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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울둘레길 4코스(화랑대역 - 사가정역)
일 시 : ‘26. 8. 19(토)
소재지 : 서울시 노원구 및 중랑구 일원
코 스 : 화랑대역→신내어울공원→신내역→양원역→중랑캠핑숲→망우역사문화공원→깔딱고개쉼터→사가정역(거리/시간 : 7.7km+1.6km, 실제는 10.27km를 3시간 2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9 : 31. 들머리는 화랑대역(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2000년 6호선 ’화랑대역‘으로 문을 열어 2010년 경춘선이 폐지될 때까지는 800m가량 떨어져 있는 경춘선의 ‘화랑대역’과 동명(同名) 이역(異驛)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 도심의 편리함과 깊은 숲속의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신내동·망우동 등 시가지를 누비다 중간지점에서 ‘망우산’의 울창한 숲속으로 파고든다. 난이도는 ‘하’. 유유자적 걷다가 망우묘지공원의 선현들이 전하는 충혼과 문화의 향기를 음미해 볼 일이다.
▼ 화랑대역 맞은편, ‘공릉동근린공원’의 서쪽 출입구에 3코스에서 4코스로 넘어감을 알리는 각종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 09 : 35. ‘묵동천(墨洞川)’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답사를 시작한다. 신내동 일대에서 발원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길이 5.5km의 지방하천인데, 개울을 가운데 두고 걷기길과 자전거길이 좌우로 나있다. 참고로 묵동은 ‘먹(墨)’을 만들던 마을이란 뜻이다. 때문에 순우리말로 ‘먹골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내천, 태릉천, 화랑천으로도 불린단다.
▼ 아날로그적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징검다리. 동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였고, 동네 어머니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정겨운 빨래터였다. 설렘의 공간이기도 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가 꼭 아니더라도 징검다리는 순수한 첫사랑과 성장의 은유로 남아 있다.
▼ 09 : 40. ‘묵동IC교(또는 묵동IC 진입램프교)’ 아래를 지나간다. 그런데 처마에 ‘두물다리’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뭘까?
▼ 아니나 다를까 다리 아래를 지나자마자 두 물길이 합쳐지고 있었다. 탐방로는 계속해서 ‘묵동천’의 본류를 따라간다. ‘봉화산역’ 방향이다.
▼ 왼쪽은 공릉동 육군사관학교(태릉골프장) 인근에서 발원하는 지류이다. 저 둔치를 따라 600m쯤 올라가면 ‘화랑대 철도공원’이 나온다.
▼ 안전의식의 승리. 기습 폭우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 09 : 47. 북부간선도로 아래를 지난다.
▼ 매일 1만 톤의 물을 ‘묵동천’으로 방류한단다. 과거 ‘묵동천’은 주변지역 개발로 인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 되면서 악취와 수질악화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었었다. 하지만 2021년, 2년여의 복원 사업을 거쳐 사계절 내내 깨끗한 물이 흐르는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 산란기 물고기들이 상류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여울형 어도(물고기 길)를 설치하고 하천 자생초화를 심어 자연 복원력을 높였다. 하천의 문지기라는 ‘왜가리’가 아예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 다리 아래를 지나자마자 ‘묵동천’을 건넌다. 이정표(깔딱고개쉼터 6.6km/ 화랑대역 1.1km, 이하 ‘종점까지의 거리’로 표시)가 방향을 알려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 계속해서 ‘묵동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왼쪽 둔치에서 오른쪽 둔치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 오리 가족도 둥지를 틀었다. 묵동천의 생태계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09 : 52. ‘신내로’로 올라선다. 이제 도심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지선인 ‘신내로18길’을 건넌다.
▼ ‘서울둘레길’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정비가 잘 되어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정표와 리본 말고도, 숲길형·도심형·지주형 표지판, 스티커 등 각종 시설물들이 방향을 알려 준다. 그래도 2%쯤 부족했나보다. 4코스에서는 ‘동판’ 하나가 더 추가되고 있었다.
