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린왕자의 꿈, FC서울 송진형
푸른 광목천이 머리 위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FC서울 구리연습구장에서 만난 9월의 하늘은 그랬다. 햇볕은 간간히 푸른 잔디 위로 쏟아졌다 이내 흩어졌고, 간간히 부는 바람에서는 촉촉한 잔디습기가 느껴졌다. 10분 쯤 지났을까. 누군가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오는 모습이 보였다. 송진형이었다.
“근데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저를 하게 됐어요? 다른 선수들도 많은데…”
자리에 앉자마자 송진형이 물었다.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의 말이 곧 이어졌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거든요. 배워야할 것도 많이 있고…” 말이 다 끝났는지 이내 고개를 푹 숙인다. 어느 추운 겨울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마냥 귀 끝까지 빨개져서. 순간, 살짝 걱정됐다. 오늘 인터뷰가 “네” “아니오” 로 끝날까봐. 그러나 익숙한 잔디 내음 덕분이었을까. 이 수줍은 스무 살 청년은, 살포시 보조개를 보이며 스스로 염려를 덜어주었다.
“전에 (이)상호 인터뷰 하러 파주에 오셨죠? 그때 봤었어요. 청소년 대표팀 소집기간이었잖아요. 저도 같이 있었거든요. 아, 그때 쫌 재밌는 일 있었는데… 한번은 방에서 비타민 영양제를 맞아야했거든요. 링거 놔주시는 분이 방에 들어오셨는데요, 저 혼자 맞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나가시는 거예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시면서, 저보고 여자 국가대표팀 선수인 줄 알고 나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여자 대표팀 누나들도 소집돼서 같이 파주에 있었거든요. (웃음)”
“그리고 며칠 후에 치료실에 갔어요. 제가 발목이 많이 다쳤던 상태라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치료실에 갔었는데요, 당시 여자 국가대표 누나들이 치료실에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국가대표 누나들이 자꾸 막 쳐다보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누나들 중 부상선수가 한 명 있었나봐요. 들어와서 치료받는 저를 보고 부상 선수 대신 새로 뽑힌 여자국가대표 선수인 줄 알고 경계했대요. 새로 들어온 선수인 줄 알고 계속 쳐다본 거라고 나중에 닥터 선생님이 그러더라구요. (웃음)“
덧니가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덕분에 인터뷰는 기분 좋게 시작될 수 있었다.
내 이름은 송진형
송진형. 아직 K-리그 팬들에게는 조금 어색한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만 16세의 나이로 FC서울에 입단한 그는, 이제 막 9경기 출장기록을 가진 선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도대체 송진형이 누구야?” 라는 질문에 FC서울 경기를 꼼꼼히 챙겨본 이들은 ‘재목’ 이라는 단어로 그를 설명한다. ‘새싹’ 정도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3월 19일 포항전을 시작으로 4월 16일 광주전까지 보여줬던 그의 플레이는 분명 달랐다. 우리가 ‘새싹’ 정도로만 생각했던 송진형은, 어느 새 잎이 무성한 활엽수를 꿈꾸며 하늘높이 자라고 있었으니까.
“3월 19일 포항전이 이번 시즌 처음으로 뛴 경기에요. 진짜 데뷔전은 2004년 컵 대회 마지막 경기에요. 그때도 포항하고 했는데, 우리가 5대 1로 졌어요. 조광래 선생님이 어린 선수들 한번 씩 뛰게 하려고 제게도 기회를 주신 거였어요. 그때 후반 교체로 들어가서 조금 뛰었어요. 정말 어지러웠어요. 템포가 진짜 빨랐거든요. 볼은 별로 안 만져봤어요.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만 했죠. (웃음) 사실 올해 포항전 때도 뛰게 될 거라고 짐작은 전혀 못했어요.”
“집에 가고 있는데 고정운 코치님께 전화가 왔어요. 게임 갈 준비하고 내일 오라고. 또 잠 못 자지 말고 편안하게 준비하고 자라고. 정말 기뻤어요.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셨어요. 아빠는 축하한다 하셨고, 엄마는 가서 열심히 잘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코치님 말씀대로 정말 잠을 못 잤어요. 뒤척이다 새벽에 잔 것 같아요. 몇 시에 잤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제가 원래 잠을 일찍 자요. 10시 쯤 자거든요. 그래서 눕긴 누웠는데 뒤척이며 생각하다 새벽에 잠든 것 같아요. 게임 간다고 하니까, 만약에 뛰게 되면 잘해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생각하다보니 잠이 잘 안 왔어요.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에 잠들었어요.“
설레임에 잠도 제대로 못잔 그에게 출격명령이 떨어졌다. 매일 밟는 잔디지만 그날의 잔디는 달랐겠지. 분명, 그에게는.
