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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밤에
전 호 준
“똥태~ 똥태 야!”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진 목소리로 친구 이름을 연신 부르며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다. 발로 밟고 들고 있던 꼬챙이로 미친 듯이 두들겨 보지만 소용없다. 오히려 튀는 불씨가 불어오는 바람에 뜀뛰기 하듯 번지며 성난 불길이 방앗간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간다.
1950년대만 해도 정월 대보름은 어린 우리에겐 설레는 명절이었다. 지나버린 설날의 아쉬움 끝에 찾아오는 정월 대보름이니, 손꼽아 기다려졌다.
년 중 두 번 맛보기 힘든 대추 찰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부럼 깨기로 귀하고 귀한 밤과 호두 땅콩 등을 맛볼 수가 있었다. 어른들은 귀가 밝아져 일 년 내내 좋은 소식만 들을 수 있다며 귀밝이술을 마셨다. 어린 우리들에게도 병아리 눈물만큼 술을 부어 마시라고 했다. 밤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불장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한해 중 유일한 날이기도 하다. 빈 깡통에 숭숭 구멍을 뚫고 가는 철삿줄 끈을 매어 쥐불놀이 준비를 하곤 했다.
우리 마을 입구, 일명 돌배 이(작은 동산 이름) 홰나무 아래 어른 키만큼 감자 같이 생긴 제법 큰 바위가 마을 수호신처럼 서 있었다. 섣달 그믐날 바위 주변엔 건구새끼(금줄)가 쳐지고 보름날까지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보름날 아침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를 지내고 마을 청장년들로 구성된 풍물놀이패들이 집집을 돌며 지신밟기로 악귀와 잡신의 기를 꺾어 집안의 평안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농악놀이가 종일 이어졌다.
설날이 지나고 보름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이웃 마을 무당이나 글줄이나 읽은 마을 어른을 찾아 풍년 초(담배) 한두 봉을 사 들고 가족들의 토정비결을 보아 오셨다. 토정비결 괘에 따라 액운을 면하기 위한 양 밥(액막이 방법)을 했다. 대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고 두 번 또는 네 번 절을 하여 액운을 면해달라고 빌기도 하고, 간단한 제물을 준비해 세 갈래 길(삼거리)에 가서 북쪽 또는 남쪽을 향해 절을 몇 번을 하라는 등 연례행사 같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던 시절이었다. 장가 못간 노총각들도 달덩이 같은 신부를 점지해 달라고 남몰래 달을 보고 빌면 소원성취 한다고들 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로 기억된다. 일찌감치 토정비결을 보고 오신 어머님이 “준 이 너는 정월 이월에 양(陽)이 드세니 불조심을 해야 한다” 보름날 달이 뜨면 음기(陰氣)인 달에 네 번 절하며 무사안일을 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달맞이 행사로 마을 청년들이나 형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높은 산에 오르기도 하고 우리들은 형이나 누나들을 따라 마을 뒷산에 올라 달뜨기를 기다렸다. 일찌감치 저녁밥을 먹고 형을 따라 마을 뒷산에 올랐다. 형들은 나뭇가지를 주셔 모으고 갖고 온 짚단에 불을 붙어 달집태우기 놀이를 했다. 사실 모닥불은 추위를 달래고 달이 뜨기 전까지 어둠을 밝히는 방편이었다. 불을 쬐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보름달이 비봉산 위로 솟아오른다. 가히 한 아름이 됨직한 보름달이 서서히 얼굴을 내민다. “대보름 달 보소!”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어머님이 시키는 대로 달을 향해 입안으로 중얼중얼 절을 했다.
사방을 둘러본다. 건넛마을 뒷산에도 앞산에도 작은 불빛이 보인다. 들판 곳곳에 논두렁을 태우는 불길이 붉은 뱀처럼 꿈틀거린다.
논두렁을 태우는 것은 각종 해충의 알을 태우고 논두렁에 굴을 파고 겨울을 나는 들쥐 구멍에 연기를 불어 넣어 쥐를 나오게 하여 잡던 풍습인 쥐불놀이가 이어졌다. 형들은 준비한 깡통에 불을 담아 휘휘 돌리다가 하늘을 향해 멀리 던졌다. 현대판 불꽃놀이가 연상되는 멋진 장면에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밤이 이슥토록 불놀이를 해도 별다른 통제도 없던 시절이었다.
