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기행
초겨울 날씨에
덕수궁(德壽宮) 탐방 =
대한문, 곱게 물든 다양한 은행나무, 단풍과 풍경, 중화전, 중화문, 광명문,
외국인들의 기념사진 촬영 장면, 수문장의 활동모습,
최정화 장미빛 인생, 등 사진 이야기/
2024년 11월 23일.
덕수궁 = 매주 월요일 휴관(休官)
덕수궁(德壽宮)
덕수궁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 돌아온 후
월산대원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거처 "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처음 궁궐로 사용 되였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운궁에 다시 왕이 머문 것은 조선 26대 왕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잠시 머물다가 경운궁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덕수궁에 여러 전각을 세우고
영역을 확장하였다.당시 궁궐은 현재 규모으 3배 가까이 되었다.
1907년 고종이 일제 강압에 의하여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불리었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고종 승하 이후 덕수궁 권역이
빠르게 해체 및 축소되었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석조전은 1897년 대한 제국 선포 후 건립을 계획하여 1900년 착공하고, 1910년에
준공하였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 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과 저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이다. 석조전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면서 훼손되었지만 2014년에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광명문(光明問)
광명문은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대한제국 시기에
건립되었다.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하자, 국장 때 고종의 관
광명문을 통해 나왔다.
일제강점기에 덕수궁이 크게 훼손되면서 광명문 좌우에 있던 행각이
철거되고, 1930년대 광명문도 중화문의 서남쪽으로 옮겨졌다.
나중에는 광명문 안에 물시계인 자격루와 홍천사명 등종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덕수궁 권역의 복원을 진행하면서 2018년 12월, 광명문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대한문(大漢門
찾아가기 : 전철 시청역 --> 2번출구 --> 도보 이용.
첫댓글 작가님 덕분에 앉아서 덕수궁
풍경 감상 잘했습니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
덕수궁의 명장면을 고루 담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댓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가내두루 평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