“제 포지션에 히칼도라는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가 진짜 잘해요. 정말 너무 잘해요. 킥력도 좋구요, 볼 다루는 것도 그렇구요. 패스 나가는 것도 우리나라 선수들과 판이하게 틀려요.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선수에요. 저와는 비교도 안돼요. 너무 잘하거든요.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잘해야 제가 넘을 수 있는 그런 선수에요. 물론 히칼도는 항상 “너가 최고 잘한다” 는 이야기만 해주지만요. 그래서 게임만 따라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경기 당일 날, 감독님이 출전선수 이름을 적어주시는데, 거기에 제 이름이 적혀있어서 처음엔 많이 떨고 긴장하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형들이 자신 있게 하라고 했고, 감독님도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하셨고, 그래서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게임 뛰면서 그렇게 크게 부담은 없었어요. 저는 그냥 그 게임 뛰고, 다시 1군에서 운동하거나 2군에서 게임 뛰고, 그럴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 게임 뛰고 나면 이제 히칼도가 그 다음부터 들어가야 하니까 이번 한 게임만 열심히 뛰려고 했어요. 의욕도 있었지만 그냥 열심히만 뛰려고 했어요. 제 플레이가 어땠는지는 생각도 안 나는데요. 그때 계속 비기다가 처음으로 이겼거든요. 이겨서 다들 기뻐하고 축하한 거만 생각나요. 긴장 많이 해가지구요, 생각이 잘 안 나는데요. 제가 어떻게 뛰었는지.”
“그날 아깝게 골대 맞고 나온 공도 생각 안나요?” 하고 묻자 “아, 맞다.” 하며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누가 그랬지? 송진형은 말이 없어 참 조용한 선수라고. 이 인터뷰가 끝나면, 그를 새롭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만 같다.
“최용수 코치님이 센터링을 올렸는데요, 약간 역습상황이어서 수비수가 한명 밖에 없었어요. (박)주영이 형이 앞으로 잘라 들어가면서 슈팅 때리는 척 하며 살짝 옆으로 흘려줬어요. 그래서 저는 완전 골키퍼랑 1대 1 상황이 됐어요. 딱 잘 컨트롤 해놓고 골키퍼 위치보고 찼는데, 그때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코스가 좋았거든요. 그래서 들어갔다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골대를 딱 맞고 다시 저한테 왔어요. 그때 먼 곳에서 뛰어와서 힘든 상태였어요. 그래서 딱 때리고 힘들어서 돌아서고 있는데, 골대 딱 맞고 저한테 다시 또 온 거예요. 그걸 다시 골로 연결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골대를 넘겼어요. 많이 아쉬웠어요. 게임 끝나고 감독님이나 코치님들도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셨죠.“
“지금까지 뛰면서 한 3번 정도 좋은 찬스가 있었는데 그걸 골로 연결했다면 자신감도 많이 붙어서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못해서 못 넣은 거니까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경기에서 골을 넣었으면 자신감을 많이 가질 수 있었는데요, 골을 못 넣어가지구요, 위축됐던 것 같아요. 골을 넣었다면 아무래도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었을 테죠. 그날 그 장면이 자기 전에도 생각났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한번 지나간 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어차피 게임 또 있고 그러니까 잊어버리려고 해요. 잘한 장면이든, 못한 장면이든.”
“그래도 포항전 마치고 아빠가 칭찬해주셨어요. 정말 잘했다고. 이 정도로만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아빠는 이제 완전 전문가세요. 어렸을 때부터 매일 경기장에 찾아와서 제가 뛰는 모습을 보셨거든요. 정말 열성이세요. 지방에서 경기하면 따로 방 잡으시고. 이젠 오프사이드 이런 것 다 아시고, 선수 개개인 능력까지 다 아시는데, 어쩔 때는 제가 막 깜짝 놀라요. 저 선수는 스피드가 좋고, 저 선수는 기술이 좋고, 그런 이야기하는 거 보면 제가 막 깜짝 놀란다니까요. 저한테는 킥이 안 좋으니까 연습 많이 하라고 하세요. 아빠가 골프 좋아하시거든요. 골프도 축구와 똑같다고, 힘들이지 않고 정확히 맞춰야한다고, 자세 낮추고 그래야한다고 만날 그러시던데. (웃음)”
“그 뒤로도 매 게임마다 열심히 뛰려고만 했어요. 제가 뭐 해보겠다고 그랬던 건 없었어요. 그냥 최선을 다했을 뿐이에요. 계속 1군 게임에라도 조금씩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열심히만 뛰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송진형의 성실함은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욕심 같은 건, 예전에 버렸어요
포항전, 그 한 경기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계속 뛰었을지 모른다. 7경기 연속출장에서 전기리그를 마감했지만 만족한다. 아버지의 환한 웃음을 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한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니까. 청소년 대표팀에도 다시 뽑혔고, ‘진형 오빠’, ‘진형 선수’ 하며 찾아오는 팬들도 늘었다. 그렇게 행복한 기억을 머금은 아지랑이만 있었을 뿐이다.
“네, 맞아요. 포항전 뛰고 나서 무척이나 기뻤어요. 아마 그때가 지금까지 축구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 같아요.”
