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최고의 봄 풍경! 맘∼껏 봄 기지개를 켜고 싶다
2025년 3월 두발로학교는 <남해에서 1박2일>
새해 새봄! 3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 제88강은 경남 남해를 1박2일로 찾아갑니다. '한 점 신선의 섬[一點仙島]'으로 불리는 남해(남해도)는 빛나는 봄 풍경을 간직한 섬인데요. 다랑논에서 마늘이 쑥쑥 자라고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며, 작은 어촌은 쪽빛 바다를 품고 빛납니다. 가천다랭이마을과 홍현해우라지마을, 남해바래길을 걷고, 남해금산 보리암 일출을 감상하며 둘레길도 걸어보겠습니다. 원시어업유산인 죽방렴, 석방렴도 관람하고 이순신장군의 순국성지도 둘러보겠습니다(걷기 난이도는 보통 이하). 봄바람 살랑살랑, 남해의 봄 초대장을 받고, 함께 떠나보시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빛나는 봄 풍경이 한창인 남해 바닷가 마을. 맘∼껏 봄 기지개를 켜고 싶다.Ⓒ다랭이마을
▲가천다랭이마을은 옛 주민들이 산기슭에 한 평이라도 더 논을 내려고 90도로 곧추세운 석축을 쌓았다.Ⓒ다랭이마을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8강, 2025년 3월 15(토)-16(일)일로 준비하는 <여기는 최고의 봄 풍경! 남해에서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조선 시대 대표 유배지 남해
조선 시대의 유배지는 청정 자연을 간직한 곳이다. 당시 대표적 유배지였던 남해는 고맙게도 아직까지 자연친화적이다. 화력발전소나 조선소 같은 시설물을 하나도 받지 않은 남해 주민들의 선견지명 덕분이다. 조선 중기 선비 자암(自庵) 김구의 <화전별곡> 노래처럼 남해는 ‘일점선도(一點仙島)’ ‘산천기수(山川奇秀)’의 땅이다. 자암이 감탄했던 기이하고 수려한 남해의 자연과 독특한 문화를 찾아 떠나보자.
남해 여행은 남해대교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길이 660m에 높이 52m로 웅장한 현수교지만, 굼떠 보이지 않고 날렵하다. 1973년 개통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
남해대교 아래 도도히 물결치는 바다가 노량해협이다. 조선 시대 유배객이 육지를 등지고 저 바다를 건너왔다. <화전별곡>에서 남해를 '일점선도'라 칭송한 자암 김구와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도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노량해협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남해대교와 눈을 맞췄으면 본격적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 보자.
▲남해대교 아래 도도히 물결치는 노량해협을 건너 먼저 만나는 곳은 남해 관음포 이순신장군 유적이다.Ⓒ남해군
먼저 만나는 곳은 남해 관음포 이순신 장군 유적이다.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오른 곳으로, 이락사(李落祠)라고도 불린다. 사당과 유허비를 둘러보고 소나무가 빽빽한 오솔길을 약 500m 지나면 첨망대(瞻望臺)가 나온다. 이곳에서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펼쳐진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면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독려한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유적지 앞 이순신영상관에서는 노량해전을 입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하는 남해바래길 10코스
남해의 수려한 산비탈을 따라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걷는 서정적인 길이 남해바래길이다. ‘바래’는 아낙네들이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갯벌이나 갯바위로 나가 해산물, 해초류 등을 필요한 만큼 채취하는 것을 남해에서 일컫는 말이다. ‘바래길’에는 남해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 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바래로 얻은 해산물을 소쿠리에 담아 왔던 ‘생명의 길’이다. 남해바래길은 남해 전체를 한 바퀴 두르고 있는데, 추천하고 싶은 길은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하는 10코스다.
가천다랭이마을이 가까워지면 마을 입구 전망대에 차를 세우자. 전망대에 서면 응봉산과 마을, 바다가 한눈에 펼쳐져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설흘산과 응봉산의 급경사 산비탈이 바다로 내려오는 지점에 곡선형 계단식 논이 100층 넘게 만들어졌다.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각인 논에는 마늘이 쑥쑥 자라고, 유채꽃이 넘실거린다.
