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인간, 오후의 죽음
오래전인, 1952년에 제작되어 서부영화의 고전이 된 ‘하이눈’(High Noon)에는 정의로운 보안관 이야기가 나온다.
그 보안관이 막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자신이 5년 전에 체포하여 사형판결을 받게 했던 살인범이 사면되어 세 명의 부하와 함께 자신에게 복수를 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살인범이 탄 열차가 역에 도착하는 시각이 바로 정오이다. 그 젊은 보안관은 신혼여행도 포기한 채 그 범인과 싸우려고 보안관 배지를 다시 달고 동조자를 모집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외면하였다. 결국 혼자서 악당들을 상대하여 싸움을 끝내자, 주민들은 그제야 거리로 몰려나온다. 지치고 환멸을 느낀 보안관은 배지를 땅바닥에 던지고 아내와 같이 마을을 떠난다.
‘하이눈’이란 태양이 높이 솟은 정오를 의미한다. 정오엔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빛으로 그림자가 없어진다. 곧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적나라한 인간 자체의 참모습만 남게 된다. 그 보안관은 모른 척하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나, 언젠가는 네 명의 악당들이 복수하겠다고 쫓아올 것이므로,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한 싸워야 한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비겁하게 위험을 피하지 않고 운명적인 결투를 정오에 치르게 된 것이다. 죽음에 직면한 순간에도 이를 대적하는 진실한 인간의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안관의 진실한 모습의 원형으로, 헤밍웨이는 1932년 출간된 ‘《정오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에서 스페인의 투우사들을 소개하였다. 헤밍웨이는 투우를 단순한 경기 이상의 것으로 여겼다. 그는 투우사가 죽음과 직면하여 행하는 위험스러운 의식의 기술적인 면을, “인간과 동물, 붉은 망토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동적이고 정신적 강렬함과 순수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눈에는 투우는 예술이고 정교한 안무로 꾸며진 발레이다. 또한 투우는, 예술가가 죽음의 위험 속에서 얼마나 연기를 화려하게 할 수 있는 여부로 명예가 결정되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예술가가 직접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진정한 예술이라고 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비겁함과 담대함의 성격, 그리고 경기와 비극에 관한 깊은 고찰을 하고 있으며, 인생과 문학에 대한 날카로운 논평을 통해 근원적인 생각을 던져주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투우와 전쟁의 유사점을 끌어내고, 절박한 상황에 빠진 투우사가 규칙에 따라 인간으로서 위엄을 지킴으로 죽음을 초월하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이제 전쟁이 끝나 격렬한 죽음은 볼 수 없기에, 이제 삶과 죽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현장은 투우장이다. 나는 스페인에 가기를 매우 원했고 그곳에서 투우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글쓰기를 배우려는 노력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했는데, 그것은 모두에게도 가장 단순한 것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격렬한 죽음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어떤 나라가 투우를 사랑한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우란 소의 죽음을 의미한다. 만일 그 소가 경기장에서 주어진 시간에 죽지 않는다면 밖에서 죽게 된다. 간혹 그 죽음은 투우사에게도 올 수 있다. 노련한 투우사는 매 경기 때 죽음의 순간까지 간다. 이는 훌륭한 투우사란 죽임 자체를 반드시 즐겨야 하고 관중들은 그 죽음에서 쾌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투우 애호가들에 있어서 ‘진정한 즐거움’은 싸움소의 용맹성과 고귀함 그리고 투우사의 기술과 용맹성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우사는 죽이는 순간에 정신적 쾌감을 가져야 하며, 깔끔하게 죽이는 것은 곧 미학적인 쾌락과 긍지를 사람들에게 주게 되며, 이는 어떤 면에서 인류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그 책에서 쓰고 있다.
투우사가 마지막 순간 단검으로 소의 심장을 찌르는 행위는 마치 남녀 사랑의 절정을 이루는 것에 비유하였다. 죽임을 긍지로 행하는 것은 기독교인에게는 죄이지만, 이교도에게는 덕목이다. 그러나 투우는 긍지이며 죽임을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위대한 투우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헤밍웨이가 투우 애호가가 된 것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밝힌 바와 같이 1920년대 팜파로나 축제를 관람한 이후이다.
그는 명예의 경기장에서 1,500마리의 소가 죽는 것을 보았을 뿐 아니라, 스페인의 투우 기술에 관한 책자를 2,077권이나 읽은 투우 전문가였다. 그는 《정오의 죽음》에서 거의 종교의식과 관행처럼 된 투우의 형이상학적인 면을 고찰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을 삶의 의미와 본질을 추구하는 작가 정신에 비유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도덕에 관해 내가 단지 아는 것은, 도덕이란 행하고 난 후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부도덕한 것이다”라고 하여 그의 행동주의 철학을 대변하는 명언을 그 책에 남겼다.