당시 스타카토처럼 뛰었을 그의 심정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안단테(Andante, 느리게)로 돌아가려고 한다. 순간에 심취한 나머지 나태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뛰고 싶은 생각은 많이 했는데, 제가 들어가서 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제가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서요. 그런데 올해 생각보다 많이 뛰었어요. 좀 많이 좋았는데요, 좋으면서두요, 솔직히 처음엔 1군 게임 뛸 실력은 안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기회를 계속 주시니까 열심히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서 조금만 잘못하면 완전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됐어요. 1군 게임에 계속 들어가다 딱 떨어지게 되면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이 많아요. 그럴까봐 겁이 나기도 했어요. 게임마다 잘 안 풀리고, 기회도 적어지고, 밑으로 떨어지게 될까봐 그게 약간 두려웠어요. 좋으면서도 약간 두려울 때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기리그가 끝나고 컵 대회 때는 한 경기 밖에 못 뛰었어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제가 여름이 되면 체력이 많이 떨어져요. 지금 상태로 1군 경기가 나가면요, 절대 잘하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 기다리며 힘 키우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또 입도 짧아서 잘 먹지도 못하고 속도 좀 안 좋은 편이에요. 올해도 한번은 크게 체해서 일주일동안 밥도 못 먹고 죽만 계속 먹었어요. 그게 시즌 시작하기 바로 전이었어요. 감독 선생님한께 엄청 혼났어요. 몸 관리 안했다고. 집에서 뭘 먹길래 그랬냐고.“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요, 프로가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고 그런 곳인 줄 몰랐어요. 얘기는 들었어도 부딪혀보지 않았으니까 실감이 안 났어요. 들어와 보니까 정말 치열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잘하려고 욕심을 부렸죠. 처음엔 2군 게임에 들어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억지로 욕심내고 그랬죠. 그런데 크게 저한테 득이 된 건 없었어요. 처음에 욕심을 내서 자기가 잘하게 되면요, 교만한 마음이 생기게 되고, 결국 그게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 욕심내기보다는 자기 일에만 묵묵히 잘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다른 선수들이 잘 나가고 그래도 크게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그런 성격이 못돼요. 저는 그냥 제가 할 것만 하는 스타일이라서. 크게 막 욕심부리다보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도 욕심을 내다가 크게 잘된 적이 없었어요. 욕심내서 뭘 하려고 하다보면 더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 빛을 보고 싶어요. 벌써부터 뛰어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인터뷰도 걱정돼요. 인터뷰 같은 거 많이 하다보면요, 사람이 교만해지잖아요. 내가 정말 잘하나보다. 이런 생각 드는 게 싫어요. 교만해지면 나태해지기 쉽잖아요. 제 마음이 괜히 올라가고 그럴까봐요. 만약 제가 잘해가지고 많이 높아지고 그러면요, 제 마음을 잘 다스려야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주영이 형 같은 경우도 아시아청소년대회 이후부터 많이 알려지면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올라설 때는 좋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위험스러운 것 같아요. 그 속에서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잘 다스려야죠. 그런 마음 생기지 않도록.”
축구만 사랑하다
축구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얼굴은 막 닦은 거울처럼 빛이 난다. “축구가 너무 좋아요” 라는 말을 듣고 있자니 자연스레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송진형의 진짜 소년 시절은 어떠했을지.
“제가 축구를 너무 너무 좋아했어요. 보는 것도 좋아하고, 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때 당시 축구 보면 골 넣고 환호하고 그러는게 되게 멋있고 그랬어요. 원래는 축구에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 날 98 프랑스 월드컵 재방송 해주는 걸 봤는데,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때부터 축구를 좋아하게 됐어요. 게다가 공부하는 건 또 싫어했어요. 엄마도 중학교 가면 공부시킨다며 초등학교 때는 많이 놀게 해주셨어요. 제가 질릴 때까지 실컷 놀게 하신 거죠.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공부 시키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제가 축구를 너무 좋아하니까 ”공부해야 할 텐데…“ 하며 걱정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놀면서 축구에 계속 재미를 붙였고, 공부는 하기 싫고, 축구는 하고 싶고. 그래서 ”축구 하는데로 가고 싶다“ 고 그랬죠.”
“제가 고척 초등학교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지금 중학교 코치 선생님 출신교가 고척 초등학교에요. 선생님이 잠깐 근처에 온 김에 초등학교에 들른 건데, 그 시간에 반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어요. 그때 잘했거든요. 코치 선생님이 보다가 오셔서 축구해볼 생각 없냐고 하셨어요. 저는 너무 하고 싶어서 “꼭 하고 싶다” 했지만 “부모님 반대가 심하다” 고 말했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계속 저희 부모님을 설득했고, 결국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부모님 반대가 있었어요. 힘들다고. 지금은 진짜 많이 컸는데요, 사실 지금도 큰 편은 아닌데, 되게 많이 큰 거예요. 그런데 그때 당시만 해도 키가 진짜 조그맣고 몸도 완전 안 좋았거든요. 일단 축구선수는 몸이, 이 체격이 좋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해도 힘들 것 같다고 엄마 아빠가 반대하셨는데, 제가 너무 하고 싶어가지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저는 끝까지 하겠다고 생각하고 축구부에 들어간 건데요, 그때 당시 부모님께서는 ‘좀 하다 힘들면 관두겠지’ 하고 시킨 거래요. 그런데 제가 힘들다는 말을 안 하니까요, 지금까지 하게 됐어요.”
