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서양의 국가들은 오밀조밀한 국가들이어서 강력한 기사단과 보병대를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 말. 이건 헝가리와 몽골의 전투 양상을 기록해놓은 디펜스 코리아의 글만 보아도 알겠습니다만은, 일단 믿을만한 글에서 발췌하지요.
'13세기 후반 이전에는 서구의 어떤 지휘관도 보병이 기병과 공조할 때 촉발될 수 있는 전술적 잠재력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승부를 가름하는 돌격부대를 보병으로만 편성한다는 것은 더구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레그나노 전투와 십자군 원정시 배운 교훈이 있었는데도 그러했다.' -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작. 전쟁의 역사. 284p -
강력한 보병대를 갖출 수 없다는 글에 대한 납박.
'보병은 경시되었고, 13세기 중엽 이전의 어떤 서구 지휘관도 십자군 원정의 교훈을 깨닫지 못했다. 그 교훈이란, 면밀한 공조체계를 갖추면 보병과 기병의 전술적 총합은 각자 행동할 때의 산술적 합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북부 이탈리아에는 일부 뛰어난 보병이 있기는 했다. 플랑드르의 창병은 월리엄에게 고용되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싸웠고, 또 1214년에는 필리프 오귀스트 휘하에서 부빈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들은 13세기에 여러 전투에서 줄곧 승리를 거두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작. 전쟁의 역사. 271p-
서양의 주력 병종인 중장기병과 몽골의 궁기병의 싸움에서, 중장기병이 궁기병에 약한 병과라서 졌다는 내용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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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동,서 대결인 마라톤 전투로부터, 동양의 궁기병대와 서양의 중장보병 및 중장기병대는 수없이 격돌해 왔습니다. 중장보병과 중기병을 앞세운 알렉산더 대왕이 궁기병 위주로 편성된 다리우스의 페르시아 제국을 격파하는 가 하면, 파르티아의 궁기병대가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의 중장보병을 격파했고, 로마의 황제 트리야누스가 파르티아군을 다시 격파했습니다. 또한, 훈족의 궁기병대가 로마 및 그 동맹국들을 압도했지만, 결국 그들의 행보도 게르만,로마 연합군에게 저지당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동로마의 발레사리우스가 아랍군을 격파하는 가 하면, 투르크 군이 동로마를 격파하는 등 일진일퇴를 벌입니다. 미개했던 서유럽군도 항상 궁기병대에게 무력한 건 아니어서, 샤를르마뉴 대제는 에스파니아에서 북상하는 아랍군을 저지하는가하면, 사자심왕 리차드는 이슬람 최고의 명장 살라딘을 상대로 동수를 이루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궁기병대가 중장갑의 병력을 상대로 많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또한 중장갑부대에게 쓴맛을 본적도 많습니다. 13세기에 국한시켜 놓고 보자면, 몽고의 궁기병은 유럽의 중갑부대를 압도했으나, 궁기병대 중장부대의 격돌 역사 전체를 보면, 유목민족의 특기인 궁기병이 항상 중장부대를 압도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십자군 원정 당시, 유럽군은 아랍의 궁기병대의 위력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당시의 유럽군주들은 흔히 알려진바와 같이 바보는 아니어서, 아랍의 궁기병대를 자신의 부대와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즉 ,아랍의 궁기병대를 고용해서 전장에 투입해 본 것이죠. 결과는, 유럽의 중장갑병(중장기병 및 보병)과 궁기병대의 결합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궁기병대의 최대 강점은 기동력인데, 유럽군의 느린 병과들과 결합을 시도하다 보니, 궁기병 특유의 전술인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유럽의 군주들이 궁기병대의 위력을 무시해서, 궁기병이 서유럽의 병과로 승격되지 못한게 아니라, 궁기병은 당시의 유럽전장에서의 적응에 실패해서, 널리 쓰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최대강점인 중장기병이라는 병과를 쉽게 포기하기에는 유럽전장에서의 중장기병의 위력이 너무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장궁이나 석궁은 그 위력에도 불구하고 널리 활용되지 못한 이유는 당시 유럽의 전통적인 기사우대 정책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의 지배계층들이 평민들에게 무시무시한 위력의 무기 즉 귀족군을 저지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 더 큰 이유입니다. 이집트왕조에서 당시의 최첨단 기술(피라미드 건축술같은)들을 지배층이 독점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결론은, 궁기병대가 중갑계열의 병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수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입니다.
