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 한 청년이 대관령을 넘다가 숲속에 발가벗고 앉아 있는 노스님을 보았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스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모기와 벌레들에게 내 몸과 피를 먹이고 있네.”
청년은 그 말에 크게 감동했고 스님을 따라 수행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스님이 무염선사였습니다.
어느 날 무염선사가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밥을 지어야 하니 솥을 걸어라.”
청년은 하루 종일 정성을 다해 솥을 걸었 습니다.
그런데 스승은 솥을 보자마자 걷어차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걸 솥이라고 걸었느냐? 다시 해라!”
청년은 아무 말 없이 다시 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멀쩡하게 건 솥을 스승은 계속 다시 걸라고 했 습니다.
그렇게 무려 아홉 번. 그런데도 청년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홉 번째가 되어서야 스승이 말했습니다.
“이제 조금 쓸 만 하구나.”
그래서 그는 ‘구정’, 아홉 솥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구정선사에게는 큰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글을 전혀 읽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스승에게 물었 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즉심이 부처이니라.”
그런데 구정의 귀에는 이 말이 이렇게 들렸 습니다.
“짚신이 부처이니라.”
이상했지만 그는 스승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 습니다.
그래서 자나 깨나 생각했습니다.
“짚신이 부처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바람이 불어 지게가 넘어졌고,짚신 끈이 툭 끊어졌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가 붙잡고 있던 의문도 함께 끊어 졌습니다.
그리고 크게 깨달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것은 많이 아는 사람이 반드시 깊이 깨닫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끝까지 붙드는 마음, 불평하지 않는 정성,
그리고 한결같은 믿음. 때로는 수많은 지식보다 그 한 마음이 사람을 더 멀리 데려갑니다.
모신 글 나무아미타불!
-조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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