축구만 생각하며 들어간 축구부였다. 그러나 마음 편히 축구만 할 수 없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빨래와 청소도 모자라, 잠들기 전 선배들이 덮고 잘 이부자리를 살피는 것까지. 그 모든 것들은 송진형을 포함한 1학년 막내들이 해야 할 몫이었다.
“물론 처음 축구부 들어갔을 때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빨래, 청소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후배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고, 또 시키면 당연히 해야 하니까. 그래도 형들은 저한테 참 잘해줬어요. 다른 애들은 좀 괴롭힘도 많이 당하구 그랬지만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요,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을 해야하기 때문에 3학년은 일단 무조건 잘하던 못하던 간에 게임을 뛰어요. 1학년은 어차피 아무리 잘해도 2,3학년 위주로 게임을 나가기 때문에 게임 뛸 생각을 못해요. 저도 저학년끼리 연습할 때나 뛰고, 대회에는 한 번도 못 나갔어요.”
"그러다가 1학년 겨울에 중학교 감독 선생님이 '아무래도 축구를 늦게 시작했으니까 브라질에 보내는 게 어떻겠냐' 고 해서 얼떨결에 가게 됐어요. 대신 중학교에 이상렬 선생님이라고 있거든요. 그 선생님이 단체로 대신 출신들만 데리고 가는 건데, 저희 중학교 감독 선생님이 대신 고등학교 출신이라서 저도 섞여서 같이 가게 됐어요. 현지에서 집을 하나 구해서 서로 같이 지내게 됐는데, 그때 모교에서 배려 해줘서 학교는 다니는 걸로 됐고, 브라질에서는 축구만 하며 지냈어요.”
“그곳에서 운동은 힘들게 하지 않았어요. 강압적으로 심하게 안 시키거든요. 잠도 많이 잤고, 다행히 음식이 잘 맞아서 밥도 많이 먹다보니 갑자기 많이 컸어요. 1년 동안 한 13cm인가, 14cm인가, 그 정도로 많이 자랐어요. 키 크는 게 보일 정도로 정말 많이 컸어요. 그동안 저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는데요, 부모님이 보시기엔 제가 너무 작으니까 얘를 축구를 시켜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셨대요. 저희 학년에서 제가 두 번째로 작았는데, 정말 많이 작았어요. 그러다 키가 많이 자라서 좋았죠.”
“그렇지만 브라질 축구 유학이 제가 볼 때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일단 한국선수들은요, 그 전부터 계속 강압적으로 많이 했잖아요. 가면은 일단 운동을 하던 안하던 상관을 안 하니까 많이 나태해져요. 운동도 잘 안하게 되고, 게을러지고, 그러다보니까 잘했던 선수도 브라질가면 좀 망가져서 많이 오고 그러는 것 같아요. 브라질이 한국선수들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실패하는 선수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잘했다가도 브라질 갔다 많이 게을러져서 오기도 하고, 돌아와서도 한국 축구에 적응 잘 못하고,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열여섯, 프로에 뛰어들다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시작한 축구였다. 그러나 프로행은 빨랐다. 그것도 상당히.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운명을 믿지 않는 송진형이지만, 분명 그것은 운명이었다. ‘운명’ 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중학교 1학년 겨울에 브라질에 가서 중학교 2학년 겨울에 다시 돌아왔어요. 그때부터 3학년 때 치를 대회들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런데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많이 다쳤어요. 운동은 하고 싶은데요, 너무 계속 다치니까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게임은 뛰고 싶은데, 계속 다치고, 또 다치고 그러니까 이러다가 시즌 끝나고 나서 고등학교 갈 때도 없고,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때 좀 많이 힘들었어요. 많이 다치고 그러니까. 3학년 막 올라갔을 때 크게 다쳤는데 회복이 빨리 되는 바람에 게임을 뛰었고, 다행히 잘 됐어요.”
“저희 중학교가 그렇게 뛰어난 팀은 아니었어요. 저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구요. 그때 청룡기라는 대회가 있었는데요, 당시 강준호 선생님이랑 김귀화 선생님이 중학교 선수들 스카웃하러 다니셨어요. 그때 군산제일중학교였던가. 거기 학교랑 게임을 하는데, 그날 컨디션이 되게 좋았어요. 그때 막 해트트릭까지 했거든요. 저한테 잠깐 테스트 좀 받아보라고 하셨는데, 저희 중학교 선생님은 절대 프로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일단 저한테도 그렇고 저희 아빠한테도 그렇고, 말씀을 안 하셨어요. 그런데 다음 대회에서도 제가 좀 잘해가지고 그 선생님들이 보시고 일단 와보라고, 운동 같이 해보라고 하셨어요.”