▼ 횡단보도를 건넌 탐방로는 곧장 ‘신내어울공원(이정표 : 종점까지 6.3km)’으로 들어간다.
▼ 그 초입에 ‘서울둘레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4코스는 완주 인증을 위한 스탬프를 하나 더 찍어야 한다는 얘기다.
▼ 공원 숲길을 400m쯤 걷는다. 약간은 엉성해 보이는 숲속에 벤치 몇 개가 놓여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공원이지만, 운동시설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다. 여럿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뜻의 순우리말 ‘어울’에 걸맞은 꾸밈새라 하겠다.
▼ 10 : 00. 공원을 빠져나오면 ‘구(舊)신내교’ 남단. ‘어울공원길’을 횡단한 다음 ‘신내로16길’을 따라 동진한다.
▼ 10 : 02. ‘신내LPG충전소’ 앞에서 ‘ㄱ’자 모양으로 도로를 연이어 건넌 다음 ‘용마산로136길’을 따라간다. 타고 온 도로를 계속해서 따라가는 모양새인데, 도로 이름만 ‘용마산로136길’로 바뀌었다. 아니 보도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 10 : 07. 지하철 6호선과 수도권전철 경춘선의 환승역인 ‘신내역’. ‘신내’라는 역 이름과는 달리 실제 행정구역상 부지는 ‘망우본동’이다. 6호선의 종착역이자 유일한 지상역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 10 : 12. 양원지구공원관리사무소 앞(삼거리)에서 우회전 한다.
▼ 이어서 ‘양원역로’를 따라 남진한다. ‘양원역’ 방향이다.
▼ 10 : 17. ‘성당은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 선입견을 깨버린 ‘양원성당’. 전통적인 성당 양식에서 벗어나 직선과 모던함이 강조된 깔끔한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다면체 구조의 건물 외관도 특이하다. 자연광과 조명이 조화를 이루는 내부 구조도 볼만하다했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수난과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담화의 일부인데, 갈등과 불안, 경제적 어려움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 전 세계 청년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깊은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Seoul 2027)’의 공식 주제로 선정했다.
▼ 10 : 18. 다온공원. 도로변 자투리땅을 활용한 쌈지공원인데, 이밖에도 신내어울공원, 이화공원 등 4코스를 걷다보면 이런 소공원을 두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 10 : 21. ‘송곡관광고등학교’를 스치듯 지나 경의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한다. 이즈음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계신 선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봉성, 서병호, 김영랑 등 조국 광복을 위해 애쓰신 애국자들의 약력이 적힌 깃발을 걸어놓았다.
▼ 어둡고 침침했던 굴다리가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송곡여자고등학교 미술반 학생들이 양원마을의 전설을 벽화로 그려 넣었단다. 그렇다면 건원릉 자리를 정하고 돌아가는 태조 이성계의 행렬도일 것이다.
▼ 굴다리를 빠져나오자마자 ‘ㄱ’자 모양으로 연이어 도로를 건넌다. 그런 다음 ‘송림길’을 따라 ‘양원역’쪽으로 간다.
▼ 양원역. 경의·중앙선 노선 중 서울특별시 구간의 시작역이다. 지명인 ‘양원(養源)’은 ‘양원수’라는 우물에서 유래했다. 태조 이성계가 건원릉 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고개에서 우물물을 마셨는데 뛰어난 물맛에 반해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나?
▼ 10 : 25. 양원역 앞에서 도로(망우로87길)를 가로지른 다음, 오른쪽(중랑캠핑숲 방향)으로 간다.
▼ 양원역 맞은편에 있는 ‘서울씨티교회’ 담장. ‘자넷 현(Janet Hyun)’의 그림으로 도배를 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표현주의 화가이자 프로페틱 아티스트(Prophetic Artist, 예언적 예술가)이다.
▼ 10 : 27. 50m쯤 진행했을까 ‘중랑캠핑숲(이정표 : 종점까지 4.3km)’이 반긴다. 가족단위 피크닉과 청소년 문화를 주제로 한 생태공원이다. 도심에서의 뛰어난 접근성이 자랑거리로 꼽힌다.
