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고 나뒹굴고 환해지고 외 1편
김도우
지난밤에 왕벚꽃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겨우 봉오리가 맺힌 복숭아나무는 가지째 부러졌고 여러 각도로 부는 바람이 그늘을 날려보냈습니다 얼떨결에 나무를 끌어안은 벤치, 찢긴 나무 속으로 밤이 들이닥칩니다 기우뚱거리다 속수무책 떨어진 열매는 신음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길게 내민 마늘쫑 혓바닥은 뽑아야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습니다 마늘 대궁이 흔들릴 때마다 양기 오른 마늘은 밤을 억세게 휘어 감았고 양파는 타조알처럼 나뒹굴었습니다 밤잠을 설친 기둥이 흔들리면서 지붕은 내려앉았고 숨어있던 뼈들이 수북하게 쏟아졌습니다
어제와 내일이 바뀌었습니다 기울어진 날부터 낮과 밤의 구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바람은 밤새도록 나무를 다그쳤고 어둠은 깊은 웅덩이를 팠습니다 그늘 아래서 키를 높이던 꿈은 식었지만 나무는 더 깊은 흙 속으로 다리를 뻗었습니다 나무 속이 환해져서 다행입니다
별들이 사라지기 전에 남겨야 하는 것
김도우
타프롬 사원은 햇빛만 쏟아내릴 뿐 대답이 없다
숲을 움켜쥔 반얀트리*가 신들을 불러 모은다
나무들이 엉킨 그늘엔
망령들의 웅웅거리는 노래소리 가득하다
잠들지 못하는 새들과
날개 없는 새들이 퍼드득 날아 오르면
검은 양떼들이 피바람 불었던 성전 위로 몰려온다
나는 계속 말을 걸었다
삐걱이는 계단은 힘줄들이 불끈거린다
멈출 줄 모르는 음모론
숨을 헐떡이는 숲은 불빛을 읽지 못했다
크메르 제국을 둘러싼 고사목은 더 이상 불타지 않고
어둠은 알아듣지 못할 주문을 읊는다
뾰족탑을 휘감는 뿌리들의 눈빛은 어디까지 비추는지
주먹을 불끈 쥔 상자는 열리지 않고
밤은 불협화음으로 흔들린다
허공을 타고 오르던 나무들
잎을 매달아 본지 오래다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은 연주는 깃발처럼 펄럭이고
물안개는 살갗을 후벼판다
하늘을 짚고 선 나무들이
서로를 놓지 않는 것은
별들이 사라지기 전에 무언가를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뱅골 보리수나무*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멸치,고래를 꿈꾸다}에서
2020년 애지등단
okmy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