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성공의 상징? 럭셔리?
현재 우리나라엔 약 200척의 세일링 크루저가 있으며 1억 원이 넘는 것은 30%를 밑돈다. 대부분이 일본이나 대만에서 온 중고 배들로 20피트대 크루저는 1천만원선이 주류이고 30피트급이 3천만원대, 40피트급 정도 되면 6천만 원선이다. 20피트급 중고 요트는 중고 승용차 값보다 결코 비싸지 않은 것이다. 한강변을 달리는 자전거가 보통 4~5백만 원이고 1천만 원을 넘는 자전거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비록 그 활용도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트가 럭셔리나 성공의 상징일 수는 없다. 더구나 자전거는 1인승이지만 세일링 요트는 10여 명이 즐길 수 있다.
선탠 하는 미녀?
40피트급이라도 돛으로 달리는 세일링 요트에서는 미끈하게 누워 선탠을 할 만한 갑판 위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갑판은 돛과 돛을 조정하기 위한 온갖 줄, 도르래, 클릿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선탠 하는 미녀가 등장하는 사진을 자세히 보면 돛이 있는 세일링 요트가 아니라 엔진으로 가는 모터 요트다. 멋스러운 흰색 바지와 흰색 셔츠, 이것은 가능하다. 단 크루가 아닌 아무 일도 맡겨지지 않은 게스트로 참가했을 경우에 한 한다.
세일링 요트의 크루는 할 일이 많다. 분담된 임무에 따라 줄을 당기거나 늦추고, 때론 선실 창고에서 돛을 꺼내 교체해야하는데 이것은 상당히 거칠고,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더구나 바람이 강할 경우엔 극도로 힘든 일이다.
요트 타는 것은 먼 나라 남의 일?
이것도 틀렸다. 요트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단,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잘못 인식된 점을 올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당신은 요트를 즐길 자격이 있다.
세일링 요트는 스포츠다
세일링 요트의 매력은 등산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 배낭을 지고 땀 흘려 걸어야한다. 그 보상은 운동효과,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 바람, 햇볕, 맑은 공기일 것이다. 야영은 호텔에서 자는 것보다 불편하다. 그럼에도 굳이 산을 찾는 이유는 그게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일링 요트의 최고 가치는 화석연료를 소비하지 않고 청정에너지인 바람의 힘을 이용해 항해한다는 것이다. 모터보트를 타다 세일링 요트로 옮겨 타면 조용함에 매료되고 만다. 배는 바람의 속도에 따라 빠르게 달리는데도 들리는 것이라곤 뱃전에 부딪치는 물결소리 뿐이다. 엔진이 가동될 때의 불편한 진동도 물론 없다. 세일링 요트는 스포츠다.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좌우로 이동하거나 각종 줄을 조정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운동이 된다. 운동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지적활동을 수반한다. 쉼 없이 바람을 읽고 해도와 기압 배치도를 분석한다. 몸과 머리가 함께 운동하는 것이다. 요트를 움직이는 바람은 공짜로 불지만 그 공짜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요트를 타고 싶다 해서 당장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요트조종면허를 취득하는 등 요트를 배우는 게 먼저이고, 무엇보다도 요트는 혼자서는 몰고 나갈 수 없어 함께 할 동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동료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키포인트다. 대부분의 요트들은 항상 좋은 선원에 목말라하고 있다. 즉, 요트를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되어있고 성실함이 입증되면 언제든 와달라고 환영하는 배가 수두룩한 것이다. 필자도 배를 사기 전까지 3년간 남의 배를 무수히 탔다. 어느 정도 세일링 기술을 갖추게 되면 전국 어느 마리나의 요트도 사실상 내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각종 요트 카페나 홈페이지에는 대부분 승선 신청란이 있다. 이를 통해 얼마든지 배를 경험할 수 있다. 심지어 중국, 일본까지 다녀오는 장거리 항해도 가능하고 독도 레이스처럼 거칠고 긴 레이스에 출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비용은 몇 만원의 회비와 개인 숙식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다. 요트로 가능한 것은 무궁무진하다. 맘 맞는 사람들끼리 바람을 타고 연락선이 닿지 않는 먼 섬에 가 낚시, 스쿠버 다이빙, 스킨다이빙, 야영, 섬트레킹을 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먼 곳의 섬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타지 않아 깨끗하고 아름답다. 얼마 전 다녀온 서해의 한 무인도엔 기다란 백사장이 있어 세일러들끼리 누드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달빛이 좋은 밤엔 문라이트 세일링을 즐기기도 한다. 급한 길이 아니면 뱃전에 걸터앉아 와인을 마셔도 좋고, 낚시를 해도 좋다.
요트는 바쁜 사람들의 배가 될 수 없다. 바람보다 빠를 수 없고, 바람을 거슬러 오를 수 없다(물론 바람을 거슬러 오르는 비팅이란 항해가 있긴 하지만 똑바로 가지 못하고 지그재그로 움직여야한다). 여유를 갖고 항해해야 한다.
전국에 요트 마리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세일링 요트도 늘고 있는 추세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 요트가 없어도 요트를 탈 수 있는 찬스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송철웅 / 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