“거기서 바로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테스트로 뽑은 애들하고 게임이 있었어요. 그날도 어떻게 잘해가지고 바로 게임 끝나자마자 조광래 선생님이 계약하자고 하셨고 바로 서울 올라가서 곧바로 계약을 했어요. 사실 그전부터 계속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그냥 가라고, 어차피 나중에 너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빨리 가서 적응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여기 시설도 좋잖아요. 운동하는 환경이나 방법도 좋고. 그 전부터 가고 싶었던 팀이었고 그래서 계약하게 오게 됐어요.”
“만약 제가 가게 되면 중퇴를 하게 되는데, 아빠는 학업이 걱정 되셨나 봐요. 학벌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좀 많이 고민하셨어요.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것도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장이라고 있어야하는데, 중학교 중퇴니까. 그렇지만 언제 또 프로에서 저를 원할지 모르고, 갈 수 있을 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채 덜 자란 열여섯의 송진형은 그렇게 하여 프로와 만났다. 걱정된다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단다. 축구를 계속 할 수 있어 그저 좋았을 뿐이었다고.
“저희 팀에 유명한 형들 많잖아요.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형들 뉴스에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그랬으니까. 지금은 같이 생활하며 익숙해지다 보니 함께 운동하는 좋은 형들뿐이에요. 형들이 어린 선수들한테 참 잘해줘요. 형들 스스로 다 알아서 하시니까 심부름 같은 것도 없고, 저희도 저희 할 것만 딱딱하면 되구요. 팬들이 뭐라도 주면 저희 먼저 챙겨주시고, 크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어요.”
“작년까지 숙소에서 생활했는데, 지금은 집에서 다니고 있어요. 남양주 쪽에 살아요. 저 때문에 작년에 일부러 이사 온 거예요. 원래는 영등포 당산동 쪽에 살다가 아빠 사업이 힘들어서 공주로 옮겼어요. 그러다 집에서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이사 온 거죠. 이사 오고 나서 아빠가 집에서 다니면 차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필요 없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견적 뽑아 오시더니 저한테 말씀도 안하시고 차를 샀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차 몰고 다녀요. 원래 차사면 안 좋게 보잖아요. 선생님들도 그렇고, 형들도 그렇고. 그래서 맨 처음에는 숨기면서 다녔어요. 한 달 정도 몰래 타고 다녔는데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다 알게 됐어요. 타고 갈 것도 없는데 숙소 오고 그러니까 형들이 눈치 채고 묻더라구요. 너 무슨 차 있냐고.”
“요즘은 최용수 코치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운동할 때 저한테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세요. 한 명, 한 명 불러서 인성에 대한 얘기도 해주시구요. 그때 한번은 청소년소집훈련 때 제가 모르고 전화도 안 드리고 갔어요. 원래 마음은 있는데, 그렇게 전화하는 걸 잘 못해요. 그렇게 넘어갔는데, 갔다 왔더니 선생님이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사소한 일이라도 그게 아니다” 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제가 그런 걸 참 잘 못해요. 스승의 날에 겨우 전화 드리고 그래요. 정말 그런 표현 같은 걸 못해요. 형들, 부모님들한테도 그렇고. 마음속으로는 해야지, 해야지 하는데 표현을 못해서요.“
그렇다면 처음 프로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일까?
“송진형이라는 제 이름 밑에 35번이라고 프린트 되서 나온 유니폼이요.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저 신기하고 좋았어요. 제 이름 보니까 책임감도 느꼈구요. 아무래도 자기 이름을 등에 달고 뛰니까요, 열심히 뛰어서 좋은 플레이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역시, 송진형이다.
1군과 2군 사이
인터뷰 중간, 쉬는 날임에도 개인훈련을 하기 위해 연습구장을 찾은 선수들이 보였다. 공을 안고 가는 선수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들 중 라이벌은 없냐”고 물었다. 스무 살 동갑내기 선수들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 짐작하며. 그러나 그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라이벌이요? 여기 있는 선수가 다 라이벌 아닐까요? 서로 경쟁해야하는 선수니까 다 라이벌이겠죠. 다 경쟁해야하니까 다 라이벌 같아요. 일단 1군에서 뛰니까 싸워서 이겨야겠다. 다부지게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경쟁을 피할 수 없잖아요. 제가 적응해야죠. 원래 전에는 이런 생각도 못했는데, 올해 프로에 대해 좀 많이 생각하고, 실감하고, 그래요. 경쟁이 너무 치열하니까요. ‘아, 살아남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이런 게 프로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올해 들어서 그런 걸 좀 많이 느꼈어요.”
올해 처음 1군에 올라왔다. 직접 몸으로 부딪혔기에 1군과 2군, 그 차이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가 흘린 땀이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므로.
“올해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와 운동하고 게임 뛰는 거예요. 입단하고 2군 게임만 계속 뛰고 그랬어요. 그런데 2군 게임을 뛰면요, 정말 재밌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볼 수 있거든요. 일단 감독님도 편하게 해주세요. 뺏겨도 되니까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2군 생활은 재밌는데 1군에 올라오면요, 심리적인 압박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1군 게임에서는 한번 뺏기면 일단 골로 연결되니까요, 되게 신중하게 플레이해야 해요. 뭐든지. 하나 하더라도 신중하게 해야지, 건성건성 하면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최선을 다해야해요.”
