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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는 누구인가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서문원 바오로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아가 6, 10)
천주의 성모 마리아, 참으로 귀하신
구세주의 어머니이신데도 이분의 실체에
대해 여러 말도 많아 마리아를 공경을 넘어
신격화한다는 비판도 있고 심지어 성모
신심을 사이비 신앙으로 몰아가기도 하므로
가톨릭 신자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이분을
바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실체와 의문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성경과 전승, 직관에 따른
근거를 제시해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사랑이 기독교 신앙에 어긋나지 않고 도리어
영혼의 구원과 부활의 소망에 부합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실존
어떤 대상을 연구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정말 그가 역사적 실존 인물인가 하는
것이기에 여기서도 우선 마리아라는 여인이
그 당시 존재했는가를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레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루카 1, 26-27)
어떤 면에서 이 의문은 좀 실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없었다면
아들인 예수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결코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나자렛에서 살았고
동정녀로 평생 지냈는가라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첫
질문은 그렇다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때 통상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는 것으로 봐서 그 부모가
나사렛이라는 고을에 살았다는 것은 분명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물음인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마태 1, 24-25)
사실, 마리아의 동정 여부에 대해서는
종교의 공적인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면서도
한편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면이기에
거론 자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의
자유분방한 시대에서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모른 체할 수
없는 이유는 어쩌면 하느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마태 1, 20-21)
성경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면 요셉은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약혼자의 부정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꿈속에 서 본 천사의 전갈에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예수를 본인
호적에 올렸습니다. 그 당시 정서나 법으로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성경에서는 그런 요셉을 어떻게
의롭다 하였을까요.
요셉은 단순히 율법에 머무는 신자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과 의를 영혼으로 알고 있는
인물이었던 듯합니다. 그러기에 돌팔매질
당해 죽어야 할 마리아를 구해주었고 모자를
보호하려 결혼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마리아에 대한 동정심, 아니면 불륜마저
감싸주는 사랑이었나요. 그런 것이라면
성경의 예수 탄생 기록은 모두 신뢰성을
잃을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분명 깨닫고 받아들인
올곧은 사람이었습니다. 부정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그 아들을 호적에 올리며
남자로서의 욕구도 절제하는 모든 행위는
초월자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신념의 차원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아들을 가진 마리아는 영적으로
육신으로도 그분의 사람이니 출산 후에도
보호는 해주어도 언감생심 넘볼 수
있었겠습니까. 마리아 또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한 여자의 몸으로 신앙을
버리지 않는 한 감히 동정을 깨뜨릴 수
있었을까요. 따라서 마리아와 요셉 두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이 두터운
의로운 이들이기에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였더라도 동정을 거스르는 행실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루카 1, 28-30)
말씀처럼 주님께서 택하신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성경의 기록과 더불어 예수의 생애를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톨릭 묵주기도에
녹아들어 있는데, 잠시 이 묵주기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기도는 귀하고
아름다운 염경이며 관상기도입니다.
묵주알을 하나하나씩 잡아 나가며 정해진
묵상과 기도문을 바치는 기도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도 전체를 묵상한 글에
연결되며 PDF파일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wons4320/222402664978
사실, 묵주기도를 바치며 생각해보면 성모
마리아의 생애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말했던 천사의 전갈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율법에
의해 처단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임신을
하며 척박한 마구간에서의 출산, 죽음을
피해 어린아이를 안고 외국으로 피난도
했죠. 돌아온 고국에서도 목수 아내의
가난한 생활과 그와의 사별, 아들의 공생활
출가, 떠도는 소문에 의한 걱정과 근심,
그리고 아들의 십자가 수난과 비통한
죽음...
정말 박복한 여인의 일생 아닌가요.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은 바로 이런 고통을 통해
드러나는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은 영혼의 구원과 완성이며 세상의
부유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은총과 시련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큰 은혜에 고통도 작지 않지만 어둠 가운데
촛불이 빛나듯 고난을 통해 신앙은 더욱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택해 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거센 시련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을 때 구원이 완성됨을 성모
마리아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 공경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 26-27)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사도 1, 14)
성경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기록은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참으로
빈약합니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할지라도 한 종교의
창시자의 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기술이 왜 이렇게 적은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마리아의 겸손한
성격일 수도 있고 또 모든 활동은 실제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제자들이
중점이 되며 그를 성경에 기록한 까닭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중에도 성경의 기록을
취합해 보면 성모 마리아는 예수 생전이나
사후 언제나 변함없이 조용히 순명하며
기도하는 모습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요한을
통해 상징적으로 말씀하셨듯이 한결같고
신실한 성모 마리아를 영혼의 어머니로
세우시고 저희도 마리아를 통해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을 받기를 바랐을
것이며 그 뜻에 따라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의 생을 바라봄으로써 삶의 시련
가운데서도 하늘의 소망을 잃지 않고
기도드릴 수 있기에 그녀를 희망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전구를 청하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전승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며 자력이 아닌 부르심의 은총에 의한
불러올림으로 몽소승천(夢召昇天)이라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사도들이 보는 가운데 죽음과 함께 즉시
승천했다고 전해지며 또 다른 전승으로는
뒤늦게 도착한 토마스 사도가 후에 무덤을
찾아가니, 수의만 가지런히 놓여 있는 채로
장미 향만 가득하더라고도 전해집니다.
