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세탁기 외 1편
남상진
아밋 위에 랑가이, 액차이 다음에 칭조링
세탁기 돌아간다
세 살배기 딸내미 룸비니에 남겨놓고 고향을 떠나온 지 삼 년째
한 해 한 해 갈수록 그리움은 짙어지고 분유에 기저귀 값 송금하느라
그 흔한 치맥 피자 자주 먹지 못해도
능실능실 입가에 미소를 달고 사는 성격 좋은 반다리,
이쁜 아기 사진에 마냥 부러운 마흔네 살 노총각 정식이
네팔 빤스 몽골 빤스 꼬레아 양말 뒤엉켜
세탁기 돌아간다
한 번에 여러 나라 빨래를 돌리느라 힘에 부친 세탁기에
몽골 대평원이 돌아가고 히말라야가 돌아가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파도 소리 그리운 스리랑카 앞바다를
기숙사 옥상 한나절 햇볕에 널어 말리면
만국기 나부끼듯 바람 따라 휘날리는 빨래들
후드득
비라도 흩뿌리면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꼬레안 마인드로 비 설거지를 하는
고향과 성격은 제각각 달라도 마음은 하나같이 따뜻한 다국적 직원들,
오늘은
삼겹살에 이슬이 한 잔 부어놓고
회식 한 판 해야 되겠다
팽이의 방식
남상진
침묵으로 맹렬한 생이었다
직립하는 것으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종족
중심이 흩어질수록
기립에 온전히 몰입하기는 힘든 법
살아가는 것은
정점을 향해
발끝으로 서서
반듯하게 자신을 세우는 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응축이
묵언의 정진으로 깊어진다
무학요양원 99호
오래 돌던 팽이 하나가 요동친다
한평생
가쁜 숨을 속으로 삼키며 돌아가던 팽이가
적막을 덮고 고요해진 저녁
이제
그녀
숨죽여
돌지 않아도 되겠다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남상진 약력]
- 경남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 2014 애지등단
- 시집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외
- 경남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대실로 205
- depa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