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는 14세기 영국의 작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대표작으로, 여러 사람들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있는 성 토마스 베켓의 유해를 참배하기 위해 캔터베리로 여행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이렇게 대략 24명의 여행자들이 총 24개 이야기를 말하면서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들 여행자들은 사회 계급, 직업, 연령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초서는 서스펜스를 사용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아내며, 이야기 전개에 실험적인 방식을 사용합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가 다른 작품이면서도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어져 있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당시 사회 풍속이나 이야기 구전의 중요성 등을 엿볼 수 있으며, 14세기 영어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언어는 퇴행하기도 한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여자의 성기를 뜻하는 중세영어 ‘queynte’가 거리낌없이 등장하는 걸 보면 당시의 성 관념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음을 알 수 있다.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의 지은이 필립 구든은
“방귀(fart)와 소변(piss)처럼 표준 영어와 금기어 사이의 중간 지대에 있는 단어에 대해 현대인은 선조에 비해 더 내숭을 떠는 경향이 있다”
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재가’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의 임명을 ‘재가’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자기가 ‘내정’해 놓고 자기가 ‘재가’하는 꼴이다.
청와대 발표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쓴 탓이다. 재가는
‘왕이 직접 어새를 찍고 결재하여 허가하던 일’
을 뜻한다.
군사독재가 종식된 뒤로는 거의 쓰지 않던 말이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함께 언어도 퇴행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사라졌던 ‘각하’라는 호칭을 연거푸 세 번이나 외쳤던 사람의 총리 임명을 ‘재가’한 걸 보면, 박 대통령의 생각을 짐작할 만하다.
레이코프 식으로 말하면, 왕조시대 혹은 독재시대에 대한 ‘과다인지’의 사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