“그런데 신중하게 하다보니까요, 약간 주눅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뺏기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있으니까 자신감이 많이 결여되는 것 같아요. 매번 게임 때마다 그런 장면은 있어요. 제가 볼 관리가 안돼서 뺏기면, 위협적인 상황이 나오고 그러는데, 그 때문에 가끔 주눅들 때가 있어요. 제가 미드필드에서 뛰다 보니까 중앙에 있잖아요. 중앙에서 딱 뺏기면 템포가 빠르니까요, 공격수들이 막 치고 올라가거든요. 그때마다 “형들이 뺏어줘야하는데, 뺏어줘야하는데…” 그러는데, 상대 선수가 막 슈팅까지 때리면 되게 위축이 많이 되요. 그래서 뺏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하다보면 약간 자신감도 부족해지는 것 같아요.“
“1군과 2군은 차이는 정말 좀 많이 있어요. 2군에서 뛸 때는요, 마음에 부담이 별로 없어요. 일단 관중차이도 엄청나잖아요. 2군이랑 1군이랑. 2군에서 뛸 때는 제가 어떻게 해보고 싶은 것도 해보고, 또 생각대로 되고 재밌게 할 수 있는데, 1군 게임에서는 잘하려는 생각보다 열심히 하려는 생각을 가져야해요. 잘하려고 하면, 게임이 절대로 자기가 원하는 데로 이뤄지지가 않아요. 무조건 좀 열심히 뛰구요, 그러면 잘하는 것 같아요.”
“운동할 때도 차이가 엄청 많이 있어요. 2군에서 할 때는 마음 편히 즐겁게 하는데, 1군에서 할 때는 좀 긴장감이 많이 돌아요. 서로 게임도 뛰어야하고, 경쟁도 해야 하고, 좀 무서워요. 게임 뛸 때는 베스트 멤버로 나가는 선수랑 리저브 선수랑 서먹서먹한 것도 있구, 운동할 때도, 자기 포지션에 있는 사람한테는 좀 안 지려고 하는 것도 있구요. 다들 다부지게 하구요. 지금 저랑 같은 또래 애들이나 제 밑에 또래들이랑 1군에서 같이 운동하면요, 그 선수들은 잘 모르겠는데, 저는 선배나 다른 사람들한테 낯가림이 좀 심해가지구요, 선배들한테 좀 주눅 들고 그러는 게 있어요. 다른 선수들은 잘 모르겠는데, 저는 좀 그런 게 있어요.”
“아무래도 성격이 좀 바꿔야 될 것 같아요. 경기장에서도 그게 약간 적용하거든요. 감독님이 좀 많이 뭐라 그러면요, 제가 좀 약간 주눅 들고 그런 게 있어요. 올해 게임 뛸 당시에는 하프타임 때 감독님이 특별히 제게 하신 말씀은 없어요.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게임장에서 제가 약간 볼을 오래 가지고 있거나 뺏기면요, 감독님이 뭐라 하시는데, 그때 다시 볼이 오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런 것도 좀 있어요. (김)동석이는 성격이 되게 활발하고 형들한테도 말도 잘 걸고 그러는데, 저는 그러지 못해요. 성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축구하면서 좀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돼요. 하고는 싶은데.”
“지금은 안 그러는데 조광래 선생님 밑에 있을 때는 1군, 2군 다 같이 전지훈련을 갔어요. 거기서 한번은 게임을 뛰는데요, 제가 겁이 되게 많아요. 외국 선수들이 거칠고 그러잖아요. 지금은 조금 많이 좋아졌는데, 옛날에는 조금만 거칠고 그러면 축구를 잘 못했어요. 그 정도로 겁이 되게 많은데요, 그때 당시 전반전이 끝나자 조광래 선생님께 엄청 혼났어요.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고. 외국 애가 저렇게 태클 들어오는데 왜 너는 저렇게 못 하냐고. 그때 되게 서럽고 그랬어요. 기대하고 왔는데 그런 게 아니고, 힘들고 그러니까. 좀 많이 달라져야겠다. 다부지고 그래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사실 제가 좀 다부진 면이 없어요. 지금은 좀 많이 나아졌는데요, 옛날에는 태클이라는 걸 상상도 못했어요. 볼만 잘 차면 축구 잘하는 줄 알고 그랬었는데요, 프로 오니까 그게 정말, 정말 아니에요. 정말 틀린 생각이었어요. 다칠까봐 피하는 것도 있었구요, 제가 일단 몸이 약해서, 좀 부딪히고 그러면 아프고 그러니까 많이 겁을 먹었어요. 태클 들어오면 일단 겁부터 많이 먹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웨이트 많이 해서 몸이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니까요, 부딪혀도 밀리지 않고, 음 아니 약간 밀리는 건 있는데요, 그래도 어떻게 해보고 버티고 그러니까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올 초 동계훈련 끝나고 나서 힘도 많이 붙고 좋았는데, 지금은 체력이 많이 다운된 것 같아요. 처음보다. 그때는 웨이트도 많이 했구요, 아무래도 덥지 않다보니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잘 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체력이 약해서 매년 여름마다 힘들어하는데 올해 여름은 많이 힘들어요. 거기다 얼마 전에 연습게임 중에 접질렸어요. 원래 발목이 다른 사람보다 약해서 늘 아팠거든요. 운동하다 다치고, 치료하면서 조금씩 쉬고, 다시 운동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좀 많이 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형들 보면 게임 못 뛰고, 그러면 자책하기도 하고 그러는데요, 전 그렇지는 않아요. 게임 못 뛰거나 그래도 항상 제가 생각하는 게 있으니까요. 따로 목표하는 게 있기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나중을 생각해요. 지금 잘하면 나중에 다 돌아오겠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진형이의 축구생각
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송진형은 처음 축구와 사랑에 빠졌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축구란 이런 거라고. 축구란, 어느새 지금의 자신을 키운 소중한 8할 아니던가.
