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금자 5시집 『감자꽃』
충남 서산시의 농촌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신금자 시인이 5시집 『감자꽃』을 오늘의문학사에서 ‘오늘의문학 시인선’으로 발간하였습니다. 신금자 시인은 시인이자 화가이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분입니다. 이 시집은 서문, 4부의 작품, 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등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신금자 시인은 이미 시집 네 권을 발간한 바 있습니다. 『하루살이 인생도 괜찮아요』 『초록바람』 『황홀한 고백』 『하늘이 하품하면 땅은 까르르 웃는다』 등을 발간하여 지역의 중견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5시집 『감자꽃』을 발간하여 농촌의 고단한 삶과 보람, 그리고 농촌의 서정을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 서평(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따옴)
#1
<왜 하필 나냐고?/ 너니까 좋은 거야>라는 서정적 주체와 객체의 문답을 통하여 창작한 시 「너니까」를 감상한 바 있습니다. 객체인 ‘너’를 좋아하는 주체 ‘나’는 <음률에 묵은 세월 따라/ 옷고름 매만지며/ 너만 바라보는 바라기>였음을 고백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나’는 <흰머리 펄럭거리는/ 뒷모습>의 ‘너’를 좋아한다고 강조합니다.
8행으로 구성된 시를 신금자 시인의 4시집 『하늘이 하품하면 땅은 까르르 웃는다』에서 감상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유추한 바 있습니다. ‘너’는 1차로 배우자로 보입니다. 2차로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도 보입니다. 3차로 시인·화가·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교유(交遊)하는 동료 예술가로도 보입니다. 이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신금자 시인의 관심과 사랑이 ‘인간의 문제에 관한 관찰이나 견해’를 의미하는 보편적 우주관(宇宙觀)을 초월하고 있음에 놀랍니다.
#2
대농(大農)으로 알려진 시인은 농사일로 평생을 보낸 분입니다. <오십 여 년을/ 농사꾼으로 살았는데/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다>며 <비를 안은 구름처럼/ 피곤이/ 어깨를 누른다>고 농사일의 고단함을 고백한 분입니다. 「지금 이대로」에서 시인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농사일이지만 <하루쯤은 쉬었다> 다시 일하겠다며, 농사에 집중하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농사에 피해를 입힌 고라니까지 이해하는 배려심은 바로 보살행(菩薩行)에 닿아 있습니다.
고라니에 대한 배려는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의 정서는 사단(四端)의 하나입니다. 맹자는 사단을 통해 인간의 선(善), 즉 성선설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네 가지 마음씨입니다.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에서 우러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우러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인데, 신금자 시인의 작품에는 측은지심의 정서가 중심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이런 측은지심은 지인(知人)의 별세를 맞아 강한 애상(哀傷)으로 형상화됩니다.
#3
조문(弔問)하러 가는 시인의 어깨를 바람이 흔듭니다. 이렇게 흔들리면서 시인은 갑작스럽게 <살다 보면 흔드는 게 (어디) 하나둘인가?>라는 삶의 이치를 궁구(窮究)합니다. 빈소를 향하여 가는 길, 낙엽을 밟으며 <지는 해 노을길>을 걷습니다. 이때 시인의 그림자 옆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겹칩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 이 부분, <또 하나의 그림자>의 원관념이 궁금해집니다. 자신처럼 조문하러 온 지인일 수 있고,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면 반갑게 맞는 고인(故人)의 영가(靈駕)일 수도 있으며, 동행한 배우자일 수도 있을 터입니다. 이렇듯이 작품에 다의성을 장치(裝置)하는 것이 신금자 시인의 시 작법 특징인 것 같습니다.
빈소에서는 울음을 참았다가, 빈소를 벗어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오려 합니다. 때마침 궂은비가 내리며 시인의 얼굴을 세차게 때려, 시인의 눈물과 빗물이 섞여 애상적 정서를 극대화합니다. 이는 고려 시대에 정지상 시인이 ‘송인’에서 노래한 바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에서처럼, 이별의 눈물과 그날 내리는 빗물이 합수(合水)한 정서와 결이 같습니다.
#4
신금자 시인의 작품은 일상에서 소재를 활용하기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생시의 고부간에 정을 나누던 모습이 1연에 오롯합니다. 동지팥죽을 맛나게 드시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머니는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서운함을 2연에서 실토합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큼 친정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시로 빚어지게 마련입니다. 시인의 작품 「친정어머니」에서 <어젯밤/ 친정어머니/ 꿈에서 만났다>고 모녀 상봉을 밝힙니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푸짐한 잔칫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 그래서 시인은 다음 날 병원에 가야 하는 조바심을 안정시키려 찾아오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꿈속에서라도 딸을 응원하러 찾아오신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오롯합니다.
#5
시인은 창작의 고뇌가 커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던가 봅니다. 그리하여 새벽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빛 하나’를 마주합니다. 그때 시인의 내면이 반영된 ‘새 한 마리’가 멋진 시어를 하나 물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창밖 감나무 새순 돋을 때/ 저 새순 하나/ 내 속에서 자랐으면 좋겠네>와 같은 간절함을 노래합니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시 한 편 건졌으면 좋겠네>라는 소망을 통하여 좋은 시 창작의 절실한 정서를 발현(發現)합니다.
신금자 시인은 「보름달」에서도 수선화가 달빛을 보고 있다면서, <겨울바람/ 빨랫줄을 흔들며/ 보름달을 그네 태운다>라는 절묘한 시심을 펼칩니다. 이렇듯이 일상에서 아름답고 절묘한 작품을 빚어내는 분이어서, 앞으로 더 걸출한 작품을 창작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