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세계 최고의 미남으로 손꼽히며 뭇 여성을 설레게 했던 알랭 들롱이 88세가 됐다. 프렌치 시네마의 황금기를 빛낸 스타의 말년이 피곤하다. 늙고 병들어 사실상 은둔하고 있다. 영국 BBC는 르몽드 기사를 인용해 들롱의 세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받기 위한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전했다.
르몽드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단다. "새들은 죽기 위해 몸을 숨긴다. 성공한 유명인(big beast)들은 프로젝터의 온갖 빛 앞에서 그렇게 한다." 프랑스어 grand fauve는 영어 big beast로 옮겨지는데 우리말로는 성공한 유명인을 의미한다. 비극적인 그의 말년은 그리스 비극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고 했다. 분열된 가족, 한때 영광스러운 축제를 즐겼던 맨션은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본인의 불안정했던 과거 악령이 발목을 잡고 있다.
파리 마치와 피플 같은 매체들은 들롱의 영화 경력, 사생활 경과 등을 자세히 다뤄왔다. 그는 두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뒀다. 아들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끝내 아버지로부터 친자로 인정받지 못하다 지난해 세상을 등졌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세 자녀들은 각자 매체 인터뷰를 통해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송사를 다짐하고 몰래 상대 얘기를 녹음해 폭로하는 등 온갖 구설을 쏟아냈다. 여배우 나탈리 들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앤서니 들롱(59)은 파리 마치 인터뷰를 통해 배다른 여동생 아누슈카(33)가 아버지의 인지검사 결과를 숨기려고 거짓말과 조작을 일삼는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모델 로살리에 반 브리멘과 낳은 딸 아누슈카는 변호사를 통해 성명을 내 들롱이 "늘상 나를 노망했다고 말하는 아들의 공격성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한다"고 반격했다. 둘은 현지 TV에 더 많이 등장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둘째 아들이자 막내 알랭 파비엥(29)은 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이복 형 편을 들었다. 아누슈카가 아버지 귀에 앤서니 험담을 수액 떨어뜨리듯 속닥이고 있다며 몰래 녹음한 내용을 공개했다.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고 프랑스 언론들도 병명을 밝히지 않은 질환으로 위중한 상태에 처하기도 했던 들롱의 의료 처치를 놓고도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13일 법원이 지명한 의사가 들롱을 진찰했는데 그의 진단 결과를 놓고도 자녀들끼리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싸움과 갈등을 부추기는 또 한 사람이 있다. 히로미 롤린(66)이란 전직 가정부 겸 사랑의 동반자다. 본인이 그렇게 주장한다. 지난해 자녀들이 모처럼 합심해 그녀를 쫓아냈다. 해서 그녀는 자녀들이 들롱이 먹어야 할 약을 먹지 않게 해 들롱의 목숨을 위협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일이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120km 떨어진 도치(Douchy)의 숲속에 들롱이 세운 맨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들롱은 막내아들 파비앵과 함께 살고 있으며, 다른 자녀들이 이따금 찾아와 만난다. 대중에게 완전히 차단된 그곳은 파비앵에 따르면 "모든 것이 망가져 있으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하는 모든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약해빠지고 가끔 혼동하긴 해도 들롱은 여전히 총기를 잃지 않았으며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틀어쥐고 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인 현재를 만든 것은 모두 본인의 과거로 말미암은 일이라고 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말썽으로 점철돼 있어 아들들과도 제대로 지내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1935년 파리 외곽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네 살 때부터 양부모에게 맡겨졌다. 반항끼 넘치는 아이였다. 해군에 자원해 인도차이나 전선에 배치됐다. 지프를 훔친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일도 있었다. 1950년대 후반 파리로 돌아와 창녀들이나 갱단원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그러다 외모 하나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르몽드 기사 중 한 구절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의 자아는 엄청날 정도로 불확실했기 때문에 달걀을 깨뜨리기 위해선 아들들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로서 두 아들에게 매우 엄하게 대했는데 두 아들 모두 마약, 총기, 법률에 얽히게 했다.
아누슈카에겐 완전히 다르게 대했다. 아누슈카는 2008년에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다른 여인보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셨다."
앤서니가 세상에 태어나기 2년 전인 1962년에 얻은 아들이 있었다. 독일 록스타 니코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란 록그룹 멤버였다. 본명은 아리 볼로뉴.끝내 들롱은 그를 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들롱의 어머니가 아들 소생이라고 믿고 길렀다. 지난해 파리에서 죽었는데 사망 원인은 약물 과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들롱은 유언장을 작성해 공증까지 마쳤는데 유산의 절반을 아누슈카에게, 나머지 절반은 두 아들이 나눠 갖도록 했다. 이것도 실은 뭔가 깔끔하지 않긴 하다.
그런데 BBC는 이렇게 혈육끼리 다투는 것이 돈 때문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들은 사랑, 라이벌 의식, 그리고 과거를 놓고 다투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옳은 진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