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외진 길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음은 행운입니다
이 낯선 길을
홀로 간다면
지친 걸음으로 걸어간다면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방향을 가늠할 수 없도록
눈보라 치는 밤길을 어떻게 걸어가며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몰아치는
폭풍우를 어떻게 뚫고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대를 만난 후로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마음도 안정되어
이 거친 세상을 알차게 살아갑니다
어떤 어둠과 공포에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에는 잔잔한 평화가 흘러내려 행복합니다
삶의 거친 길에서
쫓기고 쫓기다 사랑을 말하려 할 때
그대는
벌써 내 마음을 읽고 웃고 있습니다
- 너를 만나면 더 멋지게 살고 싶어진다 -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저편언덕. 류시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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