- 라니안 판타지 자료실의 아르키메데스님의 글에서 발췌. -
ps. 윗글에 덧붙이자면, 아르키메데스님은 서양의 기사단은 중기병 3단이었고, 몽고의 궁기병은 궁기병 8단이었다. 태권도 3단과 합기도 8단이 붙어서 합기도가 이기면, 합기도가 태권도보다 더 우월한 무술이라고 칭할 수 있느냐? 후에 답하셨습니다. 서양의 기사단은 체계, 조직, 공격력, 전술, 전략 모든 면에서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중장기병의 역사에 3단쯤밖에 되지 않았고, 그에 비해서 몽고의 궁기병은 체계, 조직, 공격력, 전술, 전략 모든 면에서 궁기병의 역사에서 8단에 속한다는 소리지요. 쉽게 말해서 시대상을 따라 발전된 병과의 차이로 서양이 진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전략, 전술, 체계, 조직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옆의 동로마 제국이 수많은 전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서로마 제국에서 부터 알려진 수많은 전술적 혁신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 것도 알지 못했죠.
첫댓글확실히 이당시 유럽군은 이전시대에 비해 낙후된건 당연하죠.로마시대를 지나가면서 분국시대를 이루고 힘이 중심으로 쏠리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건 곧 안정적인 군대유지에 차질이 생기죠.이건 곧바로 총체적인 집단전 훈련에도 차질을 줍니다.이러니 중앙집권 국가와 그렇지 못한 봉건국가들간의 군사벨런스가
극심하게 차이가 나게되죠.카를5세와 술레이만의 전쟁 역시도 그런차이가 난것이 구 봉건세력가들과 상단들을 제대로 휘어잡지 못한 그는 용병들에게 월급을 조달하기 힘들어지고 군대유지가 불분명해 집니다.하지만 술레이만의 오스만 제국은 그렇지 않죠.바로 여기서 집단전의 발전과 전투체계의 발전을 바랄수 있게되는
암흑시대라 칭한것은 그리스-로마에 경도된 낭만주의 시대의 사가들에 의해서지 요즘에는 중세가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암흑기라 해도 적어도 일반 하층민에게는 말기 로마보다는 나은 시대였스며, 신성로마제국이 성립할 즈음이면 중세유럽의 기술은 로마와 맞먹거나 앞서나가는 시점이 되었죠.
카를5세와 술레이만의 전쟁이라. 술레이만의 군대도 예니체리를 제외하면 그렇게 체계적이었다 보기 힘들군요. 그의 군대도 아나톨리아의 여러부족에서 끌어모은 투르크병사와 복속된발칸의 기독교영지에서 끌어모은 군대였겠죠. 모름지기 근대이전에 대군을 징집한 나라치고 통일된 전력으로 군대가 이루어진 나라는 없죠.
통일된 전력이라기 보다 그들이 집단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경제권과 정치세력을 하나로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예를든것입니다.당연히 이 차이는 상당히 큰 차이인데 이걸 그냥 자기뜻하고 안맞는다고 넘겨 말하면 실수하는 겁니다.카를5세가 내부적인 협조를 못 얻어낸것과 그렇지 않은 술레이만의 차이는
그런 내부 결집의 요소부터 이뤄내야 진정 훌륭한 군주라고 할수 있습니다.거기서 재화를 얻고 군대를 유지하고 보급을 받는데 말이죠.더군다나 오스만 군대의 장비나 병력이 값싼 투르코만족이나 야야군대 같은것도 아니고 화포에서 화승총까지 다양하게 무장된 군대인데 이걸 유지하려면 어때야 겠습니까.
