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봄부터 14년 여름까지 잠깐 한인교회를 담임했었다. 그 때 타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직장을 옮겨 나보다 한달정도 먼저 이사온 백승범집사 부부를 헤어진지 9년반만에 만날게 되었다.
양저우에서 근무하던 직장을 사퇴하고 다리엔(대련)에 있는 직장으로 옮기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결혼 후 10여년이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애를 태우던 부부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대련으로 이사 후 얼마 안돼 인공수정이 성공을 했고,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얻었다.
고향이 청주인데, 출석하던 모교회가 기장측 교회라고 하였다. 기장측 교회 출신이면 아무래도 열정적인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이 보통의 모습인데, 백집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교인이라야 겨우 20여명 출석하는 초라한 한인교회에서 찬양인도 부터 시작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열정적인 일군이었다. 그러나 근무하던 회사가 너무 지나칠 만큼 혹사를 시키다보니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게 됐고, 새로 구하게 된 직장이 2천여킬로 떨어진 장소이다보니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백집사 가정이 이사한 후 다른 분들도 한집 두집 떠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교회는 폐쇄르루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역시 낯선 곳에서 더이상 지내야할 명분도 없어졌기에 본래의 센터인 칭다오로 복귀하게 되었다.
매사에 헌신적인 일군은 교회의 보배이다. 새로 출석하게된 교회에서 안수집사를 거쳐 금년 4월에는 장로로 임직을 받았다고 하였다. 마침 서울에 사시는 숙부댁을 방문했다가 내려 가면서 안산에 들러 우리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본인으로서는 자신들의 자녀출산을 위해 많이 기도해주고 염려해준 분들에게 자식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든 꾸준한 믿음 생활과 날로 악화되는 재중 한인업체들의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그 자체로도 보기에 좋고 감사한 일이다. 같이 신앙생활을 한다면이야 더할나위 없겠지만 하나님이 연결해주는 인연이 짧다보니 우리의 만남은 2년반으로 끝나야 함이 아쉽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되라"는 당부를 하며 1시간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