“축구는 즐겁게 해야 해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강압적으로 하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 늘거든요. 안 그러면 실력이 향상되기보다는 틀에 박힌 축구만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해요. 그 때문에 항상 재밌어요. 축구할 수 있는 게. 부상당하지 않고 뛸 수 있는 게, 안 다치고 뛰는게 최고로 좋고, 최고 행복인 것 같아요.”
“제가 축구를 늦게 시작했잖아요. 1학년 때는 선배들 뒤에서 심부름하면서 지냈어요. 게임에도 안 나가니까 맞지도 않고, 재미있게 애들이랑 숏게임하면서 뛰며 지냈어요. 그러다 2학년 때는 브라질 유학을 갔다 왔구요. 그러다보니 선생님들께 크게 맞거나 제재를 당하고 그런 적이 없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나 형들은 저보구 편하게 축구했다고 하더라구요. 형들은 되게 많이 맞으면서 했다고 그래요.”
“제가 생각할 때, 맞으면서 하면 창의력이 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하지 못하고, 시키는 데로만 하고, 너무 틀에 박힌 축구만 하게 되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좀 그런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외국선수들 같은 경우는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뭘 하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털어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해보지도 않고 일단 겁을 내요. 또 잘못하면 선생님들께 혼나니까 그게 안 좋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축구를 볼 때, 골 넣는 장면만 보고 많이 환호하잖아요. 그렇지만 패스나 플레이에 더 중점을 두고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골 넣는 것도 중요하긴 중요한데요, 저는 아기자기한 축구를 좋아하거든요. 한국축구는 뒤에서 땅땅,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해요. 패스해도 되는 상황인데도 자신이 없으니까 땅땅하는데요, 외국 축구 보면 패스 플레이 잘 하거든요. 그런 장면이 참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빨리 빨리 주고 스피디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고 싶어요. 그래서 그런 점을 더욱더 향상시켜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어서 믿음이 가는 선수가 돼야할 것 같아요. 모든 선수들에게.”
주님 안에서, 매일 기도하며 자랍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는 늘 이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한다. 심판의 날,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자신이 되게 해달라고.
“엄마가 신앙심이 정말 좋으세요. 저도 모태신앙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계속 교회에 다녔어요. 어머님이 신앙심이 깊으시다보니 항상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세상적인 것들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 갖고 살라고. 저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 항상 고마워요. 게임 나갈 때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생각으로 뛰면 힘들지 않을 거라고 매일 말씀하세요. 그래서 게임 나가기 전 항상 그렇게 생각해요. 게임 때도 그렇고, 또 운동할 때도 그렇고. 항상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니까 바르게 생활하려고 노력해요. 하나님께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은 매 순간마다 느껴요. 항상 그걸 염두하며 살아요. 지금 이 순간도 그렇구요.”
“기도는 항상 많이 해요. 게임 시작하기 전에는 일단 안 다치는 게 중요하니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게임 끝나고 나서도 꼭 감사기도 드리구요. 그렇지만 만약 골을 넣는다 해도 주영이 형처럼 기도 세레모니는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소심해가지고요, 그 정도까지는 못하고요, 그냥 기쁜 것만 표현할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하는 건 힘들 것 같고, 그냥 마음속으로만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 같아요. 그 정도까지는 진짜 잘 못할 것 같아요.”
“크게 신앙이 좋지는 않는데… 그렇지만 저는 되게, 되게 깍듯해요. 사생활이. 저는요, 진짜 사생활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철저하게 지켜요. 솔직히 축구선수는요, 여자나, 술이나, 이런 걸 많이 좋아하잖아요. 게임 끝나고 외박 생기면 다 같이 술 마시러도 가고, 여자친구도 만나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절대 그런 거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철저하게 지켜요. 저는 일단 여자친구, 그런 거 생각도 안하거든요.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형들이나 친구들이 저한테 신기하다고 그래요. 좀 다른 사람 같다고.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잠도 빨리 자려고 노력해서 매일 10시 정도에 자요. 그리고 괜히 TV 보다보면 재밌는 게 계속 나오니까 더 보고 싶다는 유혹이 계속 오잖아요. 그래서 전 TV도 잘 안 봐요. 오전에 운동 안할 경우엔 신앙간증집을 많이 읽어요. 그런 거 보면서 이런 세상 속에 있는 유혹이나 쾌락 같은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저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스무 살 아닌가. 하고 싶은 것도, 또 궁금한 것도 많은 스무 살. 술도 마실 수 있고, 사랑에,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마음 깊이 숨겨놨던 열정도 태울 수 있는, 그런 나이.