우선은 윗글의 님이 두번째로 단글을 보십시오. 두번째는 보병대에 대한 이야기인데 네델란드와 이탈리아는 상업이 발달한곳입니다. 이는 자유시민계층이 발달했다는말입니다. 이는 기병중심의 장원제 대신 시민계급의 보병이 강력하다는말이됩니다. 세번째는 절대적인 병종은 없습니다. 전 중기병이
쓸모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기병을 양산하는 제도인 기사제가 전략전술을 묶는결과가 나온다는것을 말한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휘관을 탓하기보다는 제도를 탓해야지 지휘관이 무능하다고 하면 안된다는것입니다. 또한 그제도란것도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만든것이기때문에 좋은것 나쁜것이
마지막으로 기사라는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무술훈련을 한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말타는것과 칼쓰는것 그리고 갑옷에 의해서 상대방무기를 튕기는것을 어렸을때부터 몸에 배게 훈련받습니다. 그러나 싸우는것빼고는 할줄아는것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롱보우맨 장궁병은 보통 5년이상의 훈련이 있어야 쓸만하
고 보통 10년 20년정도의 수련을 해야 뛰어나다는 말을듣게되는 병과입니다. 다시 궁기병이 되면 활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하고 말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합니다. 이들을 육성한는데는 두가지중하나여야합니다. 하나는 이들이 그렇게 살아야하고 둘은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하고 그들을 부양할수있어야
레판토 해전이...육전이었나요? 더구나 레판토에서 배에탑승해 싸운 해군 병력 대부분은 예니체리나 육군들입니다.그리고 카를5세가 제대로 병력 유지가 힘들었다는게 이 상단들을 그의 세력하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것이라는 문제입니다.그리고 레판토 해전이 지중해 동맹과 오스만 혼자서 싸운것인데
seawolf/지금 언급하는 것은 몽고의 전략전술로서 가늠할 수 있는 '전투지식'의 보유여부가 서양의 전략전술로서 가늠되는 '전투지식'보다 뛰어나고, 그에 따라서 서양의 지휘관들은 '무식'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주된 논제입니다. 몽고 궁기병의 생산조건이나 배경은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seawolf/ 기사제도로 인해서 전략전술이 퇴보되었으면 그것은 곧 무식한 것입니다. 무식은 지능이 나쁘다는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말그대로 정보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주 좋은 수재라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그건 무식입니다. 무식과 지혜롭지 않음을 아직도 혼동하고 계시는군요.
.......무식의 뜻은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이란 정보입니다. 대학교수도 노가다같은 일에는 '무식'할 수 있는 일이고 스티븐 호킹도 '지렁이의 생태' 에는 무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범위를 정해주어야지요. 그들은 약초에 대해선 우리보다 박실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 대해선 무식할 수도 있
습니다. 정말로 미치겠군요. 그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는게 무식한 거냐구요? 아직까지 무식의 의미를 이해 못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몽고는 전략 전술적으로 뛰어났습니다. 그러면 전략 전술적으로 '유식'했던 겁니다. 서양은 몽고보다 뒤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전략 전술적으로 '무식' 한 겁니다. 이해가 안 가십니까?
텍스트는 얼마든지 주관적 해석이 가능한 매체이며, 이것은 확대해석하면 모든 논지가 비약또는 왜곡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의미로 보아도 제가 끝까지 설명한 '무식' 이란 단어에서 서양 사람들이 저능아라느니 우둔한 족속이라느니 같은 해석은 보이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타자의
흑태자 에드워드/ 그리고, 본인은 동양이 서양보다 화포 발달이전까지는 뛰어났다... 라는 의견에도 반대하는 편 입니다. 특정면에서 뛰어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문화를 평가하는건 힘들다고 생각하는 쪽이거든요. 지금은 몽고와 당시 서양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따라서 전략, 전술에서 몽고가 더 뛰어났다고
몽골의 서구침공도 그 세부적인 면모에서는 그렇게 대단하게 싸운 것도 아니죠. 땅바닥에 떨어진 키예프의 권위, 교황과 싸우기 바쁜 프리드리히 2세라는 대항세력에 대해 바투라는 아주 뛰어난 지휘관에 대군 10만을 이끌고 처들어 왔으니. 특히 하자르 인이라는 유목민과의 싸움에 익숙한 러시아의 분열은 치명적이었죠.
