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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영화’ 중에 가장 많은 전차가 나오는 1965년에 만들어진 ‘발지전투’는 2차 대전 말기 전세를 뒤집기 위한 독일군의 마지막 시도를 그렸던 영화다. 미군으로 나오는 헨리 폰다의 부드러운 모습과 광기에 사로잡힌 독일군 전차장교 로버트 쇼가 대조를 이루는 영화다. 영화에서처럼 발지전투는 독일군조차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전투였다.
그러나 히틀러가 ‘히든카드’라고 부를 만큼 대역전을 노렸던 처절한 전투이기도 했다.2차 대전 말기 후퇴를 거듭하던 히틀러는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빼들었다. 아르덴느를 돌파해 앤트워프를 장악한 후 바스토뉴 ~ 브뤼셀~ 앤트워프를 연결한 선 이북의 연합군을 포위해 섬멸한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13개 보병사단과 6개 기갑사단 및 2개 공수사단을 합쳐서 30만 병력, 타이거 전차 및 장갑차량 1000여 대와 각종 화포 1000여 문, 항공기 1800여 대를 이 전투에 투입했다.공격 개시일은 날씨에 전적으로 달려 있었기에 히틀러는 날씨예보를 전투에 활용했다. 아르덴느 지역은 늦가을이면 아이슬란드 저기압과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기압골의 영향을 받을 때는 해안으로부터 습한 공기가 내륙으로 불어 들어와 안개와 구름이 짙게 낀다. 히틀러는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나쁜 날씨가 최소한 일주일 이상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 기상전대의 기상참모인 슈스터 박사는 12월 16일 이후 일주일 정도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연합군의 공군력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상예보를 신뢰한 히틀러는 공격 개시일을 16일로 잡았다. 16일 아침 아르덴느 지역은 비가 내리면서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새벽 5시 반 독일군 20만 명과 500대의 탱크는 일제히 아르덴느 숲으로 진격했다. 악천후는 18일 오후를 제외하고는 21일까지 지속됐다. 특히 19일부터 21일까지는 거의 100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정이 떨어졌다.
이 기간 동안 독일의 기갑부대는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군의 저항도 거세졌다. 히틀러의 전격전에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23일이 되자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하늘이 쾌청해졌다. 연합군은 이날부터 27일까지 하루에 무려 5000대 이상의 항공기를 동원해 독일군을 강타했다. 독일 육군은 연합군의 공중공격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바스토뉴 탈환을 위해 최후의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탱크를 눈과 같이 흰 페인트칠로 위장한 패튼 장군의 미군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발지전투에서 독일은 전차 600대와 항공기 1600대를 잃고 7만 명의 사망자와 5만 명이 포로로 잡히는 참패를 당했다. 예비병력마저 다 잃은 히틀러에게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연합군의 독일 본토 침공을 6주 정도 연기시켰다는 점 단 하나였다.
12월 16일 이후 일주일간 악천후를 보일 것이라는 독일기상대의 예보는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60년 전의 열악한 기상 자료로 정확한 기압골의 움직임을 예측했던 독일 기상전대의 능력에 감탄할 정도다. 이는 당시 독일이 세계에서 기상예보에 가장 많은 투자를 했던 나라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독일기상대의 정확한 예보로 기선을 제압했던 독일군은 완강한 연합군의 저항과 함께 날씨가 좋아지면서 결국 패배하고 만다. 만일 이때 히틀러의 계획대로 일주일 이내에 승세를 가를 전격전에 성공했다면, 아니면 나쁜 날씨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2차 대전은 상당기간 연장됐을지도 모른다. 날씨는 히틀러의 편이 아니었고, 독일은 발지전투에서의 패배로 결국 1945년 5월 7일 항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