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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세상을 뒤흔든 사상 70년 구독
(1) 개성·비판적 이성 잃고 야만으로 후퇴한 현대사회 꾸짖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세계를 뒤흔든 현대 고전을 다루는 이 기획에서 첫 번째로 살펴보려는 저작은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철학적 단상(Dialektik der Aufklärung: Philosophische Fragmente)>이다. 이 책은 194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완성하고 약간의 보완을 거친 뒤 194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쾌리도출판사에서 나왔다. 독일 철학자들이 독일어로 쓴 책이 미국에서 집필되고 네덜란드에서 출간됐다는 사실은 이 저작의 주제인 계몽의 운명을 암시한다. 계몽은 서구 근대를 이끌어온 사상의 주인이었지만, 그 주인은 이제 근대 문명으로부터 소외돼 세상을 떠도는 쓸쓸한 망명객과도 같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불리는 ‘비판이론’을 주도한 철학자들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프랑크푸르트대학이 1924년 창립한 ‘사회연구소’에 참여한 학자 그룹을 지칭한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제1세대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이들이 공유한 사유는 두 가지다. 독일 관념론, 마르크스주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결합해 독창적 사상체계를 발전시킨 게 하나라면, 현대사회를 기능·도구적 합리성이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로 파악하려 했다는 게 다른 하나다.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의 대표 저작
<계몽의 변증법>은 프랑크푸르트학파 제1세대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그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계몽의 개념’에 대한 탐구가 첫 번째 부분이라면, 문화산업 분석과 반유대주의 분석이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분을 이룬다. ‘계몽의 개념’을 시작하는 두 문장은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를 요약한다.
“진보적 사유라는 포괄적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완전히 계몽된 지구에는 재앙만이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무지에 빛을 비춘다는 계몽은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왔지만, 1940년대 전반의 시점에서 그 계몽의 결과는 야만으로 나타났다는 게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기본 문제의식이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계몽의 의미는 계몽주의와 사뭇 다르다. 계몽주의가 서구 근대 시민혁명을 이끌었던 자유와 평등의 진보사상을 함축한다면, 저자들은 이런 계몽주의에 앞서 이미 계몽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신화와 계몽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신화와 계몽은 객체에 대한 주체의 우위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계몽의 변증법>은 신화로부터 시작된 계몽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인 문명을 가져왔다고 파악한다. 문제는 이 문명화 과정이 사회라는 제2의 자연에 인간을 다시 예속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계몽이 등장했지만, 이 계몽이 선사한 문명은 새로운 폭력과 야만을 만들어냈고, 이는 계몽의 퇴보로 귀결됐다. 계몽이 보여준 전진과 후퇴의 과정이 바로 계몽의 정(正)과 반(反)을 이루는 변증법인 셈이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에 기반을 둬 <계몽의 변증법>은 1940년대 전반 당시 계몽이 처한 두 가지 퇴보를 주목한다. 미국이 선도한 문화산업과 독일에서 등장한 반유대주의가 그것이다. 문화산업이 일상을 지배하는 기만당한 계몽의 대표적인 사례라면, 반유대주의는 야만상태로 돌아간 자기파괴적 계몽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가운데 특히 문화산업에 대한 분석은 전후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을 구분한다.
이들이 예시하는 대표적인 문화산업은 영화와 라디오다. 영화와 라디오는 개성과 교양의 배양이라는 문화 본래의 목적보다는 이윤 창출이라는 자본주의 시장과 산업의 원리를 우선시한다. 문화산업이 모든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자유주의적 태도를 취하지만, 시장과 산업을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저자들은 비판한다.
개성과 비판적 이성의 상실은 문화산업에 내재된 계몽의 퇴보를 적절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문화산업은 복제와 대량소비를 위한 상품인 다양한 대중문화를 생산하고, 대중은 일상으로 들어온 표준화된 문화상품을 끝없이 소비한다. 이 소비과정에서 대중은 각종 문화상품이 제시하는 표준화된 삶의 모델들을 승인하게 되며, 결국 자기만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개성과 계몽의 일차적 가치인 비판적 이성을 내면화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하버마스 “가장 어두운 책”으로 평가
아도르노의 수제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에서 <계몽의 변증법>이 시민 사상가들이 쓴 책들 중 ‘가장 어두운 책’이라고 평가한다. <계몽의 변증법>이 야만으로 퇴보한 계몽의 자기파멸적 운명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하버마스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1969년에 쓴 개정판 서문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오늘날 중요한 것은 간접적이나마 ‘관리되는 세계’로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보다는 자유를 지키고, 전개시키고, 확산시키는 것”임을 강조한다. 자유의 수호와 발전과 확장은 그릇된 계몽을 진정한 계몽으로 바꾸는 것, 다시 말해 ‘계몽의 계몽’을 뜻하며, 이 계몽의 계몽이야말로 관료화된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절망 속에서 두 비관적인 철학자가 발견한 가냘픈 희망의 한 줄기 빛이다.
