挽外祖石屏李公休運
退軒 全克泰
入神靈夢稟精萃
公裁嵬嵬付道器
家學能傳趨鲤對
禰宗無育詔螟嗣
講筵幾設鄉士會
仁望三登太常記
漠漠郊庄揮淚視
荒臺老檜為誰翠
만 외조부 석병 이휴운
퇴헌 전극태
신령스러운 꿈속에서 정수(精髓)를 받았으니
공께서 높고 높은 도기(道器)를 줄 것을 결정하셨다.
가학(家學)은 편지로 능히 전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종통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양자로 승계해야 한다.
고을 선비들의 모임을 몇 개 설립하여 강연(講筵)하니
어질고 덕망이 있어 공적 기록부(태상)에 3번 등재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황량한 시골을 바라보니
황량한 누대 옆 늙은 노송나무는 누구를 위해 푸르를까?
[국역] 전과웅
[출처] 퇴헌유고
● 이휴운 [ 李休運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 거주한 문인 학자.
가계
이휴운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가회(嘉會), 호는 석병(石屛)이다. 고려 말 군기시소윤을 역임한 낙은(洛隱) 이헌(李軒)의 후손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이영승(李令承), 아버지는 이사경(李士慶),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로, 서언겸(徐彦謙)의 딸이다. 부인은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우(南宇)의 딸이다. 5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행직(李行直), 이우직(李友直), 이정직(李珽直), 이언직(李言直), 이심직(李心直)이고, 딸은 전유장(全有章)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이휴운은 1597년(선조 30) 1월 8일에 태어나 대구부 해안현(解顔縣)[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에서 살았다. 1611년(광해군 3) 15세 때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연경서원(硏經書院)에 가서 『중용(中庸)』을 공부했다. 1614년(광해군 6) 18세 때 종형 이영운(李榮運)과 함께 예안(禮安)[지금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의 건지산(搴芝山)에 가서 책을 읽었다. 이듬해인 1615년(광해군 7)에 예안의 오계서당(迃溪書堂)에 가서 종숙인 선오당(善迃堂) 이시(李蒔)에게 수학하였다. 이때 동문들과 계를 만들어 “인을 돕는[보인(輔仁)]” 뜻을 밝혔는데, 그 규약이 매우 엄격하였다. 1617년(광해군 9)에 사수(泗水)[지금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에 가서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가서 『퇴계집(退溪集)』, 『심경(心經)』, 『용학문목(庸學問目)』등을 배웠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인조가 공주산성(公州山城)으로 피란을 떠나자, 채선견(蔡先見), 민겸동(閔謙同), 한명욱(韓明勖), 이종문(李宗文)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얼마 뒤에 이괄의 난이 평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해산시키면서 군량미 일체를 국가에 헌납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입석리(立石里)[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 터전을 마련하고, 금호강가의 적지산(赤池山) 아래에 적지정사(積智精舍)를 건립한 뒤에 벗들과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며 시를 읊었다. 이후 또 직경당(直敬堂)을 세운 뒤에 경전과 역사서 등을 두루 탐독했는데, 특히 『심경』을 읽고 그 내용을 도설(圖說)로 표현했다. 1662년(현종 3)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성균관사예에 제수되었고, 1666년(현종 7)에 용양위부사용에 제수되었다. 1668년(현종 9) 8월 29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72세였다.
학문과 저술
이휴운의 저서로 2권 1책의 『석병집(石屛集)』이 있다.
묘소
이휴운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고모산(顧母山)에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휴운 [李休運]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精萃
정수. 정화(精華).
● 도기道器
수행을 하여 도를 이룰 만한 근기
● 鲤 잉어리
1.잉어(잉엇과의 민물고기) 2.편지(便紙ㆍ片紙)
● 이종(禰宗)이란 아버지의 제사를 장형(長兄)이 거행할 때 형제들이 모이는 것으로 형제의 범위를 말하며, 아버지 제사를 위한 집단인 것이다.
● 螟嗣 명사
양아들.
● 講筵 강연
1. 강석(講席). 2.임금에게 아침(=조강(朝講))ㆍ낮(=주강(晝講))ㆍ저녁(=석강(夕講))으로 경서(經書)를 진강(進講)하던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 태상 [ 太常 ]
①고려 시대 제사(祭祀)와 증시(贈諡)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청. [참고어]봉상시(奉常寺). 태상시(太常寺).
②해와 달•별•교룡이 그려져 있는 임금의 깃발. 신하가 공적이 있으면 널리 기리기 위해 태상에 기록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