은 간결하고도 정교하게 언어를 교직시켜 백자의 미학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이러한 초정의 시안(詩眼)에 대해
“그는 모든 事物을 볼 때마다 거기 살다가 죽어간 옛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넋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우리 詩人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눈을 가진 선수이다.
‘鬼神이 哭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의 詩 속에는 늘 鬼神도 많이 참가하여 哭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선죽교
이런들 어떠오리 저런들 어떠 하오리 술을 딸아 권하오거날
백사가(百死歌) 읊으오시며 그 잔(盞)을 돌리오시다
그 몸이 아으 죽고 또죽고 천만(千萬)번을 고치오셔도
한 번 간(肝)에다 사기온 뜻은 굽힐길이 없드오이다
아으 그 노래 읊으온뒤에 반천년(半千年)도 하로온양 오로다 왕씨(王氏) 이조(李朝)도 한길로 쓸어져 꿈이도이다
임 한번 베오신 피가 돌이 삭다 살아지오리
돌난간(欄干) 마자 삭아지어도 스며드오신 붉은 그 마음은 흐릴길이 없으리오이다
이 시조는 『초적』에서 유일하게 사설시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서, 2수 모두 중장은 단형의 율격을 지키고 있으나
초장과 종장이 길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첫수의 초장은 6음보로 종장은 8음보이며,
둘째 수의 초장은 10음보, 종장은 7음보로서 단형의 기준이 4음보를 모두 초과하고 있다.
내용상으로 첫수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는 「하여가」와 포은이 이를 거절하는 「단심가(丹心歌)」를
패러디하면서 당시의 정황을 사설로 풀어놓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오백 년 전 왕조의 뒤바뀜이 모두 허망한 세상사이지만,
포은의 핏빛 충절은 돌다리와 돌난간이 삭아지더라도 흐려질 수 없다며 충신의 곧은 절개를 기리고 있다.
『초적』에 실려 있는 40수의 작품들은 「선죽교」를 제외하고
모두 평시조의 기본 율격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리고 「춘소」「애정」「물소리」「어무님」「안해」「회로」 등 5수의 단형시조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2~5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초정은 후에 ‘시조’의 명칭을 ‘삼행시’라고 바꾸어 부르며
『삼행시집(三行詩集)』(73년)을 출간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새로운 시형을 실험한다.
이 시집에는 총 65편의 작품이 실렸는데,
초정이 ‘삼행시 단형’으로 분류한 작품들은 단시조와 연시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시조의 기본 율격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삼행시 장형’으로 분류된 13편의 작품은 사설시조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사설시조의 율격이 아닌 실험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위의 「선죽교」 역시 초·종장이 길어진 형태로서
사설시조가 일반적으로 중장이 긴 형태를 취하므로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참고적으로 삼행시 장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네 방안에 있는 줄 아는가
어느날 문득 먼 귀울림, 내가 짐짓 네 방안에 있는 줄 아는가.
내 한쪽 둘레에 죄끄만 싸리꽃 피고 바람에 묻어온 코발트의 나비,
또한 오백 년 유치원(幼稚園)엔 다녀온 철사(鐵砂)의 용(龍).
그리고 내 무릎 앞에 네가 있고 네 방안 세간과 네 처자,
그리고 화약고와 성냥개비, 네 눈치. 네 수염, 네 사랑, 그리고 숨바꼭질과
또 어디에 눈꼽만큼도 세도없는 나라.
그 나라의 티끌, 꽃도 용도 배슬어 낸 너희 어머님!
그리고 저 유유히 잇닿은 인연(因緣)의 강(江).
진실로 고얀지고. 네가 날 어찌 몇 푼의 은자로 바꿀라는가?
내 인제 이가 좀 빠지고, 허리에 얼룩진 장(醬)물이 배었다기로.
인용시조는 초·중·종장의 삼행시로 이루어졌으나,
시조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장의 1·2음보의 율격이 파격을 이루고 있다.
