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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를 그만두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지만 열심히 산다. | ||
완도 노화출신 김봉준프로권투선수가 세계타이틀매치가 있던 지난 1989년 4월 16일, 완도전역에는 ‘만세’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콜럼비아 아구스틴가르시아선수를 7회 TKO로 물리치고 WBA미니멈급 세계챔피언을 짠물 맛만 나는 섬놈이 세계를 뒤흔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TV로 지켜보던 많은 완도군민들은 열광했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거리는 ‘장하다 완도의 보배’ 김봉준이라는 펼침막과 완도 전역은 축제 분위기였다.
김 선수는 운동을 그만두고 사회에 적응하기도 전에 보증을 잘못 서 살던 집도 넘어가고 쫓기듯이 서울을 떠났다. 전주로 몇차례 거처를 옮긴 후에야 현재의 밀양에 정착한다.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친구나 형제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한없이 서럽기도 했습니다.” “벌써 44살로 중년이 됐습니다. 아무 세상 물정도 모른 속없는 남편하나 믿고 따라 준 아내가 고맙고요.”
김 선수는 챔피언이 되던 89년 부인 김명숙(45세)씨와 결혼하고 자녀 1남 1녀를 두고 있다. 현재 영양탕집을 운영하면서 인테리어 사업을 겸하고 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 20여년 전 열심히 흘렸던 땀을 지금 다시 흘리며, 자신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 선수는 노화 신리가 고향이다.노화초등학교와 노화중을 나와 노화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권투가 너무나 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었던 숭민권투체육관의 조민 관장을 만난 것이 권투에 첫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
김용강, 장정구, 문성길, 김태식선배 등 前세계챔피언들과 가끔 안부를 묻는다는 김선수는 완도가 고향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밀양에서 김이나 전복 등 완도 수산물 홍보대사로 나서기도 한다. 낯선 밀양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밀양에 체육관을 차려보라고 후원자가 생겼을 만큼 객지에서 기반도 닦았다. 꿈이 있다면, 훗날 완도에서 고향의 후배들을 양성 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현재, 완도에는 큰형 김계춘씨와 친척들이 살고 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고향어민들이 생계보장이 될 수 있도록 군행정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새해에는 모든 완도군민들의 바라는 모든것이 다 이루어지길 빌며, 멀리서 건강하길 빌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한번씩 링에서 다운될 수 있습니다. / 여러 번씩도 다운 될 수 있습니다. / 권투선수라면 다운당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요. / 중요한 것은 / 또, 일어서는 사람만이 / 챔피언이 될 수 있습니다. - 조지 포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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