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언어유희의 일환으로 "단적비" 라는 지역으로 어학 "연수" 간 이야기라고 했으니, 실제로 그런식으로 패러디해도 재미있을 듯하단 생각이 불현듯..하긴 처음엔 나도 무슨 뜻인지, 듣도보도 못한 5자성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야 기사를 보고 5명 주인공들의 이름이란 것을 알았으니.
강제규는 세계시장진출에 굉장히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굳이 은행나무침대2 라는 부제를 걸어가면서까지 윤회, 인연, 전생에 매달린다는 것은 동양적인 소재와 발상에 영화를 맡기는 거라고 여겨진다. 할리우드영화나 유럽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영화이다. 게다가 그런 영화가 엄청난 물량공세로 시각적인 효과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면 더더욱 드문 일이다.
이 영화는 5명 주인공의 영화도 아니고 감독의 영화도 아니고 바로 제작자 강제규의 영화다. 제작자가 전면에 나선 영화치고 좋은 영화가 별로 없긴 하지만, 뭐 이 영화는 그렇게 쓸모없진 않다. 단 몇몇 장면에서 정말 말 그대로 enjoy해야지, 까대고 들었다간 끝도 없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말야..-_- 하여간, 개인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단적비연수는 감독이 누구인지조차 잘 모른다. 혹자는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강제규가 감독인 줄 알았으니, 그것은 그 혹자가 무식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강제규의 입김이 세고 언론에서도 강제규를 부각시킨다는 소리밖에 아니다. 그만큼 강제규는 우리 영화계에서 이제 거물급인사가 되어버린거다.
강우석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강제규에 비하면 동정과 연민이 가는 감독이다. 둘은 스타일이 비슷하다. 일단 영화는 재미있어야한다 라는 기본명제에 상당히 충실한 신자들이다. 시대를 잘 타고났는지 그렇지 못한지의 차이랄까. 강우석에게 있어서 블록버스터 성향의 영화는 불가능이였다. 그 시절엔 말이지. 그러니깐 결국 투캅스같은 코메디영화로 갈 수 밖에. 물론 감독활동도 하고는 있지만 현재는 배급에 오히려 신경을 더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시네마서비스라는 회사 있잖아..그만큼 영화계를 지배하는 원리 중 하나인 자본주의원리의 중추 즉 배급을 뚫고 있다는 얘기다. 강제규의 가장 큰 특징은 일단 그럴듯하게 만든다..라는 거다. 다시말해 포장을 잘하고 할리우드냄새가 물씬하게 깔끔하다는 거다. 그 역시 감독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주)강제규필름 을 설립하고 가수 겸 건축가인 양진석과 함께 강남역에 ZOO002라는 극장까지 만들어가면서 영화=엔터테인먼트 를 구현해가고 있다. 쉬리 자체는 대단한 영화가 절대 아니다. 그 별것아닌 시나리오와 치졸하고 유치한 이념대립의 대사..그러나 언제나 처음이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액션물을 그렇게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그로 인해 관객이 미친듯이 몰려들었다는 건 우리영화에서 처음이니까 말이다. 결국 시대를 잘 타고 난거라고 여겨질 뿐이다. 강우석이나 강제규나 둘 다 머리는 정말 좋고 흐름은 잘 읽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뭐..부러울 따름이다 ^^;
하여간 이번 단적비연수도 그럴듯하다는 데 있어선 별 이견이 없어보인다. 단, 그럴듯하게 보이다 보니 화면이 좁아졌다. 영화 시대적배경이 모호하다 보니 그럴듯한 공간적 배경잡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쓸만한 장소를 헌팅해 봐야 딱 그 지역을 활용할 뿐 시야가 탁 트이는 화면은 거의 없다. 전반적으로 답답하다는 단점이 남는다. 그러나 세트라든지 의상, 소품 등은 상당히 돈도 많이 쓰고 공을 많이 들인 영화구나 하는 것이 절로 느껴진다. 공을 많이 들인 만큼 명작 소리 들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는 못할 것이니 약간 불쌍하기도 하다..
"액션"으로 중무장한 "멜로드라마"이다. 볼거리로서 칼부림과 전투장면을 제공하지만, 후반 30여분을 제외하면 그다지 긴박감있지는 못하다. 결국 이 영화를 관통하는 건 4명의 엇갈린 사랑이야기인데, 그 과정에서 드라마가 너무나도 빈약하다. 우리가 멜로드라마라든지 로맨틱코미디를 볼 때는 이미 결과를 다 알고도 보는거잖아, 그러나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느냐에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 가 달린건데, 단적비연수는 그 과정이 없다. 뼈만 앙상히 살아남아 최진실이 징징 짜고 김석훈이 울부짖고 설경구가 표독스런 눈을 만들고 김윤진이 처연하게 머리를 잘라도 그게 전혀 이해가 안 간다. 필연성이 절대로 부족하단 말이다. 완성도면에서 미흡하단 평가가 여기서 나오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에 대해선 별로 할말없고(아무도 잘 어울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천무의 김희선만큼 shit도 아니고..) 이미숙은 누구 말마따나 정말 대박이다. 이미숙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나마 쪼오~~금 가지고 있는 비장미(?)와 무게감이 없어질 거다. 두아이의 어머니인 아줌마배우의 저력이다. 솔직히 이정재와 주체할수 없는 사랑을 나누던 "정사"보다 훨씬 더 괜찮다. 잘 어울린다.
잘 어울리건 잘 안 어울리건 영화를 위해 영화음악을 모조리 창작곡으로 썼다는 건 그만큼 공을 들이고 욕심을 낸 영화라는 건데, 뭐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단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는 게 아쉬울 뿐. 가끔은 음악에 대사가 눌려서 배우가 뭐라고 쭝얼거리는지 잘 안 들릴때도 있었다. 내 귀가 안 좋은 건지..극장 음향시설이 안 좋은건지 몰라도 하여간 그렇드라..
하여간 마지막30여분은 꽤 괜찮다. 과연 최진실이 어떻게 될 것인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칼부림도 괜찮다. 별로 반전이라 불릴만한 건 없지만, 정통드라마인 만큼 오히려 없는 게 제격이다. 제발 울어달라고 관객들에게 빌지 않는 것도 좋았고..
돈을 많이 들인 것치고는 화면이 작다는 것, 그리고 특별히 흠이 많고 못만든게 절대 아닌데, 그렇다고 굉장히 매력있지도 못하다는 것, 볼거리는 그럭저럭 있는데 그 액션이 서극이나 오우삼같은 특색있는 것도 아니고 볼거리를 받쳐주기엔 드라마가 너무 약하다는 것..장단점을 너무나도 고루 갖춰서 뭐라 말하기가 애매해질 정도다.
광고문구에 너무나도 잘 집약되있는 듯하다. "강제규사단의 2000년 첫 프로젝트" 였던가..정확하게는 기억이 잘..근데 뭐 대강 그랬던 거 같다. 그 문구가 많은 걸 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