「선죽교」에서 종장의 형태를 보면
1·2음보의 율격이 첫수와 둘째 수 모두 3음절과 7음절로서 종장의 율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용시조의 종장은 산문으로밖에 볼 수 없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장형시조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떠한 평가가 내려질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초정 김상옥은 1920년, 경남 통영에서
아버지 기호(箕湖) 김덕홍(金德洪)옹과 어머니 여양(驪陽) 진(陳)씨 사이에서 6녀 1남의 막내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한문서당 송호재(松湖齋)에 다니면서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다.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37년 김용호, 함윤수 등과 시동인지 『맥(貊)』을 창간했으며, 후일 임화,
윤곤강, 서정주, 박남수 등이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1938년 『문장(文章)』지에 「봉선화」로 추천을 받았으며,
1939년에 동아일보 신춘시에 「낙엽」이 당선되었다.
삼천포중학교, 통영중학교, 통영여고, 마산고, 경남여고 등에서
20년 가까이 교편을 잡았으며,
삼천포중학교에서 박재삼, 마산고에서 이제하, 경남여고에서 허윤정 등을 길러냈다.
첫시집 『초적』을 상재한 후 『고원(故園)의 곡(曲)』(48년)을 펴냈으며,
시집 『이단(異端)의 시(詩)』(49년), 동시집 『석류꽃』(52년), 시집 『의상(衣裳)』(53년),
시집 『목석(木石)의 노래』(56년), 동시집 『꽃 속에 묻힌 집』(58년), 삼행시집
『삼행시집(三行詩集)』(73년), 산문집 『시(詩)와 도자(陶磁)』
(75년), 시집 『먹(墨)을 갈다가』(80년), 시집 『향기 남은 가을』(89년), 98년 시집
『느티나무의 말』(98년) 등을 출간했다.
제1회 중앙일보시조대상, 제1회 노산(鷺山)문학상, 제2회 충무시문화상, 가람문학상(2001년) 등을 수상하였다.
▣참고시
江있는 마을
한구비 맑은 江은 들을 둘러 흘러가고
기나긴 여름날은 한결도 고요하다
어디서 낮닭의 울음소리 귀살푸시 들려오고
마음은 우뜸 아래뜸 그림같이 놓여있고
邑네로 가는 길은 꿈ㅅ결처럼 내다 뵈는데
길에는 사람 한사람 보이지도 않어라
눈
왼 세상 뜰안인양 포근히도 고요한 날!
저 하늘 푸른속에 깊숙히 숨었다가
흰날개 고이 펼치고 춤을 추며 나리네
헐벗은 가지에도 흐뭇이 꽃이 벌고
보리 어린 이랑 햇솜처럼 덮어주고
오는 철 새로운 봄을 불러오려 하느냐
깃드는 추녀끝에 落水소리 들리거든
참고 견딘 치움 헌옷처럼 벗어두고
우리네 헐린 살림을 다시 가꿔 보리라
病床
내 어찌 조심없이 세상을 살았기로
뜯기고 할퀴어 왼 몸에 傷處거니
이 우에 병을 마년해 날로 이리 지든다
자자진 초불인양 숨소리도 가냘프고
외로 도라 누워 눈이 띈지 감겼는지
窓밖에 저무는 빛이 죽음같이 고와라
영어(囹圄)
1
새도록 잠 못일고 저물도록 맘 조리고
때때로 이는 괴로움 나날이 새로워라
언제나 이 門을 나서 그런 임을 뵈올꼬
2
잠도 그 아니고 꿈도 정녕 아니어니
밖앝에 발자욱 소리 멀었다 가까웠다
그러다 눈이 뜨이면 날이 다시 새워라
3
밤은 이슥한데 삐그럭 열쇠 소리!