‘다랑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라는 해설이 나온다. 지역에 따라 ‘다랭이’ 또는 ‘달뱅이’라는 사투리로 불린다. 마을 다랭이논은 3평밖에 안 되는 작은 논부터 300평짜리 논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옛 주민들이 산기슭에 한 평이라도 더 논을 내려고 90도로 곧추세운 석축을 쌓은 것이다. 기계가 들어가지 못해 여전히 소와 쟁기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곳이 많지만 지금은 다랭이논이 마을을 살리고 있다. 다랭이논이 국가명승으로 지정되면서 힘겹게 농사를 짓던 다랭이마을은 이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 주목받는다. 선조의 땀이 밴 한 뼘의 역사가 큰 희망이 된 셈이다.
▲다랭이논이 국가명승으로 지정되면서 가천다랭이마을은 이제 천혜의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남해군
전망대 아래로 난 산책로를 따르면 다랭이마을로 들어선다. 멀리 앞바다에 뜬 삼각형 모양의 섬은 소치섬이다. 작은 꿩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비탈을 가로지르면 가천암수바위를 만난다. 마을에서는 미륵불이라 하여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 부르기도 한다. 숫미륵은 높이 5.8m, 둘레길이 2.5m 크기로 남성의 성기 형상으로 서 있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숫미륵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한다고 알려져 이 고장의 여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많이 다녀갔다고. 오른쪽 암미륵은 높이 3.9m, 둘레길이 2.3m의 크기로 여인이 잉태하여 만삭이 된 모습을 한 채 비스듬히 누워있다. 이 암수바위는 조각 형태가 투박해 정감 있고 마을 뒤의 설흘산, 응봉산과 어울려 더욱 신비스럽다.
흔히 바닷가마을 하면 어업이 주를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 설흘산과 응봉산을 등에 업은 다랭이마을은 바로 앞에 푸르른 태평양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도 마을에는 포구가 없다. 그 이유는 갯바위에 서면 알 수 있다. 거친 파도와 아슬아슬한 바위를 만나는 순간 배의 쉼터가 되지 못한 사연을 몸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태풍 피해도 커 해안가의 바위 사이를 잇는 다리는 매년 개보수를 해야 한다. 마을 지붕은 모두 나지막하다. 매서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석방렴이 남아 있는 홍현해라우지마을
해변을 구경하고 올라오면 본격적으로 산비탈을 타고 돌며 2코스가 시작된다. 허브 꽃밭을 지나면 언덕에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일대는 늦은 봄까지 유채꽃이 화사하게 핀다. 노란 꽃과 다랭이논의 푸른 마늘, 그리고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응봉산과 설흘산이 어울려 일품이다. 정자 앞으로 나무 데크가 깔린 길이 다랭이논을 S자로 타고 오르내린다. 이 길의 끝 지점에 다시 정자가 나온다. 여기서 잠시 한숨 돌리며 다랭이마을과 안녕을 고하고, 앵강만 건너편 노도를 바라본다. 남해로 귀향 온 서포 김만중은 끝내 저 조그만 노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숲길은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모퉁이를 돌면, 선돌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앞으로 거대한 비석같이 생긴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앵강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앵강만은 앵무새가 우는 강, 다시 말해 앵무새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바다라는 뜻이다. 잔잔하고 평화롭다는 뜻이다. 앵강만 건너편으로는 남해금산과 미조항이 거느리는 여러 섬이 오리 새끼처럼 미조면의 꼬리를 물고 있다.
바다와 어울린 붉은 지붕이 이색적인 펜션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홍현항이 가까워진 것이다. 예쁜 펜션 지대를 지나면 홍현항을 품은 홍현해라우지마을이다. 항구 근처에는 제법 큰 석방렴이 버티고 있다. 석방렴은 돌담을 쌓아 만든 원시적 어로 시설로 돌담을 쌓아 반원형으로 만들었다. 밀물 때에 돌담 안으로 조수와 함께 고기들이 들어오면, 썰물 때에 돌담의 밑 부분에 구멍을 뚫고 밀어 넣어두었던 통발을 들어내어 그 속에 든 고기를 잡았다.
석방렴을 구경했으면 마을길을 따라 도로로 올라오면 된다. 이 마을의 다랭이논은 산비탈의 경사가 완만해 제법 넓다. 마늘밭에서 부부로 보이는 내외가 열심히 마늘종을 딴다. 이마에 구슬땀이 흐르지만, 얼굴은 지친 기색도 없이 맑다. 마을은 마늘밭에 묻혀 있고, 뒤로 설흘산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머물고 싶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걷기는 마무리한다.