▼ 5만4천 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에 건강한 숲을 주제로 한 가족캠핑장, 어린이놀이터, 나들이마당, 숲속도서관, 생태학습존 등이 조성되어 있다.
▼ 어린이 놀이터. 물놀이장도 함께 들어서 있었다.
▼ 가족캠핑장 쪽으로 올라간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심형 오토캠핑장으로 평일 퇴근 후에도 가볍게 방문해 캠핑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텐트 설치가 가능한 캠핑 사이트와 장비 없이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지캠핑(Easy Camping) 옵션이 마련되어 있다.
▼ 10 : 36. 언덕 위 삼거리(이정표 : 종점까지 4.0km)에서 왼쪽으로 간다. 고개를 넘으면 ‘가족캠핑장’. 탐방로는 ‘망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탄다.
▼ 과수원 단지를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산길이 시작된다. 포장길이라서 신선한 맛은 떨어지지만.
▼ 조금 더 굵은 능선으로 올라섰다. 이정표(종점까지 3.8km)가 왼쪽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전망대가 있다며 잠시 들렀다가란다.
▼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나아가는 길은 무척 고왔다.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폭신폭신한데다 경사까지 없는 것이다. 산책삼아 걷다보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겠다.
▼ 10 : 40. 그 끄트머리에 데크 전망대가 있었다. 정자와 평상, 벤치를 놓고 ‘아카시아 쉼터’라는 이름표까지 떡하니 붙여놓았다.
▼ 난간에 서자 신내동 아파트단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 10 : 44.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그러자 ‘도토리쉼터’가 공부도 할 겸해서 잠시 쉬어가란다.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등 생김새는 비슷비슷하지만 구분이 가능하다나?
▼ 탐방로는 참나무로 가득한 능선을 따라간다. 조금 전 배운 상식을 바탕으로 참나무를 구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어설픈 상식으로는 나무의 생김새와 안내판에 적힌 특징들을 Matching시킬 수가 없었다.
▼ 10 : 50. 신이 내렸다는 ‘신내암(神內岩)’. 산의 신령한 기운이 서려 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신성시되어 왔단다.
▼ 10 : 52. ‘망우로91길’로 내려서니 도로변에 커다란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하나 더. 구리시와의 경계가 가까운지 이정표(종점까지 3.3km)가 ‘구리둘레길’과 함께 쓰고 있었다. 구리둘레길 안내도도 눈에 띈다.
▼ 10 : 54. 잠시 후 망우로(국도) 위에 놓인 ‘육교’를 건넌다.
▼ 다리 아래로는 왕복 6차선의 ‘6번 국도’가 지나간다. 인천역에서 시작 서울·구리·남양주·양평·횡성·평창을 거쳐 강릉시 연곡교차로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횡단한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회전교차로. 문자조형물이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 이후부터는 ‘사색의 길(망우순환로)’을 따라간다. 과거 공동묘지였던 공간을 울창한 숲속 산책로로 탈바꿈시켰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 11 : 01 – 11 : 15. 중랑 망우공간. 망우역사문화공원 내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자 공원의 거점 역할을 하는 Landmark이다. 단순한 관리동을 넘어 방문객들이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들을 기릴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 열린 문화·전시 공간인 1층 미디어홀에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약력과 공원에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위인들의 이름을 나열해 놓았다. 공원을 축소시킨 미니어처도 눈에 띈다. 주요 시설은 물론 위인들의 묘소 위치를 시각적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 안중근 의사 흉상. 신내동 성당에 세워졌던 것을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새롭게 정비되면서 이곳에 잠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기리고자 이전 설치했단다. 참고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한 채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 가묘(假墓)가 있을 뿐이다.