그들은 무슨 일로 이밤에 잡혀온고
쇠창살 침침한 속에 얼굴들이 보여라
4
꿈은 깊었어도 잠은 사푼 들었든지
곁에ㅅ벗 앓는 소리 놀래어 잠을 깨다
오늘도 널우에 앉아 해져감을 보리라
胡韆
멀리 바라보면 살아질듯 다시 뵈고
휘날려 오가는양 한마리 胡蝶처럼
앞뒤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어룬님 기두릴까 가벼웁게 내려서서
포란簪 빼어 물고 낭자 고쳐 찌른 담에
오실앞 다시 여미며 가쁜 숨을 쉬도다
玉笛
―新羅 三寶의 하나
지긋이 눈을 감고 입술을 추기시며
뚫인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즉일때
그 소리 銀河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千年을 머금은 채
따수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 망정 뜻을 달리 하리오
十一面觀音
―石窟庵
으즛이 蓮坐우에 발돋음하고 서서
속눈섶 조으는 듯 東海를 굽어 보고
그 무슨 緣由 깊은 일 하마 말슴 하실까
몸짓만 사리어도 흔들리는 구슬소리
옷자락 겹친 속에 살ㅅ결이 꾀비치고
도도록 내민 젖가슴 숨도 고이 쉬도다
해마다 봄날 밤에 杜鵑이 슬피 울고
허구헌 긴 世月이 덧없이 흐르건만
황홀한 꿈속에 쌓여 홀로 微笑 하시다
靑磁賦
보면 깨끔하고 만지면 廟촐하고
神거러운 손아귀에 한줌 흙이 주물러져
千年전 봄은 그대로 가시지도 않았네
휘넝청 버들가지 포롬히 어린 빛이
눈물 고인 눈으로 보는듯 연연하고
몇포기 蘭草 그늘에 물오리가 두둥실!
高麗의 개인 하늘 湖心에 잠겨 있고
숙으린 꽃송이도 향내 곧 풍기거니
두날개 鄕愁를 접고 울어볼줄 모르네
붓끝으로 꼭 찍은 오리 너 눈동자엔
風眼 테 넘어보는 할아버지 입초리로
말없이 머금어 웃던 그 모습이 보이리
어깨 벌숨하고 목잡이 오무속하고
요조리 어루 만지면 따스론 임의 손ㅅ길
千年을 흐른 오늘에 상기 아니 식었네
달의 노래
―이호우 사백 영전에
낙동강 나루턱에 달빛만 푸르다더냐
사슬 묶인 날은 그 마음 더 푸르더니
풀섶에 생애를 묻고, 몸도 마저 묻힌다.
쫓는 사냥군에 발을 삔 사슴이처럼
빗장 닫어걸고, 나를 반겨 숨겨 주던 밤
그 밤도 푸른 달빛은 뜰에 가득했어라.
집을 옮기고 뜰도 예대로 옮겨오고
그 목과(木果)사람처럼 풍상에 부대끼더니
익어서 떨어지는 소리, 미리 듣고 알던가.
긴긴 밤 걷히어도 갈피조차 못할 판국
외로 닦은 길을 손잡고 가쟀으나
저 어둠 다시 행궈낼 달은 이미 잠겼다.
(1973년 3.20)
축제
살구나무 허리를 타고 살구나무 혼령이 나와
채선(彩扇)을 펼쳐들고 신명나는 굿을 한다
자줏빛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감는 연분홍!
봄을 누룩 딛고 술을 빚는 손이 있다
헝클린 가지마다 게워넘친 저 화사한 발효
천지를 뒤덮는 큰 잔치가 하마 가까와 오나부다.
―『삼행시』 1973
꽃피는 숨결에도
꽃피는 숨결에도 자미(子美)는 눈물지다
고운 그 마음에 짐지운 아픔이라
스스로 꽃다운 몸짓, 못가짐이 설어라.
먼 앞대 바닷가엔 첫눈이 내렸다냐
헐벗은 저나무들 밤낮없이 우니는데
내 어찌 가슴 조임을 벌 받는다 하리오.
―『삼행시』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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