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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요한복음 4:31-42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성공한 최고 경영자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과 불타는 비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코카콜라 회사는 “코카콜라 식민지”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에 코카콜라 지사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유엔 가입국 수보다 코카콜라 지사가 있는 나라가 더 많고, 미국이 수교하고 있는 나라보다 코카콜라 회사가 수교하고 있는 나라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코카콜라가 길을 뚫으면 그 뒤를 미국 대사가 따라 들어온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코카콜라를 마시게 해야 되겠다는 사명감과 비전 가운데 일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코카콜라는 매초마다 4만명이 마시고 있습니다. 문제는 코카콜라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영실적을 얼마나 많이 올렸는가, 쉽게 말해서 장사를 잘하여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성공의 원리도 모두 예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최고 경영자 예수」(JESUS CEO)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최고 경영자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이 생전에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을 기초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최고 경영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경영의 원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통해 예수님의 사명과 비전을 잘 배워서 우리도 사명과 비전을 통하여 위대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사명)을 행하는 것이였습니다. (31-34)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거의 마칠 즈음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들고 동네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한 낯선 미모의 여인과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로맨스를 즐기시는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깊은 존경심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제자들은 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던 여인이 갑자기 물동이를 버려두고 치마를 잡고 쏜살같이 동네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사마리아 사람들은 확신과 감격에 찬 증거를 들었습니다. 또한 여인의 얼굴에서 환하게 빛이 났고 기쁨과 은혜가 흘러넘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창녀 같은 여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이 여인을 변화시킨 분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 하는 호기심에 이끌려 예수님께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받은 자매의 간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공부를 많이 한 학자나 설득력을 가진 웅변가도 아니었고, 다만 문제가 복잡한 한 자매에 불과했습니다. 또 이 자매의 간증은 미사여구가 담긴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매우 단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인의 간증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이 있었던 것은 여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변화된 삶 자체가 생명력 있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필요한 것은 높은 수준의 지식이나 뛰어난 웅변술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뜨거움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 자매의 간증을 듣고 예수님께로 오고 있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랍비여 드세요. 그동안 배고프셨지요?” 하며 김밥과 컵라면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음식에 조금도 관심이 없으시고 오히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없는 사이에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입니다(요 6:39,40; 눅 19:10).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병든 영혼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죄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이 힘들다고 중도에서 포기치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하지 않으시고 기쁨으로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시고 이를 행하심으로 참 만족과 기쁨과 힘을 얻으셨습니다.
양식이란 먹음으로써 힘을 얻고 만족과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힘이 없고 생명력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나고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사람들이 육의 양식을 먹고 힘을 얻는 것 같이, 사마리아여자로 인해 사마리아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시고 이를 통해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시고도 조금도 지치지 않으시고 힘있게 사역을 감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자체가 힘을 얻는 양식이요 쉼이요 기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명이란 무엇일까요? 사명은 우리에게 참 만족과 기쁨을 주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어야 하며, 일생 감당해도 후회함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대학 시절에 그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온 천하가 다 무너지더라도 내가 꽉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사명, 내가 이것을 위해서 살고, 이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나의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는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알게 되는 날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 목적에 쓰시겠다고 작정한 그 목적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사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에 참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합니다. 일생 감당해야 할 사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컴퓨터 게임이나 하며 인생을 무기력하고 무가치하게 사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사명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또 사명인의 인생을 살면 얽매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사명처럼 우리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용감하게 만들고, 성실하게 만들고, 지혜롭게 만들고, 경건하게 만들고, 진지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매튜 폭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게으름을 치유하는 처방은 단순히 ‘부지런해지자’라는 결심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게으름에 가장 적절한 처방은 당신 안에 있는 사명의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명의 불꽃을 발견하면 신바람이 나서 누가 보든 안보든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고 우리의 삶을 제한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기에 가장 적합한 일이다. 그것은 결코 사람을 비천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서 우리는 새 힘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욱 잘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를 즐기지 못하고 노동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를 즐기지 않고 무슨 업적을 남기듯이 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발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표팀들에게 축구를 즐기면서 하도록 훈련하였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당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며 하는 사람을 못당한다.”
세상에 많은 일이 있지만 죄로 인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처럼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억지로 의무감으로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남선교회가 족구를 즐기듯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즐기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현실과 상황보다는 비전을 보셨습니다. (35-42)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함으로써 영적 힘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에는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바라보시고 비전으로 불타셨습니다. 35절을 보면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곡식을 추수하는 데는 씨를 뿌린 후부터 추수하기까지 일정 기간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추수는 이와 다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씨를 뿌린 후 곧 추수할 때가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사마리아 지역을 바라보시고 추수할 비전에 불타셨습니다.
제자들은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를 바라볼 때 편견과 민족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사마리아는 척박한 땅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먹고 마시는 현실 문제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현실 문제에 매이게 되면 자기중심적이 되고 마음이 좁아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현실 문제가 우주만큼 크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현실 문제에 얽매여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실 문제에 얽매이기보다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영적 세계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좁은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넓고 광활한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가슴이 탁 트이게 되고 비전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때 나를 얽어매고 괴롭히던 현실 문제는 조그맣게 보이고 모든 문제를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비전이 없는 사람은 주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애낳고 키우는 일상적인 삶에 얽매여 갈등하고 번민하고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전이 없기 때문에 쫀쫀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비전이 있을 때 생각이 커지고 마음쓰는 것이 넓어지고 계획하고 행동하는 스케일이 크게 되어 큰 인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잠언 29:18절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묵시는 비전이라는 말입니다. 방자히 행한다는 말의 원 뜻은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뜻입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할 짓을 골라서 하게 됩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 비전이 없는 모임, 비전이 없는 개인은 자기 중심적이 되고 점점 내면이 부패해져서 망하게 됩니다. 그러 개인이나 모임이나 민족이 비전이 있으면 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망하고 흥함은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노인과 청년의 차이도 나이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비전을 소유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꿈을 가지고 있다면 청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을 포기하고 오늘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노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비전에 불타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식 문제로 심령이 좁아질 때마다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4-16)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예수님께서도 열 두 제자들을 통하여 전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할 비전 가운데 제자양육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로 복음을 완성하신 후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예수님은 현실문제로 인해 마음이 좁아져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겉으로 보면 오늘날 시대는 우리로 근심하게 합니다. 자살율1위, 낙태율1위, 북한 핵문제 내적으로는 이단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고통하는 교회,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눈을 가지고 이 시대를 보면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입니다. 저 세상영혼들은 자신들을 주께로 데려가 달라고 애타게 추수할 일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명 한명이 사명과 비전을 발견하고 거기에 자신을 던져서 불태우기를 원하십니다. 투철한 사명감과 불타는 비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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