▼ 2층 전시실에서는 한용운·이중섭·박인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참고로 2026년은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이자 이중섭 탄생 110주년 및 서거 70주기, 박인환 탄생 100주년 및 서거 70주기를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삶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 불꽃같은 집념과 숭고한 지조로 점철됐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식을 주도했으며,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절에는 일부 대표들이 유약한 모습을 보이자 호통을 치며 기개를 북돋우기도 했다. 친한 벗이었던 최남선, 이광수 등이 변절하자, 길에서 만나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가 알던 사람은 이미 죽었다’며 인연을 끊었을 만큼 지조에 엄격했다.
▼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전쟁 직후의 황폐한 폐허 속에서도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명동 거리를 누비며 도시적 고독과 시린 낭만을 노래하던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 시인이다.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문화예술인들의 단골집 명동 ’은성주점‘에서 지었다는 ‘세월이 가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아내를 향한 애틋한 순애보로 점철된 삶을 산 인물이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예술적 혼을 불태웠으며,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 11 : 15. 전시관을 빠져나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 몇 걸음 걷지 않아 만나는 ‘망우문화마당’에서는 Busking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무명가수들이었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솜씨만큼은 여느 유명가수들에 뒤질 게 없었다. 열 명 남짓의 청중이 전부인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 곳곳에서 ‘사잇길’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과거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리며 어둡고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던 공간을 지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산책로로 정비하면서 탄생했다.
▼ 사잇길은 경계를 허무는 ‘사이’의 길이다. 이름 그대로 무덤과 무덤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 과거와 오늘의 사이를 걸으며 역사와 인생을 사색하고 경계를 넘나든다는 인문학적 의미를 담았다.
▼ 11 : 19. 박인환 묘역 입구.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시들은 아직도 시린 낭만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 독립운동가 서동일(徐東日, 1893-1965) 선생의 묘역 입구. 일제강점기 중국 북경을 중심으로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다물단(多勿團)’ 등에서 활약하며 무력 독립운동과 군자금 모집에 헌신한 인물이다.
▼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이끌어간 유명인사 80여 명이 잠들어 있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반 시민의 묘도 7,000여 기에 이른단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말자. 기회를 얻지 못했을 따름이지 개개인은 여느 유명인사에 뒤지지 않을 능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 이중섭 화백과 독립운동가 오재영(吳哉泳, 1897-1948) 선생은 입구를 같이 쓰고 있었다. 오재영 선생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첫 번째 무장 투쟁이었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사건을 막후에서 지원한 숨은 조력자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1903-1950) 시인의 묘역은 직접 둘러봤다.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순수 서정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 지자체는 지역상권 마케팅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시설 현대화로 쾌적한 쇼핑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동원골목시장’에 들렀다 가란다.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시장의 위치를 담은 지도까지 그려 넣었음은 물론이다.
▼ 종점인 깔딱고개 근처에서는 ‘사가정시장’ 안내판으로 바뀐다. 그게 기억에 남았던 필자 부부가 트레킹 후 사가정시장을 들러봤으니 마케팅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 제이레빗(J Rabbit)의 대표곡 ‘좋은 일이 있을 거야’는 지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메시지다.
▼ 11 : 25 – 11 : 37. ‘사색의 길’ 장점은 곳곳에 벤치를 놓아두었다는 점이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영혼의 여백을 되찾기에 이만한 공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필자 부부도 영혼의 여백까지는 아니었지만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국민 강녕탑’이란다. 용마산, 아차산, 망우산 일대를 돌며 산속 쓰레기를 주워 온 최고학 옹이 국민 모두의 평안과 건강(강녕, 康寧)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오랫동안 홀로 쌓아 올렸단다.
▼ 11 : 54. 사색의길 서쪽 구간에 자리한 ‘중랑전망대’에 이른다. 서울 시내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하단에 커다란 태극문양을 그려 넣어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임을 암시해준다.
▼ 원목 데크로 마감된 안정감 있는 2층 구조로 설계되었다. 30인 이상의 관람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식 휴게공간을 만들고, 층별로 전망대를 나누어 다양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난간에 서면 서울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뛰어난 볼거리다. 맨 오른쪽은 불암산, 이어서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이 차례로 솟구쳐 오른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북한산이 우람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불·수·도·북. 45km를 1박2일에 걸쳐 쉬지 않고 오르내리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패산을 포함해 ‘불수사도북(강북 5산)’으로 부르고 있다나?