“처음 입단했을 때는 저희가 너무 어리니까 저희가 느끼지 못하게 형들끼리 놀았어요. 노는 걸 안 가르쳐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크게 유혹이 있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때 당시에는 친구들끼리 축구하는 게 재밌으니까 축구만 했어요. 이제 스무 살이 되니까 술도 마시라는 권유는 있는데요, 저는 저한테 있어 철저한 면이 있어 가지구요, 다른 건 거절 잘 못할 때도 있지만 절대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못하겠다고 딱 말해요. 가끔씩은 놀아야 스트레스도 많이 풀린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축구가 잘되든 안 되든 그런 것보다 성경책 읽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아직 술은 안 먹어 봤어요. 입에도 안 대봤어요. 한번도. 우승 확정 짓고 이겼으니까, 기분 좋으니까, 숙소에 있는 사람들끼리 다들 술 마시러 갔어요. 그때 저는 바로 집에 가서 10시에 잤어요. 다음날 형들이 넌 왜 안 왔냐고 하더라구요. 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죠.”
“너무 하고 싶었던 축구를 지금 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축구를 하는데 있어서 안 좋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형들이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여자친구도 사귀어보고, 술도 마시고 그러는데, 넌 안 억울하냐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그런 것에 깍듯이 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워요. 이제는 형들도 제가 그러는 거 알고 아예 그런 이야기를 안 꺼내요. “여자친구 소개시켜줄까?” 그런 이야기도 안하시구요. 저는 아예 그런 쪽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다시 태어나도 축구할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일을 즐기며 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분명 송진형은 행복한 어린왕자다.
“요즘은 더워서 힘들지만, 저는 운동이 힘든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축구가 힘든 건 정말 당연해요. 일반 사람들도 운동장 조금만 뛰면 힘들고 그러잖아요. 그 힘든 단계에서 축구선수 같은 경우는 더 뛰고, 또 뛰고, 계속 뛰고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도 축구하고 싶어요. 제가 원해서 했기 때문에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축구만 하고 싶어요.”
“물론 아직은 많이 부족한 축구선수 같아요.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 기본기나 축구에 대한 센스라고 할까, 그런 게 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일찍 시작한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을 많이 가지고 놀고 그러는데, 저는 늦게 시작해서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볼에 대한 감각이라든지, 체력적인 것도 그렇구요, 기술적인 섬세한 면, 그런 게 많이 부족해요. 창의성이나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들도 좀 많이 키워야할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운동을 많이 해요. 오전에 비는 시간에도 많이 하구요, 저녁에 나와서도 많이 하구요. 밥 먹고 좀 쉬다가 바로 나와서 한 8시부터 시작해서 한 9시 반까지 운동하고 집에 가면 10시 정도 되거든요. 그럼 바로 자구요. 이렇게 개인적으로 노력 많이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잘하게 되면 외국에서 뛰고 싶어요. 외국에서 뛰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거든요.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꾸준히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일단 지금은 형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승하는 게 목표에요. 저는 게임을 뛸지 안 뛸지 모르겠는데 뛰게 되면 최선을 다할 거예요. 항상 노력해서 발전하는 선수 되고 싶어요. 계속 꾸준히 지켜봐주세요.”
동화 속 어린왕자는 말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해, 라고. 어린왕자의 독백을 되뇌며, 별들과 새들의 노래를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놓아버린 지금,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숫자로 생각하고 계산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말하던, 어린왕자의 오랜 속삭임은 모래언덕에 묻어둔 채.
연습구장에서 만난 송진형은, 바로 어린 시절, 동화에서만 만날 수 있던 어린왕자와 닮아 있었다. 그는, 별들이 높고 깊게 잠든 밤에도 아름다이 반짝이던 어린왕자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소원이요? 음… 소원은 그렇게 크게 없는데… 음… 천국… 천국에 가보고 싶어요. 천국이 어떤지 한번 가서 보고, 다시 돌아와서 열심히 축구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음… 축구는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으니까. 오래 오래 하고 싶어요. (웃음) 그게 제 소원이에요. 유일한 소원.”
햇솜을 닮은 어느 어린 왕자의 꿈은, 마주하는 이의 얼굴에도 소담한 웃음꽃을 피우게 만들었다. 그 온화함과 소박함이 좋았던 9월의 늦은 오후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K-리그 명예기자 권민정
사진제공- FC서울
첫댓글 사진 누가 찍은건지... ㅠㅠ
송진형선수...기대되는선수입니다!!
송켈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