형들의 불놀이에 끼일 수 없던 나는 이웃집 전*수 친구와 단둘이 마을 인근들에서 이리저리 논두렁에 불을 지르며 나름의 쥐불놀이를 즐겼다. 친구는 같은 학년 같은 반이며 성이 나와 같은 전가(家)라 나와는 친하게 지냈다. 늦게야 안 사실이지만 한글 종씨로 일가(一家)는 아니었다. 평소 부르는 이름은 똥태다. 엄마가 뒷간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소문도 있지만, 야산 응달에 아총(兒冢:아기 무덤)이 비일비재했던 시절 명(命)이 길도록 붙인 아명(兒名)인 것 같다.
둘은 한동안 같이 놀다가 서로가 다른 논두렁을 따라 불을 옮기다 보니, 나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불놀이를 하고 있었다.
타들어 가는 불길 따라 나무 꼬챙이로 불을 이리저리 옮기다 보니 마을 근처 통통 방앗간(정미소) 부근까지 왔다. 당시 방앗간은 통나무 기둥에 얼기설기 서까래를 걸치고 시커먼 모르타르를 칠한 함석지붕이었다. 뒤쪽은 흙 담을 높이 쌓아 부연을 걸친 위에 송판으로 대충 때우고 짚을 엮은 이엉으로 덥혀있었다. 이어진 야트막한 흙담 지붕은 솔가지와 이엉으로 아무렇게나 덮여 있고 마른 풀잎들이 한데 헝클어져 너덜너덜했다. 담장 뒤는 바로 들판이다. 기다란 논두렁이 담장 턱밑까지 이어져 있었다.
순간 덜컹 겁이 난다. 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데 근처에는 이제까지 태운 잔디보다 키 큰 마른 잡풀이 우거져 불길이 더욱 거세진다. 발로 밟고 꼬챙이로 두드려 보지만 역부족이다. 때마침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겁에 질려 친구 이름을 다급히 부르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꼬챙이 하나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오히려 꼬챙이로 후려친 불씨가 튀어 급속히 번져간다.
허겁지겁 달려온 친구가 윗도리를 벗어 타들어 가는 불길의 머리부터 사정없이 내려친다. 일촉즉발, 담벼락과 간발의 차이로 기세등등하던 불길이 잡혀갔다. 안도의 한숨과 고마움보다 몸을 사리지 않고 윗도리까지 내던진 친구의 용기와 지혜가 놀랍다. 순간 옹졸하고 민망한 마음에 할 말을 잊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 똥태 망태 꼴망태! 하며 놀려먹던 자신이 초라하고 매우 부끄럽다. 조금 전, 달님에 액땜한 덕택일까? 친구의 민첩한 지혜 덕분일까? 재가 묻어 엉망이 된 윗도리를 훌훌 털며 “야! 인마, 까막소(감옥) 가고 싶나?” 친구의 한마디에 둘은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밝고 둥근 보름달처럼.......... 2018. 3. 2 일 보름날 밤에
첫댓글 옛 생각이 절로 납니다. 홍일식 박사는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책에서 우리의 전통 종교는 무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기독교도 수천년 내려오는 민족의 뿌리 신앙을 다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달집 태우기나 쥐불놀이 등도 우리의 안녕을 기원하는 신앙 행위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린시절 정월 대보름날 다양한 놀이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한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 외에 옆동네 아이들과 집단 산 쟁탈전 비슷한 놀이를 하였습니다. 논두렁을 태우다 산불이 날 뻔한 일들이 추억이 되어 떠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
친구분의 아명이 똥태라는 단어로 시작되어서 호기심과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면서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를 진솔하게 나열하여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 어릴 때 보았던 "달집태우기" 생각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시골은 모두 비슷한가 봅니다. 우리동네 이야기와 꼭 같습니다. 어머니의 토정비결 액땜이 효험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머니들의 애정과 헌신이 느껴져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유년의 후반을 보냈던 대구 신암동이라는 동네에서도 보름이면 남자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했습니다. 영천 철둑이라고 불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철길에서......'내 더위 네가 사가라' 하며 더위를 팔던 일들,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떠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때 밤이 깊도록 깡통불을 돌리며 놀던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저는 이번 청도 달집태우기에 갔다가 달집연기가 바람따라 한 쪽으로 솔리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기에 서로 밀치며 피하다 큰 사고를 당할 번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신기한 이야기 입니다. 제주에서는 볼수 없는 풍경입니다. 무속풍속과 달집 태우기 등 육지 농경문화의 신선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제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시골 어느동네나 비슷한 풍경을 봅니다. 지신밟는 놀이하며 오곡밥을 해먹고 집집마다 지신을 밟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무엔지 흥이나 꼬마아이들은 줄줄이 따라다니던 풍경을 다시보는 듯 합니다.대구에서도 70년도 초반까지 지신밟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글로서만 대할 수 있어 전설로만 들려집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