▼ 다시 길을 이어간다. 그러자 야구인 이영민(李榮敏, 1905-1954)의 묘역 입구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베이브 루스‘라 불리며 명성을 떨친 한국 야구 역사의 원조 스타플레이어이다. 1958년부터 매년 고교 최고의 타자에게 ’이영민 타격상‘이 수여되어오고 있다.
▼ 차중락(車重樂, 1942-1968)은 1960년대 대한민국 음악계를 풍미한 원조 ‘오빠 부대’의 주역이자 레전드 가수이다. 1963년 한국 록의 선구적인 밴드인 키보이스의 리드 보컬로 데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 소문난 역사문화공원답게 산꼭대기 어림까지 공중화장실이 지어져 있었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망우(산)삼거리’가 반긴다. 중랑둘레길·등산로 안내도는 ‘북카페’도 적어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북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 삼거리는 ‘용마산 동행길’의 입구이기도 하다. 보행약자들도 용마산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무장애 숲길이다.
▼ 12 : 10. 용마산 스카이워크. 숲과 도심의 전경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중랑구의 새로운 산책 명소다. ‘하늘 위의 고공 길’답게 160m의 산책로가 최대 10m 높이로 아찔하게 띄워져 있어, 걸을 때 주변 나무들의 상단부와 눈높이를 맞추며 걷는 재미가 있다.
▼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의 산줄기와 도심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하트 모양의 전망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놓았다. 하나 더. 다른 스카이워크들과는 달리 유리 대신 자연 친화적인 목재 데크로 바닥을 깔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 2층 전망공간에서 바라본 풍경. 남산 서울타워를 포함해 봉화산,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산줄기와 서울 시내의 멋진 풍광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 12 : 15. 다시 길을 이어간다. 고도를 232m까지 끌어올리던 산길은 망우산의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다시 고도를 낮춘다.
▼ 12 : 25. 4코스(망우·용마산 코스)의 종점이자 5코스(아차산 코스)의 시점이 되는 ‘깔딱고개 쉼터’에 이르면서 4코스 답사는 끝난다.
▼ 경계 지점임을 알리는 각종 시설들은 깔딱고개로 오르는 계단 초입에 세워놓았다.
▼ 이정표(광나루역 4.6km/ 화랑대역 7.7km)가 접근지점인 사가정역까지의 거리를 1.6km로 적고 있다. 다음 구간(5코스)을 시작할 때 고생깨나 하겠다.
▼ 사가정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서울둘레길은 5코스의 난이도를 ‘중’으로 꼽는다. 길이가 4.6km에 불과하지만 깔딱고개 쉼터에서 아차산(용마산 5보루) 방향으로 놓인 570개의 나무계단을 올라가야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계단까지 합친다면 5코스의 난이도는 ‘상’을 넘어 ‘최상’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 12 : 38. 이름 없는 약수터.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음용은 불가능하단다.
▼ 12 : 52. 사가정공원. 공원 곳곳에 운동기구, 어린이 놀이터(그네, 미끄럼틀), 피크닉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어 가족단위 휴식처로 제격이겠다.
▼ 13 : 02. 서울지하철 사가정역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10.27km를 3시간 20분에 걸었다. 정규 코스는 7.7km지만 사가정역까지의 접근거리와 구경거리를 찾아 헤맨 거리를 보태니 2.6km나 늘어났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마음이 즐거우면 기쁨으로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슬프면 얼마 가지도 못해서 피곤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냥 걸어서 가는 것이고 체력이 받쳐주지만, 마음에 따라 가까운 길도 먼 길을 온 것처럼 힘들고 먼 길도 가까운 길을 온 것처럼 힘들지 않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집사람은 기분 좋은 말로 늘 즐거움을 줍니다. 배려하고 이해하며 나를 챙겨줍니다. 그런 집사람과 함께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0km 넘게 걸었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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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