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인근 국가들과의 사이에서는 역사 인식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 근대사가 전문인 메이지 대학 문학부 교수 야마다 아키라 씨에게 들었습니다. 【질문자·스도 타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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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정체가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야마다 씨 일본에 의한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수상 담화(1995년)까지는 나름대로 진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이후는 그다지 큰 전개가 없습니다.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의 역사 인식을 대외적으로도 강요하는 상황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독자적인 역사 인식은 있어야 하지만, 역사 인식은 이웃 나라와는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상대방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어디가 모순되는지, 충돌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역사인식을 검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정한 역사 인식에 도달해서 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지는 시대에 따라서도 변화해 갑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면서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현재의 문제
―― 현재의 문제로 계속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 전쟁과 식민지 지배가 이루어진 당시 정부의 입장도 있지만,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쟁, 식민지 지배를 지금 우리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상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맞대야 합니다.
◇ '아시아가 말하는 것이니까'
―― 이웃나라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 중국이나 한국에 대해서, 메이지 이래의 탈아입구와 같은 생각이 아직 있습니다. 일본은 지난 150년 동안 아시아의 이웃 나라를 훨씬 아래의 존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대등한 존재로서 역사인식을 서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격하의 것이 트집을 잡아온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추월당하게 되면 왜곡된 내셔널리즘이 스며듭니다. 아시아에서 말을 듣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에 대해 대등한 입장에서 재검토해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쪽의 말은 과장이다'가 되어 버립니다.
―― 중국 한국 측도 역사 인식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역사 인식 문제에는 아무래도 정치가 파고듭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시기와 상황에 따라 대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정치적인 관계만으로 보면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 가해와 피해는 표리일체
―― 그런 의미에서, 구 일본 육군의 노보리토 연구소의 문제에도 휘말렸습니다.
◆ 노보리토 연구소는 묻혀 있던 역사입니다. 전후 40년 이상, 당사자는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9년에 고등학생이 이야기를 들으려 할 때 관계자의 '말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바뀝니다. 고등학생이 너무 전쟁에 대해 모르는 것에 놀라 젊은 너희들에게는 이야기하자, 라고 된 것입니다.
쇼와 천황이 사망한 직후였던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역사에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당사자의 입에서 인체 실험을 포함한 가해의 역사가 이야기 되었습니다. 자신들밖에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다물지 않고 다음 세대에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바뀐 것은 큰 일입니다.
―― 가해의 역사도 중요합니다.
◆ 일본에서는 전쟁 체험을 말할 때에도, 자신들만의 피해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가해의 역사는 피해의 역사보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나 부부 사이에서는 좀처럼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실체에 다가서자면 피해와 가해의 문제는 표리일체입니다. 전쟁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피해가 있으면 반드시 가해가 있습니다.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치프리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