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마르다
생몰연대: 미상
주소: 이스라엘 베다니 마을, 이후 프랑스 따라스꽁 마을
직업: 가정주부, 평신도 선교사
가족관계: 오빠 1명(나사로), 여동생 1명(마리아)
1. 마르다의 행적
마르다는 베다니 마을에 사는 한 여인으로서 예수님과도 친척으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성경에 세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하여 대접한 일(눅 10:38~42), 한 번은 병들어 죽은 오빠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되살리시는 때(요 11:1~44)였다.
마지막으로는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셔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르셨을 때(요 12:1~8)였다.
그 중에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하여 대접한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예화로 드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마르다는 동생인 마리아와 비교 대상으로서 등장하는데 예수님께서 집에 오셨을 때 동생인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에 열중하는 반면 그녀는 예수님을 잘 대접하기 위하여 이것저것 준비하고 분주하였다.
바쁘게 혼자 움직이던 마르다는 결국 예수님께 자기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고 동생인 마리아에게 자신을 도와주라고 말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여러 가지 일로 근심하지 말고 한 가지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며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신다.
이 후 마르다는 오빠인 나사로가 병에 걸렸을 때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급하게 모셨고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사망하여 장사된 지 나흘 째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고 결국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키시는 기적을 나타내 보이신다.
나사로의 부활 이후 마르다의 행적은 성경 속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과 함께 나사로를 죽이려고 모의함에 따라(요 12:9~11) 예수님의 십자가 승천 후 자신들을 죽이려는 대제사장의 무리들을 피해 다른 지방 혹은 타국으로 이주하였으리라고 추정된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초대 교회가 창건된 후 많은 성도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해외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대열 속에 마르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당시 로마의 영역이었지만 박해가 덜했던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지방으로 이주해 온 마르다는 여전히 이스라엘에서처럼 살림을 하고 기도와 복음 전도에 힘쓰며 검소하게 살았다.
어느 날 그녀가 살던 지방의 큰 늪에 용이 등장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독을 뿜어 물을 오염시키는 등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르다를 찾아가 그녀가 믿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 용을 물리쳐 줄 것을 부탁했고 살림과 전도 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마르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을 위해 용이 사는 늪가로 나갔다.
용 앞에 선 그녀는 늘 하던 대로 담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고 살기등등하던 용은 입을 다문 채 마르다의 발치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마르다가 용을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 마을로 끌고 오자 마을 사람들은 용을 불태워 죽였고 그 마을 모두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용을 물리친 성녀로 추앙받게 된 후에도 마르다는 여전히 딱딱한 빵으로 만족하며 겸손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였고 그 마을은 마르다가 용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며 그 용의 이름(타라스크)을 따서 따라스꽁이라 불리게 되었다.
2. 마르다의 믿음
흔히 우리는 마르다를 예수님이 마리아와 비교하신 것으로 인하여 마치 그녀가 신앙적인 오류를 범했고 심지어는 신앙인이 멀리해야 할 자세, 성도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마인드의 전형으로까지 오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믿음을 실천할 줄 알았으며 당시의 누구보다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한평생을 빛 가운데 거하였던, 살아있는 참 믿음을 가진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공생애 당시의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과 친척들, 심지어 가족들에게조차 배척당하고 존경을 받지 못하셨다.(막 6:4)
예수님의 친척이자 친구였던 마르다는 예수님의 친지들 모두가 예수님을 배척하고 멀리할 적에 유일하게 예수님을 섬기고 따랐던 이였고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마르다와 그의 오빠를 아끼고 사랑하셨기에(요 11:5) 심지어 나사로를 ‘친구’라고 부르신 것이다.(요 11:11)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마르다의 급보를 전해 듣고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 분 자신이 성자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한 인간의 죽음 앞에 눈물까지 흘리셨다.(요 11:35)
마르다의 신앙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고백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뛰어나가 예수님을 초대하였다.(눅 10:38)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으로 예수님을 대접하고, 무엇으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할까 고민하며 분주해 했다.
