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특히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한 사람을 판단하고 그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경험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다못해 제가 어떤 직책이나 직위에 있을 때와 제가 그 직책과 직위에서 내려왔을 때도 사람들의 시선이 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외적인 조건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종종 무시하는 태도로 저를 대하다가도 제가 목사이기도 하고,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 것을 아는 순간 그 태도가 무척이나 달라지는 경우도 경험하기도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는 지금보다 더 차별적인 신분 사회였기에, 그러한 차별은 매우 일상화되어 있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러한 차별에 대해 강하게 견책(譴責)하고 있습니다(1절).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셨다는 것을 상기(想起)시키면서(8절), 이웃을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9절).
그 당시에도 회당(會堂, Synagogue)에 모일 때, 돈 많은 부자가 잘 차려입고 들어오면 좋은 자리로 안내하고, 가난하고 남루한 복장으로 들어오는 자는 무시하듯 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합니다(2절~6절).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셨음을 강조합니다(5절).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의해 상속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마치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것처럼 대한다면 나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4절).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며 심지어 억압하기도 하면서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법정으로 끌고 가 무고(誣告)하게 불이익을 받게 하기도 하는 현실을 한탄합니다(6절).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의 부조리한 모습을 한탄한 것입니다. 사회적 현실이 그러하다 하여도 교회공동체 안에서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 하는데,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으니 깊은 탄식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말로는 모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자기에게 이득이 될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여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는 율법에 나오는 내용 중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을 모두 어긴 자가 되어 죄인이 되는 것처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도 죄를 짓는 것이기에 율법에 따라 범법자(犯法者)로 정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9절~11절). 율법의 다른 내용을 지키더라도 한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율법을 어긴 자가 됩니다. 그러니 차별하는 태도를 가진 것도 율법을 어긴 죄인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차별하는 것은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꾸짖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주는 율법에 따라 심판받을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12절).
12절에 나오는 자유의 율법(The law of freedom)은 더 이상 구약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더욱 수준 높은 삶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율법 정도의 낮은 수준의 기준이 아니라, 율법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자이며, 이러한 삶은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수준 높은 기준의 잣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행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서는 긍휼의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라고 말씀합니다(13절). 긍휼을 베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엄격하게만 대하면 하나님께서도 긍휼이 없는 심판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긍휼을 베풀라고 해서 죄를 모르는 체하거나, 죄를 용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를 지적하여 그 죄를 단절하되 용서와 회복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보다 높은 수준의 잣대를 적용하여 살아가도록 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긍휼의 태도를 보이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 부유함과 가난함 등에 의해 차별하는 태도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선 그대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대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그리고 부족한 자들은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