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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의한 시민 감시·통제 예견…‘빅 브러더’ 결국 현실로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조지 오웰의 ‘1984’
전후 사상 70년을 돌아보는 이 기획에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1984>(1949)를 주목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1948년에 완성되고 1949년에 발표된 <1984>는 전체주의라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보여준 대표적인 문학작품이다. 전체주의란 개인의 모든 활동이 전체로서의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념 및 체제를 말한다. 전체주의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말살할 수 있는지를 묘사해 이 체제의 비민주성을 오웰은 폭로한다.
둘째, <1984>에 담긴 미래 전망이다. 오웰이 비판한 것은 파시즘,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체제였다. 하지만 오웰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어떤 사회에든 존재할 수 있는 전체주의 경향을 경고하기 위해 <1984>를 썼다. 오웰이 예견한 권력에 의한 시민 감시와 통제는 지난 70년 동안 현대사회의 또 다른 그늘을 이뤄왔다.
셋째, <1984>가 미친 광범위한 영향이다. <1984>는 2009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주요 언론사와 대형 도서관의 추천도서 목록 및 관련 기록을 토대로 뽑은 ‘역대 세계 최고의 100대 명저’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1위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3위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였다). 또 2007년 일간지 가디언에 의해 ‘20세기를 가장 잘 정의한 책’으로 선정됐다. <1984>는 문학을 넘어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온 현대의 살아 있는 고전이라 할 만하다.
■‘1984’와 디스토피아 세계
<1984>의 줄거리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전체주의 사회인 오세아니아에서 권력에 저항하다 좌절한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오세아니아는 텔레스크린·사상경찰·마이크로폰 등을 이용해 개인의 생활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다. 이 감시와 통제의 주체는 당이고, 이를 위해 당은 허구적 존재인 ‘빅 브러더’를 내세운다. 윈스턴은 전체주의에 맞설 혁명을 노동자들에게 기대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당의 ‘이중 사고’(날조한 과거 기록을 믿게 하는 심리 작용)에 지배돼 혁명의 가능성을 상실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1984>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당의 슬로건이다. 이 말은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당은 사유의 출발을 이루는 기억을 통제하고 조작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해 항구적인 감시 사회인 전체주의 체제를 완성한다.
<1984>가 일차적으로 겨냥한 비판 대상은 히틀러의 나치즘과 스탈린의 공산주의였다. 그래서 이 책은 오웰의 또 다른 대표작인 <동물농장>(1945)과 함께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비판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웰이 염두에 둔 것은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전체주의 국가들이었다. 독재자인 빅 브러더는 공포를 통한 순응이라는 목적, 다시 말해 권력 행사라는 자신의 목표에 헌신한다. 사회학의 관점에서 빅 브러더는 권력의 지배 욕망 그 자체다. 오웰은 <1984>를 통해 인간의 자율성을 말살하는 이러한 권력의 본질을 치열하게 고발하고 또 비판한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은 자본과 함께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는 힘이다. 타자의 의지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권력 본래의 속성이다. 이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앞으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오웰은 선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1984>는 과학기술의 우울한 미래를 그린 미래 소설인 동시에 정치와 사회의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한 미래학 저작으로 볼 수 있다.
■‘1984’와 21세기 현재
전체주의와 감시사회를 본격적으로 비판한 책이 <1984>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1951)이 전체주의의 출발로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를 주목했다면, 사회이론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1975)은 권력이 지식을 동원해 구축한 감시체제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문학 안에서 <1984>에 앞서 디스토피아로서의 미래를 다룬 소설로는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192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가 있었다. <우리들> <멋진 신세계> <1984>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그 어떤 책들보다 <1984>가 여전히 많이 읽히는 까닭은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구체적인 지배 방식과 섬뜩하리마치 현실감 있는 미래 사회 풍경에 대한 묘사에 있다.
<1984>가 가장 크게 주목 받았던 때는 소설의 제목이 됐던 1984년 전후였다. 1983년 문학평론가 어빙 하우는 <1984>를 새롭게 조명하고 평가한 <전체주의 연구>를 편집해 출간했고, 1984년 1월1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텔레비전 쇼를 선보였다. 국내에서도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레이몬드 윌리엄스, 에리히 프롬 등의 글을 편집한 <오웰과 1984년>을 출간했다.
소설 발표 35년 후인 1984년 당대의 시점에서 <1984>가 그린 암울한 미래 전망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처럼 보였다. 정치적 전체주의였던 스탈린 체제는 무너졌고, 또 다른 전체주의였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구조적인 체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소련을 위시한 국가사회주의의 전체주의 체제는 5년 후인 1989년에 몰락했다.
주목할 것은 오웰의 전망이 1990년대 이후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새롭게 구체화돼 왔다는 점이다. 신용카드, e메일, 휴대전화, 폐쇄회로(CC)TV,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보급과 확산은 공적 생활은 물론 생활세계를 재구성해 왔다. 시민 다수의 사생활은 이제 국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추적하고 감시하며 통제할 수 있다.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자유의 확장’과 함께 그 기술적 전체주의가 낳아온 ‘자유의 구속’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속에 우리 인류는 놓여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점에서 <1984>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어판 저작은
<1984>는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문예출판사, 펭귄클래식코리아 등 여러 출판사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됐고, 소설에 나오는 ‘2+2=5’라는 진실을 왜곡하는 명제는 라디오헤드에 의해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오웰 사후…다양한 분석들 - 예술가 백남준 “TV는 소통매체” 낙관 ‘조건 없는 권력 비판’에 주목한 평전도
1984년 1월1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미국 뉴욕 WNET 스튜디오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해 진행한 텔레비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해 지구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공연을 주도한 백남준은 오웰의 비관적 전망에 이의를 제기했다. 텔레비전이 빅 브러더의 대중 통제와 조작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오웰의 예견이 절반만 맞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소통을 위한 매체로서 텔레비전의 새로운 역할을 부각시켰다.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텔레비전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평가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다. 텔레비전은 소통의 자유보다 대중 통제에 여전히 더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웰의 삶과 문학은 인문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자들에게도 관심 대상이었다. 법학자 박홍규 영남대 교수와 정치학자 고세훈 고려대 교수는 오웰 평전까지 출간했다.
박홍규의 <조지 오웰>(2003)은 오웰의 기본 사상이 모든 권력에 저항하는 ‘재야 정신’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오웰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전체주의로 파악해 비판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로 볼 수 있다는 게 박홍규의 주장이다.
고세훈의 <조지 오웰>(2012)은 지식사회 ‘내부고발자’로서의 오웰의 삶과 사상을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오웰의 글쓰기는 권력의 속성에 대한 폭로이자 권력자에 대한 저항을 함축한다. 오웰의 삶과 글을 성찰적으로 돌아봄으로써 스스로 권력자인 동시에 권력을 탐하고 추종하는 지식인들에게 충고를 안겨주려는 게 고세훈의 의도다.
박홍규와 고세훈은 소설가이자 지식인이었던 오웰의 정체성에 주목한다. 두 사람의 오웰 평전은 조건과 전제 없는 권력 비판이 오웰의 삶과 문학을 이끈 중심 아이디어였음을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