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삿대질에 고함?
대선판에 등장한 영부인 후보들,
毒일까 得일까
대선 레이스 파고든 후보 배우자들 논란
----노무현 전대통령과 권양숙여사----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2002년 4월 17일 경북 포항실내체육관에서
열린민주당 대선 경선 연설에서 노무현 후보가
말했다.
장인의 과거 좌익 활동 이력이 선거판에 이슈로
떠오르자 맞받아친 것이다.
이종근 데일리안 전 논설실장은
“우리나라 대선 레이스에서 후보 아내가 뉴스
중심에 선 사실상 최초의 사례”
라고 했다.
< 일러스트=유현호 >
대선 후보의 아내는 남편이 승리하면 청와대
안살림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대통령과
한 공간에서 살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른바 ‘베갯머리 권력’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달아오른 대선 판에 유력 주자들의 아내가 뉴스의
중심에 등장했다.
상대 후보들의 배우자 이력을 공격하고, 거칠게
반응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정치평론가 황태순씨는
“역대 어느 대선도 이번처럼 후보의 아내들이
전면에 등장해 공격의 소재가 된 적이 없다.
특이한 선거”
라고 분석했다.
어쩌다 영부인 후보들이 대선판 전면에 등장하게
된 걸까.
◇비호감 대선이 아내들을 불러냈다?
지난 23일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한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해 상대 패널을 향해
고함을 치고 삿대질하는 일이 벌어졌다.
----원희룡후보 부인인 강윤형씨----
원 후보 아내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강윤형씨가
한 지역 언론사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소시오패스나 안티소셜(antisocial·반사회적)
경향을 보인다”
고 말해 논란이 인 탓이다.
----원희룡후보와 강윤형씨----
이 후보 캠프 측 현근택 변호사가 방송에서
사과를 요구했지만, 원 후보는
“전문적 소견에 비춰서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고 거절해 말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 아내들이 뉴스 전면에
등장한 것은
“유례없는 비호감 선거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
고 지적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고, 후보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다 보니, 선거의 중심이
비판과 공격으로 옮아붙었다.
소재를 찾다 보니 후보 아내가 뉴스 중심에
들어온 것”
이라고 했다.
윤석열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는 과거 박사 논문이나
주가 조작 의혹 등으로 뉴스에 오르내린다.
----윤석열후보 부인인 김건희씨----
김씨는 지난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한 번 모습을 보인 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
윤 후보 캠프는
“김씨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는 입장이다.
윤 후보도 아내 의혹이 불거져 나올 때면 적극
옹호한다.
----개 사과 논란----
최근 ‘개 사과’ 논란이 터지자
“김건희씨 작품이 아니냐”
는 의혹이 일었지만, 윤 후보는
“사진은 직원이 찍어 올렸지만 내가 승인했으니
내 불찰”
이라며 선을 그었다.
홍준표 후보의 아내 이순삼씨 활동도 활발하다.
홍 후보를 대신해 전국을 돌며 청년들과 간담회도
가진다.
----홍준표후보의 부이인 이순삼씨----
이씨는 이번 경선에서 홍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는데, 경쟁 상대인 윤 후보의 아내
김씨를 겨냥한 선택이란 해석이 나왔다.
윤 후보는 이를 의식한 듯
“어떤 분은 가족이 후원회장도 맡는데…”
라고 비꼬았다.
홍 후보가 대선 자금과 관련된 이야기가 외부에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아내를 후원회장에 앉힌 것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홍 후보는
“소환 대기 중이어서 공식 석상에 못 나오는 (윤석열)
아내보다는 아름다운 동행이자 희생”
이라고 맞받았다.
----홍준표후보와 부인 이순삼씨----
후보들이 아내를 적극 옹호하는 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향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실장은
“노 전 대통령 발언 이후, 아내를 적극적으로 감싸는
모습이 여성들 사이에서 공감을 이끌었다.
20~30대 여성들은 소셜미디어로 여론을
잘 조성한다”
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는 2018년에 언론의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이재명후보 부인인 김혜경씨----
이 후보가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자리를 놓고
전해철(현 행정안전부 장관) 의원과 경쟁하던 당시,
전 의원을 비방한 트위터 계정이 있었다.
해당 계정의 아이디는 공교롭게도 김씨의 영문
이니셜과 같았다.
이 때문에
“이 후보 아내가 쓴 글이 아니냐”
는 의혹이 일었고, 네티즌들은 이 계정에 대해
김씨 이름을 따서 ‘혜경궁 김씨’라고 별명을 붙였다.
이 같은 이력 때문인지, 김씨는 지금까지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후보와 부인인 김혜경씨----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이 후보의 경우 여배우 스캔들 문제가 있어 아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래저래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고 말했다.
◇ “후보 아내에 캠프 역량 30 % 동원”
대선 캠프에서 몸담았던 인사들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후보 배우자에 관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2년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의 아내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경우, 좀 더 활발한 대외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캠프 내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안철수대표와 부인인 김미경교수----
당시 캠프에 참여한 A씨는
“여사님이 공개 석상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셨고,
보완적 역할을 하는 정도에만 그쳤다”
며
“모든 대선 후보들은 부부만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캠프에서 의견을 강하게 내기가 어렵다”
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후보 시절 김윤옥 여사가
요리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이명박 전대통령과 부인인 김윤옥여사----
당시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대학 교수는
“여사님이 음식을 잘하시니 기업가 이미지가 강한
후보를 보완하도록 콘셉트를 잡았다”
며
“후보 아내의 말도 캠프에서 정제해 언론에
공개했는데, 캠프의 역량 30% 정도를 (배우자에게)
동원한 것 같다”
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도 차분하고
조용한 이미지로 인식돼 있다.
----노태우 전대통령과 김옥숙여사----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국회의원은
“87년 대선 당시 김 여사가 유세장에 등장해
카메라가 따라다니면 수줍게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는데, 당시 대통령 부인이던 이순자씨가
강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어
캠프에서 나름 고려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비교적 활발한 이미지를 준 대통령 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정숙 여사다.
----김정숙 여사----
김 여사는 지난 2012년 문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도전했을 당시, 경선이 치러진 체육관에서
‘문재인!’을 외치는 등 활달한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 모친인 고(故) 강한옥 여사도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며느리, 착하고 시원시원한 게
우리 식구들하고는 좀 대조적”
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여론조사 기관들이 영부인이나
영부인 후보에 대한 호감도 여론조사를 한다.
2012년 재선에 도전한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호감도가 56%였는데,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
호감도는 남편보다 13%포인트 높아(69%)
화제가 됐다.
----클린턴대통령과 힐러리여사----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1990년대 빌 클린턴 후보는 아내 힐러리 여사를
언급하며, ‘나를 찍으면 유능한 힐러리라는 사람을
한 명 더 얻게 된다”
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우리 선거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
이라고 말했다.
곽창렬 기자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