대충 서로의 의견은 이해한것같고 저도 피곤하니 그만두지요. 제가 처음에 의미를 잘못이해하고 흥분한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는것과 잘못된단어를 사용하신것은 인정하셔야합니다(무지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문명과의 만남입니다. 이때 무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것
에드워드/ 헤. 저야 서양 문화사를 총괄할 정도의 지식 깊이가 없어서-_-a; 어디까지나 전략,전술에 중점을 두고 있지요. 그런 점에선 월리엄 빼고는 맘에 드는 놈이 없더라구요. SEAWOLF/ 무식이라는 단어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군요... 흠. 긴 시간 별 영양가도 없는 글에 반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확실히 이당시 유럽군은 이전시대에 비해 낙후된건 당연하죠.로마시대를 지나가면서 분국시대를 이루고 힘이 중심으로 쏠리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건 곧 안정적인 군대유지에 차질이 생기죠.이건 곧바로 총체적인 집단전 훈련에도 차질을 줍니다.이러니 중앙집권 국가와 그렇지 못한 봉건국가들간의 군사벨런스가
극심하게 차이가 나게되죠.카를5세와 술레이만의 전쟁 역시도 그런차이가 난것이 구 봉건세력가들과 상단들을 제대로 휘어잡지 못한 그는 용병들에게 월급을 조달하기 힘들어지고 군대유지가 불분명해 집니다.하지만 술레이만의 오스만 제국은 그렇지 않죠.바로 여기서 집단전의 발전과 전투체계의 발전을 바랄수 있게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것이죠.당연히 돈이 있는 집안의 사람들만 좋은 장비를 갖추고 군사훈련을 하니 집단전이고 총체적 전술이고를 바라겠습니까.이러니 각각 개인이 하나의 발사체일수 밖에요. 바로 이게 문제였던 것이죠.
그러니 '무식'했다는 것인데... 논지가 잘 통일이 안 되네요. 게다가 제가 몽골 욕을 했다는 해괴한 주제까지 새로 꺼내시질 않나...쯥. 잠시 소강상태군요.
아, 그것보다 기사 썼습니다. 밀린 전투가 많네요. 쿠워워웍.
그렇죠..서양사가들도 서유럽시기를 암흑이라고 부른것도 그 이유에서라... 흐흐흐 잘 읽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런데 그나저나 리그전이 어서 활성화 됐으면 좋겠네요.ㅠㅠ;
징기스칸 도래이전에 그들의 전법이 비판받을 만한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은 없습니다. 천성적으로 오만한 그들이 뉘우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지 무식이라고 볼 수는 없군요. 그리고 집단의 논지를 통일이 안된다는 식으로 개인의 의견에 맞출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암흑시대라 칭한것은 그리스-로마에 경도된 낭만주의 시대의 사가들에 의해서지 요즘에는 중세가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암흑기라 해도 적어도 일반 하층민에게는 말기 로마보다는 나은 시대였스며, 신성로마제국이 성립할 즈음이면 중세유럽의 기술은 로마와 맞먹거나 앞서나가는 시점이 되었죠.
카를5세와 술레이만의 전쟁이라. 술레이만의 군대도 예니체리를 제외하면 그렇게 체계적이었다 보기 힘들군요. 그의 군대도 아나톨리아의 여러부족에서 끌어모은 투르크병사와 복속된발칸의 기독교영지에서 끌어모은 군대였겠죠. 모름지기 근대이전에 대군을 징집한 나라치고 통일된 전력으로 군대가 이루어진 나라는 없죠.
그리고 어쨌든 그런 강대한 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또한 제국의 노른자인 이베리아와 플랑드르를 동시에 위협하는 프랑스를 등에 두고, 독일 내부의 신교도와 싸우며 제국을 지킨 카를5세쪽이 군사적으로 생각해서 술레이만-자신보다 열세인 세력을 정복한-보다 낫다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무식'이란 말과 '지혜가 없는' 의 뜻을 혼동하시면 곤란합니다. 지식이 없어도 지혜로울 수 있고 지혜가 없어도 지식은 많을 수 있죠. 저도 혼동하긴 했습니다만-_-; 그래서 계속 '무식'이라는 말로 강조했지요.
에드워드/ 확실한 것은, 중세의 전술적 발달사가 고대에 비해서 극히 뒤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통일된 전력이라기 보다 그들이 집단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경제권과 정치세력을 하나로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예를든것입니다.당연히 이 차이는 상당히 큰 차이인데 이걸 그냥 자기뜻하고 안맞는다고 넘겨 말하면 실수하는 겁니다.카를5세가 내부적인 협조를 못 얻어낸것과 그렇지 않은 술레이만의 차이는
당연히 큰것이죠.오죽하면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레판토 해전에서 그들도 패할수 있는 군대라는 심리적 승리의 요인이 더 컸다고 했겠습니까.
그런 내부 결집의 요소부터 이뤄내야 진정 훌륭한 군주라고 할수 있습니다.거기서 재화를 얻고 군대를 유지하고 보급을 받는데 말이죠.더군다나 오스만 군대의 장비나 병력이 값싼 투르코만족이나 야야군대 같은것도 아니고 화포에서 화승총까지 다양하게 무장된 군대인데 이걸 유지하려면 어때야 겠습니까.
