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105]시(詩)에 비친 ‘오수 이야기’(1)
‘천년 오수개’ 조형물 제막식 행사로 <오수개 이야기> 두 편을 썼더니 <오수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인터넷 조회수가 몇 시간만에 300를 넘었으니, 그럴만도 하겠지요. AI에게 물었습니다. ‘오수’라는 지명이 들어가거나 ‘오수’를 소재나 제목으로 한 시(운문)이 있으면 모두 알려주라고 했더니, 대번에 정군수(82세. 1945년생. 임실 지사면 출신) 시인의 <오수의 개>를 선보입니다. 전문을 옮긴다해 크게 어필은 하지 않겠지요.
주인 자던 산기슭은 불바다인데
냇물에 몸을 적셔 불길을 끄고
지쳐 쓰러져 죽은 개야
네가 죽어 썩은 살은 흙이 되고
지팡이 꽂은 자리에 잎이 돋아
느티나무 한 그루 푸르게 서있구나
사람들은 너를 일컬어 의견이라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네 젖은 몸이 꺼뜨린 것은 불길이 아니라
메마른 세상의 차가운 눈빛이었으리니
천 년을 이어온 오수천 굽이마다
네 짖는 소리 바람으로 살아나고
해마다 봄이면 네 붉은 혓바닥 같은
진달래꽃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를 저버릴 때
너는 죽어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지나가는 나그네의 지친 발걸음을
오늘도 그늘 아래 쉬어가게 하는구나
감상 소감이 어떠신지요? 시인은 참 별종입니다. 오수개 설화를 듣고 이토록 멋지게 운문을 구성하다니요? 개의 죽음이 ‘오수獒樹’(개나무)로 부활하여 여전히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준다고 그렸습니다. 또한 유교적 가치의 충절(의견)을 넘어, 미물인 개가 세상을 적시는 ‘사랑’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견이 꺼뜨린 게 ‘뜨거운 불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눈빛’이라고 대비를 시켜놓은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일개 설화를 놓고 아주 훌륭한 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저하고도 창작과정에서 인연이 있는 <오수 사람>이라는 시가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원문을 뒤져 찾아보고 새삼 감상해 봅니니다. 원적(아버지 고향)이 오수면 주천리라는 전주 태생의 중견시인 곽효환님이 쓴 시입니다. 전문을 찬찬히 낭송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경복궁 서쪽 한옥마을 초입 체부동 잔치집 한켠에서
중년의 사내 셋, 초로의 사내 둘이 술추렴을 한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서 왔다는 사람들
나는 전주 사람이고 오수는 아버지 고향이라고 해도
다들 괜찮다고 탁배기 잔 가득 막걸리를 채워준다
잔은 돌고 말도 끝없이 돌며 이어지고 흘러간다
의견(義犬)이 났다는 오수,
봉천리 군평리 오암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머리에 하얀 서리가 앉은,
인생의 반은 벌써 지났고 전성기도 지났을,
초면의 쑥수그레한 사람들이 이내 편안해지는 것은
그들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고향말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흉내 낼 수 없는 그러나 그들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말씨와 억양과 소리의 고저장단 때문일 것이다
내 몸속 깊이 숨어있던 유전자가 울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아버지와 일가친척들이 건너던 철다리는 사라지고
마을의 절반 이상이 빈집이 된 지 오래일지라도
밤 솔찬히 깊어도 도란도란 이어지는 오수 사람들의 술자리
오래 전 돌아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이
사라진 마을의 풍경과 인심이 내내 함께 있었을 게다
나의 기원이 오롯이 들어 있었을 게다
이 시는 또 어떠신지요? ‘의견이 났다는 오수’라는 구절이 오수의 상징성을 확실히 드러내주죠. 아버지의 고향 오수 사람들을 대처에서 만나 ‘몸속 깊이 유전자가 울렁이’는 까닭이 환히 짐작되시죠? 그런 경험도 한두 번 있겠지요. 체부동잔치집이 아닌 오수장터에서 걸죽하게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드시지요. 이 시에 나오는 봉천리는 제 고향이구요. 오암리와 군평리는 오수중-전주고-서울대 경제학과와 국사학과를 나온 박종덕과 조운찬의 고향입니다. 10여년 전 분기별로 한번씩 만나 친목을 다졌는데, 어느날 나타난 시인이 이렇게 멋지게 시로 꾸며 <슬픔의 뼈대>라는 시집을 보내줘 알았답니다. ‘아름다운 인연’은 또 이런 시로 우리를 반기기도 하지요. 곽효환은 대산문화재단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2024년 2월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그해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받을 거라고 정확히 예언한 시인입니다. 그는 한국문학번역원장을 3년간 역임하기도 했지요. 훌륭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