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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이사야 26:1-27:1】
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1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15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18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21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
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핵심메시지】
심기가 견고한 자란, 내 힘으로는 바람만 낳는 것 같은 고난의 밤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반석삼아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그분이 일으키시는 생명을 봅니다.
【말씀 나눔】
새벽에 눈을 뜨면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운 날이 있습니다. 어제 그렇게 애를 썼는데, 오늘 아침 손에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날. 자식을 위해 기도했는데 여전히 그 자리인 것 같은 날. 병원 진단서를 받아 들고 며칠을 울었는데 상황은 그대로인 날. 그런 밤을 지나 새벽 문을 열고 여기까지 걸어오신 분이 계실 겁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밤을 지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이상한 노래입니다. 처음엔 승리를 노래하다가, 중간에는 산고의 고통으로 부르짖다가, 끝에는 다시 부활을 노래합니다. 오늘 새벽, 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며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이 노래는 유다 백성이 아직 앗수르의 위협 아래 있던 시절,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미리 당겨서 부른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곧바로 흥미로운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견고한 성벽 이야기로 시작했던 노래가 3절에 오면 사람의 마음으로 좁혀집니다.
3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여기 나오는 “심지가 견고한 자”라는 표현, 오늘 새벽 우리가 붙들고 가야 할 말입니다. 이 히브리어 단어는 사무크(סָמוּךְ)라고 하는데, 원래 뜻은 “기대어 있다, 떠받쳐져 있다”는 뜻입니다. 심지가 견고하다고 하면 우리는 흔히 스스로 강한 사람, 흔들리지 않는 굳센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원문이 말하는 그림은 정반대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스스로 굳센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에 기대어 있어서 굳세어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기대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어지는 5절~6절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과 다르게 다른 것을 기댄 사람들에 대해 기록합니다.
5절,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절,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여기서 낮아지는 사람은 대단한 악인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가 쌓은 높은 성 위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 성이 자기 힘으로 지은 성벽이든, 평생 쌓아온 신앙의 연조이든, 스스로 만든 안전망이든 상관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성벽이 되어버리는 순간, 본문은 그 성벽이 진토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무너진 성을 밟는 것은 강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와 곤핍한 자입니다. 가난한 자와 곤핍한 자가 갑자기 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높은 성을 흙바닥까지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여기 앉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기대어 있는지를 매일 아침 다시 확인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건강, 자녀, 저축, 신앙의 연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성벽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무너질 성벽입니다.
반석은 오직 하나입니다.
4절,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원문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야–여호와”라고 세 차례 반복됩니다. 이사야는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이름에 힘을 주어 강조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가로수 길을 걸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넘어진 나무들 사이에, 유독 멀쩡히 서 있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그 나무 옆에는 지주목, 그러니까 나무를 붙들어 세워주는 버팀목이 함께 박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한 어린 나무는 스스로 서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버팀목과 함께 심어진 것입니다. 태풍 속에서도 그 나무가 넘어지지 않은 것은 나무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곁에서 붙들어준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스스로 튼튼한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 한가운데서도 여호와라는 버팀목에 기대어 있는 것, 그것이 심지가 견고한 자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문은 갑자기 탄식으로 바뀝니다. 방금 심지가 견고한 자는 완전한 평강을 누린다고 노래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 부르짖습니다.
8절,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절,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이들은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편안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고통을 부르집습니다.
17절,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산고. 이보다 고통을 표현하는 더 정직한 언어가 있을까요? 진통은 진짜입니다.
몸부림도 진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문은 우리 가슴을 무너뜨리는 고백을 합니다.
18절,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그 모든 진통과 그 모든 몸부림의 결과가 결국 바람 한 점을 낳은 것 같았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왜 승리의 노래 바로 다음에 이 탄식을 배치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실수도, 신앙의 흠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짜 신앙의 얼굴입니다. 무관심한 사람은 부르짖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모하는 사람만 밤에 그분을 찾다찾다 지쳐도, 아무 열매도 못 본 채로 “바람을 낳은 것 같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새벽, 여러분 가운데 그런 고백을 안고 앉아 계신 분이 계실 겁니다. 그 고백은 여러분의 신앙이 약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랜 가뭄으로 밭이 쩍쩍 갈라지고, 심어놓은 씨앗마저 다 말라버린 것 같은 여름이 있습니다. 농부는 그 밭을 보며 “올해 농사는 다 끝났다” 하며 고개를 떨굽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하룻밤 쏟아지고 나면, 죽은 것 같던 그 밭에서 새순이 올라옵니다. 씨앗은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슬과 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18절, “바람을 낳은 것 같다”는 그 고백이 꼭 그 갈라진 밭과 같습니다. 아무것도 자랄 수 없어 보이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를 향해 본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19절,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18절은 인간의 한계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산고를 겪었지만 구원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계 앞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리라.” 사람이 만들어내지 못한 생명을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여기 한 단어를 집중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절의 “티끌”이라는 단어는 5절에서 높은 성이 낮아져 떨어진 “진토”와 원문에서 정확히 같은 히브리어 단어, 아파르(עָפָר)입니다. 인간의 높음도 결국 이 먼지에 이르고, 죽음도 우리를 이 먼지 속에 눕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먼지에서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겸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죽음이 삼킨 그 자리까지 친히 찾아오셔서, 거기서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서를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선언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야 명령이 옵니다.
20절,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만약 순서가 바뀌었다면, 이것은 그저 살아남으라는 생존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약속을 들었다고 모든 고난이 곧바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잠깐 숨어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기다림은 끝을 모르는 피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일어나실 것을 아는 사람의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27장 1절,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27장 1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거대한 원수조차 여호와의 칼 앞에서는 잠잠해질 존재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 그는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산고 같은 밤을 지나며 “저는 바람을 낳은 것 같습니다” 하고 정직하게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 한 분께 기대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새벽 눈을 뜨셨을 때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우셨던 분, 손에 남은 게 없는 것 같아 이 자리까지 힘겹게 걸어오신 분,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몸부림이 정말 아무것도 낳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었던 그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무너져 누운 그 진토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 아니라 당신의 손으로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지금 견디고 계신 그 시간은 여러분의 셈으로는 길지만, 하나님의 셈으로는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강해지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이 새벽, “저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고 앉아 계신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심지가 견고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시요, 진토에 누운 자를 일으키사 노래하게 하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이 새벽, 무거운 마음으로 눈을 뜨신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사, 우리로 심지가 견고한 자, 마침내 깨어 노래하는 자 되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어제와 오늘, 나는 무엇에 기대어 하루를 버텼습니까?
② 최근 “바람을 낳은 것 같다”라고 허망함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때 내 마음은 어땠습니까?
③ 그 무력함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은 적이 있습니까?
④ 건강, 재정, 관계, 신앙의 연조 중에 나도 모르게 나의 성벽으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⑤ 지금 내가 견디고 있는 기다림의 시간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잠깐”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까?
⑥ 오늘 하루, 나의 심지를 하나님께 다시 기대어놓기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입니까?
⑦ 이 새벽,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은 나의 진솔한 고백은 무엇입니까?
【추천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은혜의 찬양】
은혜와 평강: https://youtu.be/3pBqJw5S1HI?si=WwH6QUfziE3vnZcw
【새벽예배 영상】
https://youtube.com/live/o8srYJANDx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