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걱정과 슬픔, 절망과 사랑 사이
픽사베이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 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에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시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들여다보게 하지만 걱정과 슬픔, 그리고 절망과 사랑 사이를 들여다보게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모든 아픔이 그저 절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도무지 일어서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다행히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고 기억이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부정을 더 잘 인식하도록 되어있어 동일한 사건의 부정적인 면을 먼저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해도 그래도 그 어딘가에 여전히 긍정이 남아있습니다. 그 긍정은 사랑받았던 기억이고 일상에서 주고받는 애정의 흔적입니다.
이미 잊었지만 저 아래 무의식에 사린, 나라는 존재만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졌던, 그때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이 시에서 말하는 '그래도'일 겁니다. 길거리로 쫓겨났지만 '그래도', 중환자실에 누웠지만 '그래도', 서럽지만 '그래도', 아프지만 '그래도'.
'그래도'는 사람과 사람의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는 섬입니다. 당신이라는 세계와 나라는 세계 사이에 놓인 섬, 부정의 바다를 건너게 해주는 섬입니다.
아마도 우리 세계에는 '그래도'가 무수히 많을 겁니다.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에 '그래도'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볼 수는 없지만, 인류의 숫자보다 더 많지 않을까요.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