우선은 윗글의 님이 두번째로 단글을 보십시오. 두번째는 보병대에 대한 이야기인데 네델란드와 이탈리아는 상업이 발달한곳입니다. 이는 자유시민계층이 발달했다는말입니다. 이는 기병중심의 장원제 대신 시민계급의 보병이 강력하다는말이됩니다. 세번째는 절대적인 병종은 없습니다. 전 중기병이
쓸모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기병을 양산하는 제도인 기사제가 전략전술을 묶는결과가 나온다는것을 말한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휘관을 탓하기보다는 제도를 탓해야지 지휘관이 무능하다고 하면 안된다는것입니다. 또한 그제도란것도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만든것이기때문에 좋은것 나쁜것이
없다는것이죠. 그건 사람들의 생활방식일뿐입니다. 몽고가 강력한 이유는 그들의 생활방식때문입니다. 그걸 징기스칸이 집단의 힘을 발휘할수있게 만든것이죠.
마지막으로 기사라는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무술훈련을 한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말타는것과 칼쓰는것 그리고 갑옷에 의해서 상대방무기를 튕기는것을 어렸을때부터 몸에 배게 훈련받습니다. 그러나 싸우는것빼고는 할줄아는것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롱보우맨 장궁병은 보통 5년이상의 훈련이 있어야 쓸만하
고 보통 10년 20년정도의 수련을 해야 뛰어나다는 말을듣게되는 병과입니다. 다시 궁기병이 되면 활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하고 말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합니다. 이들을 육성한는데는 두가지중하나여야합니다. 하나는 이들이 그렇게 살아야하고 둘은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하고 그들을 부양할수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제가 오해를 했군요. 몽고를 욕한부분은 제가 잘못읽었습니다. 윗글의 두번째 댓글에서 가로한부분에서 몽고는 낡았다는뜻부분입니다. 전 그래야 몽고사람들이 좋아한다. 몽고사람들이 낡았기때문이다라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_(__)_
레판토 해전이...육전이었나요? 더구나 레판토에서 배에탑승해 싸운 해군 병력 대부분은 예니체리나 육군들입니다.그리고 카를5세가 제대로 병력 유지가 힘들었다는게 이 상단들을 그의 세력하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것이라는 문제입니다.그리고 레판토 해전이 지중해 동맹과 오스만 혼자서 싸운것인데
그 이전에 프레베차 해전처럼 지중해 세력중에 독자적으로 오스만과 싸울경우 이길수 있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시대에 오스만 군의 체계야 말로 진보된 군대요 강군이라는 것입니다.이런것은 서양 사가들도 16세기의 오스만 제국군을 다룰때 유럽의 그 어떤 국가도 이런 체계는 일찍이 없던것이라고 말합니다.
seawolf/지금 언급하는 것은 몽고의 전략전술로서 가늠할 수 있는 '전투지식'의 보유여부가 서양의 전략전술로서 가늠되는 '전투지식'보다 뛰어나고, 그에 따라서 서양의 지휘관들은 '무식'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주된 논제입니다. 몽고 궁기병의 생산조건이나 배경은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seawolf/ 기사제도로 인해서 전략전술이 퇴보되었으면 그것은 곧 무식한 것입니다. 무식은 지능이 나쁘다는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말그대로 정보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주 좋은 수재라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그건 무식입니다. 무식과 지혜롭지 않음을 아직도 혼동하고 계시는군요.
같은자리에서 빙빙도는군요. 기사제도에 의해서 전략전술이 퇴보된것은 필연적이며 그런상황에서 서양세계가 몽고에 진건 당연한결과입니다. 지휘관의 문제가 아니라는거죠. 이게 제 논지입니다.
전 그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는게 무식하다고 할수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치면 저쪽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쪽은 무식한건가요?
무식같은 인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단어는 사용을 자제했으면 하는군요.
.......무식의 뜻은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이란 정보입니다. 대학교수도 노가다같은 일에는 '무식'할 수 있는 일이고 스티븐 호킹도 '지렁이의 생태' 에는 무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범위를 정해주어야지요. 그들은 약초에 대해선 우리보다 박실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 대해선 무식할 수도 있
습니다. 정말로 미치겠군요. 그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는게 무식한 거냐구요? 아직까지 무식의 의미를 이해 못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몽고는 전략 전술적으로 뛰어났습니다. 그러면 전략 전술적으로 '유식'했던 겁니다. 서양은 몽고보다 뒤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전략 전술적으로 '무식' 한 겁니다. 이해가 안 가십니까?