이것은 영접 후 한 단계 더 성숙하여 믿음을 실천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마르다의 적극성은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았고 나사로가 사망했을 때 또다시 달려 나가 예수님을 맞아들였으며(요 11:20) 나사로의 부활 후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할 때도 가만히 있지 않고 거들었다.(요 12:2)
이는 우리가 흔히 바람직한 예표로 생각하는 동생 마리아의 태도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집에 오셨을 때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 듣는데 열중하였는데 만약 마르다가 뛰어나가 예수님을 모셔오지 않았다면 과연 마리아가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까?
나사로가 사망하여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에도 마르다는 나가 맞았으나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기만 하였다.(요 11:20)
마리아가 예수님께로 나와 나사로의 부활을 본 것도 마르다가 그녀를 불렀기 때문이었다.(요 11:28)
언니에게 이끌려 나사로의 부활을 지켜본 후에야 마리아의 믿음은 성장하였고 마침내 그녀 스스로 예수님께로 나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음으로써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요 12:3)
이상으로 볼 때 참으로 마르다는 육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든든한 맏언니로서 동생 마리아를 참된 신앙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마르다의 진가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오빠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서 울며 슬퍼할 때에 마르다는 조금의 동요 없이 예수님께 '주께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안다.’(요 11:22)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나사로가 곧 살아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앞서 있었던 백부장의 믿음(눅 7:1~10)과 비견되는데 그의 경우 병든 하인이 낫게 되리라는 믿음이었으나 마르다의 경우 죽은 오빠가 부활하리라는 믿음으로써 비교할 수 없는 큰 믿음인 것이었다.
또한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의 때 다시 살아날 줄을 아나이다.’(요 11:24)라는 고백을 함으로 자신이 가진 재림 대망의 신앙을 예수님께 증명하였다.
그녀의 믿음에 감복한 예수님은 그 유명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6)는 약속을 하여 주신다.
이에 마르다의 대답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였다.
성경 전체를 조감해 보아도 예수님을 향해 이러한 고백을 한 사람은 사도 베드로 외에 오직 마르다 뿐이었다.
이러한 마르다의 참된 믿음 앞에 예수님은 나사로의 부활이라는 위대한 기적으로 응답하셨고 그녀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은 크게 드높여 질 수 있었다.
3. 총평
마르다는 평범한 여인에 불과했으나 진실로 이 땅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지녀야 할 가장 이상적인 신앙의 표본을 모두 보여 주었다.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며 예수님을 찾았으며, 영접한 후에는 무엇으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까 고민하고 행동함으로써 실천하는 살아 있는 믿음을 드러내 보였다.
또한 받은 은혜를 혼자 누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동생을 이끌어 줌으로써 믿은 후 전도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으며, 현세에 그치는 믿음이 아닌 마지막 날 이후 부활의 때를 바라보는 재림 대망의 신앙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믿음 앞에 예수님은 새 생명과 부활을 약속하셨고 나사로의 부활을 보여주심으로써 증명하셨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과 마르다가 나누었던 대화가 어느 새 우리의 마음 속에 들려오는 것 같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집필자 : 계시탐정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란 대목은 못 봤습니까? 프랑스 따라스꽁 지방에 전해오는 전승입니다. 마르다가 거기 살았으니 그 동네에서 그런 전설이 전해지는 것이지...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31 06:3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31 07:09
덕이 되지 않는 댓글은 삭제하였습니다.우리님들께 부탁드립니다.^^댓글 올리실때에는 자기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온유함으로 댓글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서로 감정이 섞인 댓글들을 보면 제가 가슴이 조마 조마 하기 때문이며 그런 댓글을 읽으시는님들께서도 마음이 심히 불편하시기 때문입니다.^^예쁜 댓글 부탁드립니다.^^마라나타
마리아와 마르다 얘기는 많은 설교에 등장하는데..
보통이 이 시대 교인들 마르다 처럼 분주히 일하지만 말고
마리아처럼 주님과 관계를 가져라 라는 설교인데..
이글을 통해 마르다의 믿음 또한 컸다는 것을
보게 되네요 ㅎㅎ
마르다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 자세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롭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