투우 예찬론자인 헤밍웨이가 스페인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집필한 곳은 투우의 고장인 안달루시아지역의 론다(Ronda)였다. 론다에는 1785년에 유명한 건축가인 호세 마르틴 알데후에라(Jose Martin Aldehuela)가 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투우경기장(Plaza de Toros)을 세웠다. 이 경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로메로 가문이 투우를 대표하고 있다. 1698년에 태어난 프란시스코 로메로는 투우의 현대식 규칙을 세웠으며 붉은 케이프(cape) 혹은 뮤레따(muleta)와 단검을 사용하게 하였다. 그의 아들도 투우사로 양성하였고, 손자인 페드로(Pedro 1754-1839)는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투우사의 하나였다. 페드로는 특히 투우를 단순히 어릿광대 남자의 소 살육이라는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나, 예술과 기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또한 그는 ‘론다 투우학교’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투우의 고전적인 면과 엄격한 규칙 준수를 유지하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투우를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투우 경기에 위기가 왔다. 우선 투우 경기 횟수가 급감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축구와 지역갈등 그리고 동물보호단체들의 로비에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현재 스페인의 젊은 세대는 투우보다 축구에 열광하고 있고, 카나리아제도, 바스크 자치주 일부 도시와 카탈루냐주에서는 투우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이들 지역이 중앙정부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정치적인 이유이며, 안달루시아에서 주로 행해지는 투우가 그들에게 반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투우를 야만적인 스포츠로 선전해 온 국제 동물권익보호단체들의 압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은퇴 투우사는 “투우를 본 적도, 심지어 스페인 땅에 와본 적도 없는 국제단체들이 무작정 투우를 욕한다”라고 하며 “헤밍웨이나 고야 등 예술가들은 감정이 없는 냉혈한들이라서 투우를 찬양했나?”하고 되물었다.
그에 따르면 투우를 위해 사육된 소는 5, 6년 동안 최고의 시설을 갖춘 목장에서 최고의 사료만 먹고 자라며, 최후에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단칼에 심장이 찔리는 매우 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당신들이 먹는 식용 소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한두 살 사이에 처참하게 도축 당하는 것”이라고 하며, 닭, 돼지 등 다른 모든 고기도 마찬가지라며, “당신들이 고기를 먹는 한, 투우의 잔혹성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세상일이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동물애호가들과 환경보호단체들의 주장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무엇이 동물들의 권익을 실제로 보호하는 것인지, 자연보호란 있는 상태 그대로만 두어야 하는 것인지. 과연 우리에게 정의란 있는 것인지? 그러나 ‘정오의 인간’에게는 그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나므로 불의와 정의가 바로 구별될 수가 있다.
한국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50년대 초에 제작된 ‘하이눈’은 오늘날 우리의 안보 현실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악당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도 다수의 주민이 보안관에게 마을을 떠나 달라고 요구한다. 보안관이 악당과 싸우면 마을에 피해가 나고, 대외적으로 마을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안관을 도우려는 일부 주민들도 이들의 설득으로 싸움을 포기한다. 절친한 친구들도 그를 외면한다. 이는 마치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된 위기의 상황에서도 안보불감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정부와 국민과 다를 바가 없다. 사드 배치에도 대외적 이미지 논란만 키우고 있는 한심한 모습과 같다.
누가 우리의 보안관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그러한 기대 자체가 부도덕한 것이다. 국민 전체가 이 나라를 지킬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환상적인 평화는 굴종이 되고 노예가 될 뿐이다. 그리고 《정오의 죽음》에는 죽음 앞에 대면한 진실의 순간이 곧 자신에 대한 정의가 될 수 있다. 비겁함과 속임수로 죽음을 모면하려는 연기는 불의한 인간의 추악한 모습일 것이다.
스페인 사라고사 출신의 수도사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0)은 《세상을 보는 지혜》에서 “비열한 승리는 영예로운 일이 아니라 패배이다. 정직한 사람은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려 깊은 사람들에게선 비열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아량, 관대, 충정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영예로운 일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언젠가는 ‘정오의 태양’ 아래 설 때가 있게 될 것이다. 그때는 또한 심판자 앞에 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엔 숨을 그림자도 없다. 어떻게 하랴. 이런 일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 가끔은 죽음과 함께 떠나는 여행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연습이 필요한 때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란 수도사는 이런 때를 위해 경고의 말을 남겼다. “그저 오래 살기만을 바라면서 선한 생활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거나, 현재의 삶만을 생각하고 장차 다가올 영원한 삶을 위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이겠습니까? 또한, 잠깐 있다가 없어져 버릴 것을 사랑하면서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