에드워드/ 무식의 사전적 정의만 알고 있어도 이런 지리한 의견 다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만-_-; 많이 피곤하군요.
사전적 정의만 생각했다면 제가 아예 발설하는 일은 없었을것입니다. 무식이란 말은 사람을 얕잡아 볼때도 아주 흔히 사용하는 말입니다. 욕으로 쓰이기도 하죠. 사전적의미만으로 단어의 쓰임에 대해 규정짓는것은 넌센스입니다.
떠돌이객님이 중세서구와 무식을 아주 강조하고 있어서 제가 한 글 적어본 것입니다. 무식이라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은 극단적 표현인것 같군요. 몽골의 전략전술은 시대에 '합당'한것으로 보입니다만. 중세서구의 전략전술은 몽골을 상대하기에는 '부적당'한것이고요.
텍스트는 얼마든지 주관적 해석이 가능한 매체이며, 이것은 확대해석하면 모든 논지가 비약또는 왜곡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의미로 보아도 제가 끝까지 설명한 '무식' 이란 단어에서 서양 사람들이 저능아라느니 우둔한 족속이라느니 같은 해석은 보이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타자의
해석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무식이라는 말은 위에서 끊임없이 설명한 그대로의 뜻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지식이 없다는 뜻의 '무식'이 가장 적절한 단어니깐요. 전략 전술사의 관점에서 보아도 몽고군의 전술보다 서양군의 전술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흑태자 에드워드/ 그리고, 본인은 동양이 서양보다 화포 발달이전까지는 뛰어났다... 라는 의견에도 반대하는 편 입니다. 특정면에서 뛰어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문화를 평가하는건 힘들다고 생각하는 쪽이거든요. 지금은 몽고와 당시 서양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따라서 전략, 전술에서 몽고가 더 뛰어났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로마사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 저로서는, 고대 제국의 빛나는 문명을 송두리째 상실한 중세 서양이 영 탐탐찮을 수 밖에 없네요.
몽골의 서구침공도 그 세부적인 면모에서는 그렇게 대단하게 싸운 것도 아니죠. 땅바닥에 떨어진 키예프의 권위, 교황과 싸우기 바쁜 프리드리히 2세라는 대항세력에 대해 바투라는 아주 뛰어난 지휘관에 대군 10만을 이끌고 처들어 왔으니. 특히 하자르 인이라는 유목민과의 싸움에 익숙한 러시아의 분열은 치명적이었죠.
그리고 로마후기의 타락이라든가 야만화를 표현한 글이나 작품에서 빛나는 고대제국이 사상누각임을 알 수 있었죠. 뿌리가 부실한 나무가 가지만 뻗쳤다고나 해야 할까? 봉건중세가 텁텁하고 세련되지 못해보이기는 하나 근저기반부의 착실한 발전을 봐서 고대보다는 나아보이더라구요.
대충 서로의 의견은 이해한것같고 저도 피곤하니 그만두지요. 제가 처음에 의미를 잘못이해하고 흥분한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는것과 잘못된단어를 사용하신것은 인정하셔야합니다(무지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문명과의 만남입니다. 이때 무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것
은 민감한 사안입니다. 민족 국가 문명을 말할때 이런말은 절대로 사용하면 안되는겁니다) 또한 남을 욕하는것은 쉽지만 그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면 그 사람을 욕하기는 쉽지않습니다. 피곤하게 해드려서 죄송하군요.
에드워드/ 헤. 저야 서양 문화사를 총괄할 정도의 지식 깊이가 없어서-_-a; 어디까지나 전략,전술에 중점을 두고 있지요. 그런 점에선 월리엄 빼고는 맘에 드는 놈이 없더라구요. SEAWOLF/ 무식이라는 단어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군요... 흠. 긴 시간 별 영양가도 없는 글에 반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ㅡ; 대단한 님들이시네요... 존경 스럽습니다... -- __ (꾸벅) 글을 쭉 읽어보니 이런 논쟁이 꼭 나쁘다구만은 할수 없겟네요... 읽는 입장에서는 중세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v
상당히 재미있는 논쟁이였네요. 전략이라기 보다는 문화의 차이를 집고 넘어 가는 멋진 토론이였는듯. 논거로 제시된 과거의 전략들도 참 보기 좋군요. 레포트로 내서 이렇게 쓰는 사람 있다면 무조건 만점 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