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분노의 계절
강 문 석
미국의 911테러 이후 서방에선 거의 모든 정부건물들을 삼엄하게 경비하면서 일반인의 접근도 차단하고 있었다. 중요 건물들에 대한 보안수준이 이렇게 낮은 국가는 노르웨이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개방사회라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왕래하며 언제든 정치인들과 만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노르웨이는 테러행위에 문을 활짝 열어준 셈이다. 2006년 실시한 보안실태조사에서 오슬로 정부건물들이 취약하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당시 지역뉴스가 촬영한 현장은 섬뜩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었다. 정부청사 주변에 출입통제용으로 설치한 쇠사슬은 무용지물에 가까웠고 누구나 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을 건물 앞에 주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건물 진입로를 차단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뉴스가 나가고 오 년이 지나도록 지역당국은 진입로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로를 차단하는 단순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데도 몇 년을 기다려야하다니 정말 기가 막히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테러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지연사례가 보안에 관한 노르웨이의 자기만족과 안일함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마비상태와 같다고도 할 수 있는데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1년 7월 22일 진입로는 여전히 개방되어 있었기에 브레이비크는 총리공관 바로 옆에 폭탄차량을 주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브레이비크의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피해를 입힐 정도로 폭탄이 커야 한다. 그래서 그는 구백오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비료폭탄을 제조하기로 했던 것이다.
제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위조대학졸업장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판매하며 육십만 달러가 넘는 수익금을 전 세계 은행계좌에 은닉했다. 2009년 5월 그는 비료폭탄을 만들기 위해 명목상의 농장도 세웠다. 덕분에 어떤 의심도 사지 않고 비료 육 톤을 구입할 수 있었다. 직접 비료포대를 메고 혼자서 폭탄제조 작업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구입 물품이 정부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2010년 12월 그는 기폭제 성분인 질산나트륨을 폴란드 화학약품회사에서 구입했다. 각국 세관들은 위험한 화학물질의 거래를 추적하기 위해 ‘글로벌 실드’라는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었고 이 회사는 그 감시대상에 올라 있었다. 테러발생 여덟 달 전 노르웨이 경찰정보국 PST는 글로벌 실드의 보고를 받았던 것이다.
보고서에는 폴란드에서 위험한 화학물질을 구매한 자국민의 목록이 들어있었다. 경찰은 관세청에서 마흔한 명의 이름을 넘겨받았고 브레이비크의 이름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PST 사건담당자가 보고서를 받은 직후 휴가를 떠나면서 브레이비크는 조사를 받지 않았고 감시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그가 감시대상에 남아 있어서 PST가 추가정보를 얻었더라면 합법적이고도 조직적으로 브레이비크를 더 조사했을 것이다. 브레이비크는 위험한 화학물질을 폴란드에서 추가로 구입했다. 정보당국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수사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PST는 브레이비크가 당국의 첩보망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믿는다. 넉 달 안에 추가정보를 받지 못하면 이들은 기존 정보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이비크의 구매내역은 수사를 받지 않았고 그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폭탄을 제조할 수 있었다. 그가 위험대상인물로 다시 지목된 것은 자동소총과 글록권총을 구입하려했을 때이다. 노르웨이에서 사냥은 흔한 활동이라 많은 사람들이 소총을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냥꾼들에게 글록권총은 필요가 없다. 이러한 총기를 구입할 수 있는 허가를 받으려면 스포츠클럽이나 사격클럽에서 정기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범인은 오슬로의 사격클럽에서 열다섯 차례에 걸쳐 훈련을 받고나서 글록권총 구입을 신청했다. 경찰이 처음엔 허가해주지 않으면서 그에게 추가정보를 요청했다. 그는 사격대회 참가를 준비하고 있는데 대회규정이 변경되어 권총도 포함되었다고 답했다.
사격클럽도 그의 진술을 확인해주었다. 그래서 경찰은 테러감행 전에 브레이비크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이제 노르웨이 치안당국만이 테러 당일에 그를 막을 수가 있었다. 폭탄테러가 성공하면서 이제 할 일은 우퇴위아 섬에서 발생한 테러에 대처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희생자가 사살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경찰은 섬에 도착하지 않았다. 촉각을 다투는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도 경찰은 오질 않았다. 범인은 경찰에 투항할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브레이비크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살인을 막을 수도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경찰병력 수송과 통신과정에 문제가 없었더라면 브레이비크를 더 빨리 체포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첫 총성이 울린 이후로 신고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노르웨이에선 긴급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중앙상황실이 아니라 지역 경찰서로 연결된다. 이곳 경찰서는 전화회선이 두 개밖에 없어서 신고전화를 동시에 두 건밖에 받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신고전화가 빗발쳤다. 그래서 회선을 추가로 열었는데 대기전화가 마흔 건에 달했다. 한 여학생은 경찰에 세 번이나 신고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연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은 당혹스러웠고 경찰이 신고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몇 신고전화가 접수되었고 첫 총성이 울리고 십 분이 지나서야 노르웨이 경찰의 정예부대인 델타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오슬로 폭탄테러 현장의 안전 확보를 돕고 있었다. 이제 신속하게 우퇴위아 섬으로 출동해 브레이비크를 체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퇴위아 섬은 사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델타부대는 퇴근길 교통체증과 바람이 심한 시골길과 싸워야했다. 섬에 도착하려면 반시간이나 넘게 걸린다. 그동안 섬에 있는 청소년들은 무방비상태였다. 섬 건너편에 있는 주민들도 총성을 들었는데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