<계몽의 변증법>은 대중사회와 대중문화 분석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 왔다. 대중사회론과 대중문화론은 대량생산된 문화상품에 기반을 둬 이뤄지는 엘리트의 대중 지배와 대중문화에 내재한 이윤 창출과 자본 재생산의 논리를 부각시킨다. 오늘날 그 어떤 대중문화도 시장과 산업의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계몽의 변증법>은 대중문화에 담긴 복합 과정을 간과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많은 이들이 대중문화에 몰두하지만,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은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방식으로 대중문화를 소비한다. 고급문화든 대중문화든 오늘날 문화가 시장과 자본에 구속돼 있더라도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들을 독해하는 것은 닫혀 있는 게 아니라 열려 있는 세계다. 이 열린 공간에서 시민들이 비판적인 태도와 의지를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적 ‘계몽의 계몽’이 아닐까.
■한국어판 저작은
<계몽의 변증법>은 김유동 경상대 교수 등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의 <계몽의 변증법: 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는 난해한 ‘계몽의 변증법’을 간결하고 깊이 있게 해설한다. 노 교수가 쓴 <계몽의 변증법>을 참조해 김 교수 등이 번역한 <계몽의 변증법>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마르쿠제 ‘1차원적 인간’ 1960년대 선풍적 인기 후학인 하버마스·호네트는 ‘비판 이론’ 새 지평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가 프랑크푸르트학파 제1세대를 대표한다면, 하버마스와 악셀 호네트는 제2세대와 제3세대를 각각 대표한다. 마르쿠제가 발표한 <1차원적 인간>(1964)은 1960년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차원적 인간>의 기본 아이디어는 1차원적 사유와 2차원적 사유의 구분이다. 2차원적 사유가 현실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적 사유를 함축한다면, 1차원적 사유는 현실을 이성의 구체화로 파악해 그 현실을 넘어서는 것을 회피하는 사유를 의미한다.
전후 고도화된 기술 지배 아래서 개인이 이제 그 지배의 자발적 신민(臣民)이 되는 사회가 1차원적 사회다. 1차원적 사회에 대해 ‘위대한 거부’를 촉구한 마르쿠제의 사상은 1960년대 서구에서 분출했던 다양한 저항운동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버마스는 서유럽과 미국의 다양한 사회이론들을 접목해 독창적이면서도 종합적인 비판이론으로 재구성했다(하버마스의 사회이론에 대해선 이 기획에서 그의 저작 <의사소통행위 이론>(1981)을 중심으로 따로 다룰 예정이다).
호네트는 <인정투쟁>(1992)으로 제3세대 비판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인정이란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사회적 조건이자 긍정적 자기의식을 갖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다. 타자로부터 당당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할 때 인간은 분노하며, 이 분노는 인정투쟁이라는 사회갈등으로 외화된다. 인정투쟁은 계급투쟁으로 환원할 수 없는 오늘날 지구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도덕적 갈등이다.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을 중시해 사회가 갖는 통합의 속성을 강조한다면, 호네트는 인정투쟁을 주목함으로써 현대사회에 내재한 갈등의 측면을 부각시키고 비판이론에 새로운 역동성을 부여한다.
1)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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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지 오웰의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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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데이비드 리즈먼의 ‘고독한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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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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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렌트와 현대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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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신좌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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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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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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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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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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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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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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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피터 드러커 ‘단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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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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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존 롤스의 ‘정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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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체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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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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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법, 입법 그리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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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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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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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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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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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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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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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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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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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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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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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누엘 카스텔의 ‘정보 시대 : 경제, 사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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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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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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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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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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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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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놈 촘스키 ‘지식인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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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클라우스 슈밥 ‘제4차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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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현대의 사상, 사상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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