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식당
선 준 규
마지막 날 찾은 제주 동문시장
화려하고 고급진 식당을 찾는데
여행 내내 술과 기름진 음식에
느끼한 속을 달래고 싶어 일행을 이탈했다
칼칼한 국수 한 그릇으로
속 달래려 찾은 민자식당
식당 벽에 50년 전통 민자식당 문구가 들어오고
작게 쓰여진 주인 할머니 카드기 사용 못 한다는 문구까지
국수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제주 토박이들이 찾는 선술집이다
내장과 순대 안주 삼아
자리를 잡고 앉은 한 무리의 제주 방언들
말을 거는데 도통 알아먹을 수 없다
할매 혼자 분주히 움직이는 민자식당
현구는 눈치껏 대화를 하고 바쁜 할매 대신 서빙을
하는데 여행 내내 어긋어긋한 현구가 맞나 싶다.
속을 달래려 찾은 곳에서 또다시 술잔이 기울어지고
서로를 몰랐던 속내를 내어 놓는데
할매 혼자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 좋다며
낮은 곳으로 눈길이 간다는 현구
형구형님은 여행 중간 중간 들었던
소박한 연애사에 종지부를 찍는데
지금의 형수는 열심히 사는 모습에 반해
결혼을 했다는 지점에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열아홉 살 때부터 가난이 서러워
죽어라 돈만 좆아 왔고 그래서 지금은
형수가 용돈까지 챙겨주며 여행에 등 떠밀어 준다는
말이 잔잔하다
국수에 고춧가루 살짝 뿌려 나온 고기국수는
낮술과 함께 술술 들어가고
뻣뻣한 50대 중반 사내 셋은
뜬금없이 민자식당 분위기에 취해
서로를 들어 내놓고 멋쩍어 술잔을 부딪친다.
느끼한 속을 달래려 와서 형구와 현구의
맑은 속을 들여다보니
내 속까지 맑아졌다.
민자 할매가 내어준 고기국수
느끼한 속을 풀어 주는
마법에 걸려 술이 술술 들어간다.
첫댓글 인생도 술술 풀어주는 민자식당입니다.ㅎ
동문시장 옆에 옛 제주은행이 있었지요.
출장 갔을 때 동문시장 난전에서 자리돔 세꼬시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속도 풀고 삶도 잘 풀리시기 바랍니다~^^
할머니 이름이 '민자'나 보네요.
제주에 여동생이 사는데 조카들 말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