물론 이것을 증명하라고 하면 전승 외에
달리 보일 것이 없지만 성경의 엘리야나
에녹의 승천을 살펴봄으로써 마리아의
승천을 유추해 보고 싶습니다. 엘리야나
에녹은 흠잡을 데 없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생을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영혼이 머물던
육신까지도 귀히 여기시어 썩어 흩어지지
않도록 불러올리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근세에도 성인 성녀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는 기적, 성체와
성혈이 부패하지 않고 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현상들을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느님의 사랑이며 부활에
대한 예표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시어 창세 때 예고하시고 원죄 없이
잉태되도록 보호하시며 독생자를 낳아 기른
겸손과 순명의 마리아의 몸을 그대로 먼지로
돌아가게 하셨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며 성모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 모두를
하늘에 불러올리셨다는 것이 타당한 해석일
것입니다. 또한 성모승천을 전승한 이들은
크리스천 모두가 성인으로 존경하는
사도들로 이에 신뢰를 두어도 무방하리라
여겨집니다.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
무염시태(無染始胎)란 무슨 말인가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혹자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또 어떤 분은 “어떻게 사람이
태초에 인류의 조상이 지은 원죄 없이
모태에서 나올 수 있는가, 마리아가
신(神)이라도 되나요”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면
지나갈 문제를 신학자들은 구태여 들추어
마리아를 복잡한 논란의 장으로
끌어들였을까요. 그것은 예수의 신원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 아닌가 합니다.
지고지선한 하느님의 아들이 죄에 물든
사람의 몸을 통해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니 은총으로 마리아의 원죄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사해졌으며 그것은 한편
예수를 구원자로 영접하는 이들 역시도
마리아처럼 원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징표라 하겠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외아들을 통해 전해질
원죄로부터 해방의 은총을 마리아를 통해
앞서 구현하시고 그녀의 정결한 몸과 마음을
빌려 아드님을 세상에 내보내신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순전함으로 일생을 고결하게 살고
하느님께로 돌아간 천사의 전갈 그대로
“은총이 가득한” 분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가톨릭이나 정교회 신자들은 천주의
성모라는 말을 교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다른 종파 크리스찬들은
그 뜻을 마리아의 신격화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의는 앞서 언급한
무염시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신원과
연관된 문제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이단을
퇴출시키는 과정에서 채택된 말씀입니다.
예수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모두
받아들이고 삼위일체 교리에 의해
예수그리스도는 참된 사람이면서도 바로
진정 하느님이시니 그 어머니는 순리적으로
하느님의 어머니 천주(天主)의 모친이 되는
것이며 이 당연한 사실을 교회는
공표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를 비하하거나
함부로 하며 그 존재를 하찮게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일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제 그분을 천주의
어머니로 모시는 것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흠숭(欽崇)드리는 신앙의 당연한 귀결임을
모두 인정해야 옳을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되돌아보면 신앙생활을 하며 저는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자주
바쳤습니다. 그때마다 그분은 위로가 되시고
기쁨을 주시며 바른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 직접 청하는 것보다 응석 부리는
아이처럼 매달리고 편하게 기도를 드릴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 마음을 담은 시를
올리며 "성모 마리아는 누구인가"에 대한
글을 마칩니다.
묵주기도/서문원 바오로
자녀들 걱정 엄마 마음
은총의 이슬 내리는
감미로운 하늘의 송가여
살며시 잡은 손끝
떨리는 숨결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머니의 사랑 노래
한 가지 곡조로
자근자근 이어져도
부르고 듣는 이들
바라는 소망 달라
때로 서러움 맺혀
시름 덮여 오르니
엄마 가슴 미어지고
기뻐 찬미 노래하면
자상한 어머니시여
잔잔한 미소 지으시는가
기도할 길 모르는
가여운 아들딸들
천상묵주 내리어
먼저 기도 보여주시고
방황하는 아이들아
깊은 잠 못 이루셔
베갯잇 적실 적마다
묵주 쥐고 기도하시는구나
아, 엄마 사랑 절절한
동그랗게 피어나는
묵주 장미 꽃송이야
이 노래 몰랐으면
고달픈 지난날들
어찌 참았으려나
묵주기도 구절구절
한숨 담지 못했다면
지친 몸 둘 데 없어
매운 밤바람 이겨 냈을까
묵주 들고 길 걸을 때
어머니 눈물 닦아주고
옷깃 잡아 이끄셨어라
그분 도움 아니면
파도 같은 세월
어디 흘러갔을까
단순한 가락이지만
마음 얹어 부르니
한 도막 두 대목
온갖 은혜 비치고
해종일 그 자리
옹알이하여도
젖어오는 감회
알알이 같지 않으며
하늘 엄마 함께하니
자녀들 지치지 않고
묵주에 진정 담아
주님께 아뢰던가요
자애로우신 하느님
부족한 청원이라도
어머니 공로 보시며
자녀들 소망 들어주셔요
아들딸 근심 염려
사랑의 성모 성심
묵주알 굽이굽이
먼 하늘 메아리치거라
오, 묵주 신비 감아 도는
극진한 장미 내음이여
꿈결 같은 영혼의 노래
맑고 깊은 은총의 샘물이런가
첫댓글 이렇게 귀한 글을 남겨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글을 읽어가며 자연스레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은총의 하루 되시길 빕니다. ^^* 💕
감사합니다 ~^^
날씨가 쌀쌀합니다
감기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찬미예수님!
@서바오로 네~ 바오로 형제님도 새해 주님 은총 듬뿍 받으시고, 복된 한 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